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휴가 중

엄마의 여행: 당일치기

by 수아

내게는 평생 치유되지 않는 병이 하나 있는데, 일명 여행 가고 싶은 병(?).

이 놈의 병은 여행을 가도 문제, 안 가도 문제였다. 안 가면 가고 싶어서 난리여서 한 번은 가야 이 병이 낫겠구나 싶다. 막상 여행을 떠나게 되면 해결되나? 그건 또 아니다. 여행을 가서 별로이면 아쉬워서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정말 좋았을 때는 다시 가고 싶어져서 문제다. (쓰고 보니 이래저래 문제였군.)

특히 일 년 중 이 시기가 되면 법정 공휴일의 빨간 날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고 그 동안 긴 여정을 달려오느라 마지막 힘을 쥐어짜고 있는 상태가 된다. 찬 바람이 쌩쌩 불어올 이때, 긴긴 겨울 방학이 오기 전에 잠시만이라도 어디든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아, 떠나고 싶다! 어디든! 잠시만이라도!


그런데 어디 그게 쉬운가? 일단 아직 학기 중인 아이의돌봄이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다. 안 되겠다! 남편에게 휴가를 받자! 일 년에 한두 번은 나도 휴가 좀 내자! 소파에 누워있던 남편을 다짜고짜 불러 업무가 지장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휴가 낼 수 있는 평일 중 하루를 달라고 했다. 새벽 일찍부터 자정까지 내가 없어도 되는 날을 하루만 달라고. 감사하게도 남편은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주었고, 나에게는 하루의 휴가가 결재되었다!


자, 그럼 어디를 가볼까나?






# 첫 번째 당일치기 여행: 제주도

일단은, 푸르른 자연과 맛집이 가득한 제주도! 제주도를 당일치기로 가다니!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일 년에 한 번뿐 인 황금 같은 하루의 휴가, 게다가 아이도 없는 상태인데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마음 맞는 엄마들끼리 함께 일정을 세워본다. 초특가 비행기표 검색과 렌터카 예약, 맛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 검색 등등.. 이렇게나 손발이 잘 맞을 수가 없다.


생전 처음, 새벽 비행기도 타보고(평일 새벽에 한 자리도 남지 않고 출발하는 비행기를 보면서,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여행을 가는 줄은 처음 알았다.) 우리끼리 렌터카도 빌렸고, 차 안에서 재빨리 검색해서 문을 연 브런치 가게를 찾아보기도 했다. 최상의 팀워크이다!


그날 하루 동안 우리는 정말 많은 일을 했다. 2박 3일 동안 할 일을 엄마들의 열정과 의지로 하루 만에 해 치웠던 것 같다. 맛있는 제주도 당근을 재료로 한 당근 브런치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오름을 구경하고, 제주 샌드와 스타벅스에서 기념품을 사고, 제주 똥돼지를 또 먹고, 망고주스를 입가심으로 먹고, 해변이 보이는 카페에서 잠시 수다를 떨다가, 공항 근처 횟집에서 마무리까지!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다 해보고 먹고 싶었나 보다. 지금 생각해 봐도 대단하다! 평생 잊지 못할 유쾌하고 즐거웠던 날이다.

# 두 번째 당일치기 여행: 부산

한번, 당일치기의 여행의 맛(?)을 본 나는 기회만 되면 또 떠나고 싶었다. 제주도 당일치기의 나눔을 들었던 절친은 이번엔 자기와도 함께 가자며, 제안을 했다. 지금 돌아보면, 당일치기를 꼭 이렇게 멀리 갔어야 했나 싶은데 그때는 그렇게 멀리 가고 싶었나 보다. 정말 여행처럼! 바다를 꼭 봤으면 하는 마음도 컸다.

딱 짚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바다가 주는 매력이 참 크다.


생전 타 볼일 없었던 SRT를 타느라 차편을 놓치기도 하고, 검색했던 식당이 없어져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여행지에서의 들뜬 기분과 자유로움이 그 모든 돌발 상황에도 웃어넘기게 해 주었다. 워낙 절친이라 우리는 오랫동안 모임 통장에 매달 일정양의 적은 회비를 모아 오고 있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그 통장 비용을 여행비용에 보태니 한결 부담이 덜했다. 평소에 정말 가보고 싶지만 못 가봤던 호텔의 가성비 브런치 메뉴도 먹어보고, 근처에 유명한 서점도 구경해 봤다. 요즘 유행이라는 브랜드 곰돌이 키링도 사서 서로 달아주면서 기분은 더 업됐다. 뭔들 안 좋겠나? 마무리는 부산 시장에서 유명한 분식들과 벌꿀 아이스크림까지! 고작, 이거 하려고 비싼 기차표 사서 여기까지 왔나 하는 아쉬움도 있을 법한데, 우리는 계속 하하 호호 난리였다. 그냥 떠 났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들뜨게 했다! 절친은 이 여행 이후 매년 나에게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했다. 장소는 어디든 괜찮다고!






엄마들은 아이가 없으니 세계 여행이라도 갈 기세였다.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니까. 짐도 내 짐만 챙기면 되었고, 비가 와도 딱히 문제가 될 일이 없었다. 내가 먹고 싶을 때 따뜻한 커피를 사 먹고 들고 다닐 수 있었고, 중간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하지 않아도 되었다. 보고 싶고 먹고 싶은 일을 아주 가볍고 손쉽게 할 수 있었다. 그동안은 이게 참 어려웠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편하고 좋은데 또 아이 생각이 난다. 커피를 사다가도 진열된 빵을 보면 아 이거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도넛인데.. 기념품을 구경하다가도 아 너무 귀엽다! 이거 사다 주면 좋아할 거 같은데.. 좋은 바닷가를 봐도 참 좋다! 싶으면서도 아이를 데려왔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참나! 그토록 혼자만의 시간을 달라고 했을 때는 언제고 막상 와서는 온통 아이 생각뿐이다. 다음에는 꼭 함께 와야지. 엄마는 엄마인가 보다. 이토록 질긴 애증의 관계라니.



반복적이고 무료한 일상에 변화가 필요했다. 여러 가지 상황과 시간, 돈의 문제로 지금 당장 떠나기 힘든 상황이라면 어떻게 가능한 범위 내에서 내 삶에 변화를 줄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다가 한 시도들이었다.

엄마도 휴가가 필요하다! 미리 대강이라도 계획해서 남편의 양해를 구하고 결재받자. 일 년에 하루쯤은 엄마에게도 온전한 휴가를 줄 수 있지 않은가? 밖에서 1박 이상의 숙박이 어렵다면, 나처럼 어설픈(?) 당일치기라도! 그 작은 일탈과 짧은 추억이 남은 일상과 육아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한 번 해 보시라~! 속이 뻥 뚫린다! 츄라이(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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