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찰나
2. 친정엄마
육아에 대해 나누는 대화 속에서는 친정엄마의 이야기는 빠질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육아동지들에게는 친정엄마가 계셨고, 그녀들이 좋아하는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달려와 아이를 맡아주시기도 했다.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에 채워주시기도 했고, 주말이면 그녀들이 남편과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밤에 푹 잘 수 있도록 아이를 데려가 재워주는 날도 있으셨다.
부러웠다.
육체적으로 육아의 피로도가 높은 날에는 부러움은 순식간에 모습을 바꾸었다.
짜증, 분노, 슬픔, 신세 한탄… 다양한 모습이었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스스로 겪어보지 못한 부분까지 헤아려지면 참 좋겠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경험한 그 둘레 언저리 정도까지만 헤아려진다. 다행히도 그 헤아림의 범위가 조금이나마 나의 경험을 넘어서는 경우가 있다.
바로 ‘대화’다.
책과 나만의 침묵 속의 대화가 그렇고, 마음에서 우러나와 뇌에서 필터링을 걸친 후 진실한 목소리로 하는 사람과의 대화가 그렇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레몬과 그런 대화를 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이해하고 헤아리며 결국은 나의 삶을 다독이게 되는 대화 말이다.
‘나중에 할머니가 된 우리는 오늘의 대화를 어떻게 기억할까? 오늘 널 봐서 정말 좋았어.
조심해서 돌아가.’
‘나의 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네가 있어서 좋다.’
‘나도 마찬가지야. ‘
우리는 꼭 안았다. 엄마로서 살아갈 날들을 서로 응원하며 각자의 아이에게로 돌아갔다.
레몬과 만나고 온 그날 밤, 쉽게 잠들 수가 없었던 나는 일기장을 폈다. 그리고 편지를 썼다.
하나님께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하는 일이 참 많은 날이에요. 일기장을 펼친 것도 편지를 쓰는 것도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레몬을 만나고 왔거든요.
레몬과 제게 주어진 시간은 아이가 모유를 찾기 전까지였어요. 나오기 직전까지 많이 먹이고 떡뻥이라고 불리는 아기과자까지 준비해 두고 왔지만,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길지는 못했어요. 아시다시피 남편은 아이를 너무 사랑하고 자상하지만, 아이를 돌보는 일은 정말이지 서툴잖아요(아마 서울시에서 일등이지 않을까요?)
레몬은 차분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레몬과 저는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는데 레몬은 출산을 경험해보지 못한 모습이었고, 저는 아이를 한 번에 열 명 정도 출산한 모습이었죠. 간밤에 밤중수유를 평소보다 더 많이 했거든요. 레몬의 여전한 모습은 가까이 살면서 육아를 전적으로 도와주시는 친정엄마의 덕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레몬 역시 인정했죠. 정말 좋겠다며 부러운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냈어요. 하지만 레몬은 제게 고충을 털어놓기 시작했어요. 제가 행복에 겨운 소리라는 말을 할 예정이면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했죠. 우리는 서로의 입장이 되어서 이해할 필요가 있었던 거예요.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네가 되겠다고 나의 자아를 완벽하게 무시하고 아름답고 우아한 레몬 네가 되어 들어보겠다고 약속했어요.(실은 제가 먼저 육아고충을 털어놓고 싶었는데… 한발 늦은 거죠. 심지어 레몬은 어젯밤에도 친정엄마가 아이를 재워주셨거든요.)
레몬의 고충은 친정엄마의 무한한 간섭(관심, 사랑)과 아이와의 관계 혹은 남편과의 관계 안에 늘 친정엄마가 크게 존재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녀는 편안함을 포기하고 홀로서기에는 이미 지금의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친정엄마 역시 손주와의 시간이 이미 삶 속에 크게 자리 잡아서 갑자기 멀어지게 할 수는 없다고 했죠. 모유수유 역시 레몬은 좀 더 하고 싶었지만, 친정엄마의 무한한 사랑에 힘입어 빠르게 단유를 했고, 아이의 사소한 부분까지 친정엄마와 의견이 다른 부분이 많아 일관성 있는 육아를 해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상심했죠. 아이가 혼란스럽지 않게 친정엄마의 방식을 따라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다가도 자신과 너무 다른 방식은 친정엄마와 종종(실은 자주)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고요.
최대한 레몬의 입장이 되어 들어보려 했지만 순간순간 레몬말대로 '네가 배부른 소리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무척이나 노력해야만 했어요. 그런데 레몬의 눈에서 눈물이 한방을 똑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레몬은 정말 힘들었던 거예요. 저는 레몬 옆으로 가서 꼭 안아주었어요.
그리고 말했죠
‘너 나랑 바꿀래?’
우리는 크게 웃었어요. 스무 살 눈만 마주치면 웃던 그때처럼 –
그리곤 서로의 아이 사진을 주고받으며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 깨달았어요.
다양한 모습으로 육아를 해나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불평과 불만이 아니라 감사라는 것 또한 깨달았죠.
레몬을 만난 후 저는 제 고충과 슬픔에만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일을 멈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세상에는 자로 잰 듯 똑같이 닮은 삶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보이는 삶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모든 삶에는 동전의 양면 같은 면이 늘 존재한다는 걸 알아가고 있거든요.
감사하는 일에 더 열심을 내보려고 해요. 오늘은 이렇게 명랑한 글쓰기 취미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하늘에 닿을 편지를 마칩니다!
P.S 아! 친정엄마가 그립지 않은 건 아니에요. 실은 점점 더 그리움이 짙어져요. 다행인 건 그리움이 짙어지는 만큼 씩씩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여성성을 상실해가며 엄마성을 획득하는 느낌이기도 하고요. 아무튼 지금 주어진 삶에 감사하는 연습을 매일 같이 하고 있답니다.
이제 자야겠어요. 잠을 잘 자야 감사하는 삶에 성큼 다가갈 수 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