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친정엄마, 친한엄마 (part1.엄마)
너의 찰나
1.엄마
한 소녀가 있습니다. 소녀는 스스로 세상에서 제일은 아니지만 참 많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의 사랑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소녀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할지, 주머니 손난로처럼 마냥 따뜻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소녀는 평범해지고 싶습니다. 어렸던 소녀에게 평범함이란 대다수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소녀는 평생토록 평범하게 살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늘 마음 한구석이 아팠습니다. 어느 날 소녀는 같은 반 친구와 말다툼을 합니다. 서로 상처가 되는 말을 주고받았겠지만 소녀의 마음에는 한 문장만이 기억됩니다. ‘엄마 없는 애들은 다 티가 난다고 우리 엄마가 그랬어 놀지 말라고’ 소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울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그날 배가 아프다며 조퇴를 하고 집으로 가 많이 울었습니다. 혼자 울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씩씩하게 학교로 갑니다. 말다툼한 친구와 화해를 하고 같이 먹을 것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소녀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지냅니다. 아니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엄마 없는 아이가 아닌 평범한 아이들 같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소녀는 엄마가 없다는 것은 평범하지 못한 것을 넘어서 누군가 에게는 흠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면서 어느 날은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잖아!’ 소녀가 초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소녀는 자격지심이라는 큰 틀에 본인을 가둔 채로 삶을 살아갑니다. 어느덧,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두려웠습니다. 결혼하게 되면 한 아이의 엄마가 될 것인데 엄마의 사랑을 모르는 자신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겁이 났습니다. 한 번도 편안하게 불러보지 못한 ‘엄마’라는 단어가 자신에게 허락되는 순간이 두려웠습니다.
한 소녀가 있습니다. 소녀는 엄마의 사랑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녀는 가끔 자신에게도 엄마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은 하지만 할머니와 아빠 고모 삼촌들에게 많은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는 삶에 감사합니다. 소녀 주변에는 소녀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가끔 엄마가 없으면 슬프지 않냐고 묻는 친구들이 있지만, 소녀는 알고 있습니다. 아직 어린 소녀와 친구들이 주고받는 정말 순수한 궁금증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소녀도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가끔 슬프지만, 사랑하는 가족들과 너희 같은 친구들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고, 그래도 엄마가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말입니다. 소녀는 지극히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어느새 자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약속합니다. 자연스럽게 엄마가 되는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소녀에게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이지만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생각에 설렙니다. 누군가를 엄마라고 불러본 적은 없지만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엄마로 불릴 생각에 행복합니다. 엄마의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할머니에게 받았던 사랑과 비슷한 종류의 것이라는 생각하며 그 원천은 누군가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기꺼이 나의 것을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하며 차근차근 좋은 엄마가 될 준비를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야기 속의 소녀들은 모두 내가 가졌던 내 마음속의 소녀들이다.
어떤 마음을 선택하여 삶을 살아갈지는 나의 몫이었고, 다행히도 나는 두 번째의 소녀를 선택해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실은 아이를 키우면서 문득문득 스스로가 가여워지는 순간들이 있다.
‘나에게는 나 같은 엄마가 없었던 거야? 이건 진짜 슬픈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엄마보다 더한 마음으로 나를 키워냈을 할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내가 받은 사랑을 생각하며 가엽다 느껴지는 마음을 감사함으로 바꿔볼 요량으로 말이다.
전화기 너머 반가움이 가득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반가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할머니의 열한자리 전화번호에는 그런 힘이 있다.
언제나 똑같은 전화기 너머 할머니의 첫마디 ‘강아지~’ 는 타임머신처럼 나를 유치원생으로, 초등학생으로, 단발머리 중학생으로, 꿈 많던 여고생으로, 내 생각만 하면 살던 이십 대로 데려간다.
나는 할머니의 영원한 강아지다.
늘 그렇듯 특별한 대화는 없다. 남편의 밥을 꼬박꼬박 챙겨줄 것, 아이 잘 키울 것, 시부모님께 잘할 것, 많이 먹고 살찔 것(이것은 우리 할머니가 내 뱃살을 보고 난 뒤에도 빼놓지 않는 말이다)을 당부하신다. 통과의례 같은 당부의 말이 끝나면, 옆에 있던 아이가 전화를 건네받고는 사랑한다는 말을 시작으로 한참 동안 본인의 근황을 늘어놓으며 재롱을 부린다.
이 재롱의 시간이 할머니에게 얼마나 큰 기쁨일지 알기에 나는 아이에게 고맙다. 나와 함께 아이의 부모가 되어준 오빠에게 고맙다. 요 귀여운 아이를 낳은 내가 좋아지는 순간이다.
‘강아지 할머니 말 명심하고~ 응~끊어 강아지’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내 귓가에 강아지~ 강아지~ 가 한참이나 맴돈다.
할머니의 강아지로 살아온 날들에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강아지로 불리며 살아온 나의 날들을 이제는 가여워하지 않기로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엄마가 있는 삶을 살아보지도,
앞으로 살아볼 수도 없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결핍이 지금 마이아사우라라는 엄마의 이름으로 글을 쓰게 해주고 있다는 것을 -
테리지노가 사는 집 새벽에 마이아사우라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