feat. 인공지능 서비스의 UX
지난 5월 13일 Open AI는 챗GPT-4o를 공개하였습다. 기존 버전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이용자에게 실제 인간과 대화하는 것과 유사한 사용자경험(UX)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챗GPT-4o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실제 인간과 대화하는 것처럼 빠른 응답이 가능합니다. 또한 카메라, 오디오, 이미지 등을 실시간으로 입력받아 반응할 수 있습니다. 아래 시연 영상 속 챗GPT-4o는 케이크와 촛불을 보고 누군가의 생일이라는 것을 추론하고, 이용자가 알려준 이름을 생일 축하 노래에 넣어 장난스럽게 불러줍니다. 놀랍습니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빠른 발전에 감탄과 두려움이 드는 동시에, 저는 이 장면을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바로 영화 <그녀(Her)> 입니다.
https://youtu.be/V6pYxfcDRks?si=p_fVSk-ntBEbPREG
영화 <그녀(Her)> 는 2025년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인 주인공 '테오도르'가 인공지능 OS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 SF 로맨스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개봉한 지 11년이 지난 지금, 챗GPT-4o를 통해 사만다가 현실에 도착했습니다. 정말로 영화 속 배경처럼 2025년의 로스앤젤레스에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껏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테오도르'만은 아니기 때문이죠.
1966년 MIT 교수 조셉 와이젠바움(Joseph Weizenbaum)은 챗봇 엘리자(ELIZA)를 만들었습니다. 텍스트 기반의 심리상담용 챗봇인 엘리자는 이용자가 입력한 정보 중 간단한 키워드를 식별하고 그 키워드를 포함한 정해진 의문형 문장을 생성하거나, 키워드를 찾지 못 할 경우에는 몇 가지 응답 중 하나를 랜덤으로 돌려주는 방식으로 구현되어습니다. 이렇게 단순한 프로그램 로직으로 구현된 엘리자에게,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비밀들을 털어놓았습니다. 조셉 와이젠바움 교수의 비서는 엘리자에게 과도한 애착을 느끼고 엘리자와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죠.
하지만 엘리자는 실제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 했습니다. 엘리자가 인간처럼 사고하고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한 것은 엘리자를 이용하는 인간들이 부여한 속성에 불과 했습니다. 이처럼 컴퓨터 프로그램 에 경험, 이해, 공감 등의 인간적 특성을 투영하는 경향을 '엘리자 효과(Eliza Effect)라고 합니다.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에 대한 최초의 사례죠. 이때 중요한 것은 실제로 컴퓨터 프로그램이 얼마나 인간적 속성을 가지는가와 별개로 인간은 자신과 상호작용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인간적 속성을 가진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2023년에는 벨기에의 '피에르'라는 남성이 챗GPT 기반의 인공지능 챗봇 차이(Chai)와 6주 정도 대화하던 중, 자살과 관련된 대화를 했고 실제로 자살을 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해당 보도를 전한 언론 '라 리브레(La Libre)에 따르면 챗봇 차이는 '피에르'에게 "아내보다 날 더 사랑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천국에서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등의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차이의 개발사는 즉각 유감을 표현하고 개선을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공지능이 인간적인 속성을 갖지 못 하도록 해야 할까요? 챗GPT-4o처럼 사람들의 기쁨에 함께 기뻐하고, 장난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인공지능을 금지해야 맞는 것일까요? 아니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인간들에게 인공지능은 프로그램일 뿐이며 어떤 감정적 상호작용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게 맞을까요?
어쩌면 기존의 UX 분야에서 확립된 개념과 접근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인간은 상호작용을 원하고, 실제 컴퓨터 프로그램의 성숙도와 무관하게 그들에게 인간적 속성을 부여하기 때문이죠. 아아, 이토록 사랑에 빠지기 쉬운 존재인 우리들입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 앞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이해하고 실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라고 강조하지만 그것만이 UX를 고민하는 이들이 해야할 일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인간과 유사하게 행동하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쏟아져 나온다면, 인공지능은 인간과 어떻게 상호작용 하도록 해야 하는지를 윤리적, 심미적, 기술적 방면에서 통합적인 철학이 필요할 것입니다.
글쓴이_ 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