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그리스신화
제우스의 궁전에서 열린 연회에 모인 올림포스 신들은 하나같이 빼어난 미남, 미녀였다. 그런데 선남선녀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추남이 있었다. 못생긴 데다 다리까지 불구라 절뚝거리며 걷는 못난이 절름발이 신이었다. 올림포스 연회의 유일한 추남, 그는 바로 헤파이스토스(Hephaestos)라는 기술의 신이다.
헤파이스토스는 헤라가 제우스와 부부관계를 맺지 않고 혼자 힘으로 낳은 자식이다. 제우스는 헤라와 결혼한 후에도 아테나라는 걸출한 여신을 자신의 머리에서 탄생시켰다. 헤라는 그 광경을 보고 분한 마음에 발까지 동동 굴러가며 억울해했다.
“남편이라는 작자가 제 아내의 배를 빌리지 않고 자식을 낳았겠다. 좋아, 나도 남편의 씨를 받지 않고 훌륭한 자식을 낳아서 본때를 보여주겠어.”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한 헤라는 결국 혼자 힘으로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태어난 아기는 추남인 데다 다리가 기형적으로 구부러져 있었다. 헤라는 추한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이 다른 신들에게 알려져 비웃음거리가 될까 속으로 끙끙 앓다, 결국 아기를 하계로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고대 그리스인은 원반 모양으로 생긴 대지 주위를 감싸고 오케아노스(Oceanus)라는 거대한 강이 흐른다고 믿었다. 헤파이스토스는 운 좋게 이 강에 떨어져 테티스와 에우리노메라는 아리따운 두 물의 여신에게 구해졌다. 여신들은 아기가 아홉 살이 될 때까지 바다 속 깊은 동굴 속에서 돌보았다.
헤파이스토스는 그동안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신통한 기술력을 익혔다. 그리고 헤라가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못난 아들을 무자비하게 처치하려 벼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리에 앉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사슬이 꽁꽁 옭아매는 황금 옥좌를 만들어 헤라에게 보냈다.
황금 옥좌는 신들의 여왕에게 어울리는 훌륭한 모양새였기에 헤라는 기꺼이 그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헤라가 의자에 앉자마자 투명한 사슬이 온몸을 파고들며 헤라를 꽁꽁 묶어버려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헤라의 비명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신들이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사슬을 풀어내려 했지만 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헤파이스토스는 오직 자신만이 의자에 설치한 장치를 풀 수 있도록 설계했기에 신들의 힘과 지혜를 합쳐도 사슬을 풀 수 없었다.
의자에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헤라를 보다 못한 신들은 어쩔 수 없이 헤파이스토스를 올림포스로 불러 헤라를 풀어주라고 부탁했다. 헤파이스토스는 못 이기는 척 헤라를 의자에서 풀어주었고, 덕분에 추남에 절름발이인 헤파이스토스는 기술의 신으로 올림포스에 당당히 입성해 신들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헤라를 옥좌에서 풀어준 보답으로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에게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를 아내로 삼으라고 했다. 아프로디테의 매력은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았다. 남자라면 누구나 아프로디테를 보면 눈을 떼지 못하고 바로 사랑에 빠졌다. 아프로디테는 말 그대로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매력이 철철 흘러넘치는 미의 화신이었다.
내로라하는 신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천하의 아프로디테가 추남에 불구인 헤파이스토스의 아내가 되자 신들은 경악했다. 세기의 미녀와 야수 부부라는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의 결혼은 당연히 잘 풀리지 않았다. 아프로디테는 못생긴 남편의 손길이 닿으면 흡사 송충이라도 몸에 닿은 듯 기겁했다.
그렇게 남편이라면 질색하던 아프로디테는 숫제 곁을 내주지 않았고, 결국 아레스라는 전쟁의 신이자 남편 에파이스토스의 형제와 정분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