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도심 속의 오아시스, '센토(銭湯)'

도시의 틈새에서 인간을 회복시키는 센토

by 리안천인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센토(銭湯, 공중목욕탕)가 없어져 마음이 허전하다. 두어 달 만의 방문이긴 했지만,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건물이 흔적도 없이 허물어진 광경은 당혹감을 넘어 서글프기까지 했다. 이왕 나선 길이라 급히 검색해 다른 곳을 찾았지만, 7년간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었던 그곳의 공백은 여간 큰 것이 아니다.


사라지는 마을의 사랑방, 센토

한때 일본 골목의 상징이던 높은 굴뚝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1960년대 전성기 시절 도쿄에만 2,500개가 넘던 센토는 현재 400여 곳으로 줄었다. 가정 내 욕실 보급, 시설 노후화, 연료비 상승, 그리고 후계자 부재라는 거센 파도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도쿄의 부동산 가격 상승도 폐업을 부채질한다. 낡은 목욕탕을 운영하기보다 넓은 부지를 매각하거나 아파트를 짓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단골집 자리가 어떻게 탈바꿈할지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이 든다. 한편으론 '디자이너 센토*'나 사우나 붐 덕분에 MZ 세대가 다시 유입되며 새로운 부활을 꿈꾸는 곳들도 있으니 일말의 희망을 걸어본다.

*) 디자이너 센토: 전통적인 센토의 구조와 외관을 현대적인 감각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리모델링한 곳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시타마치(서민 거리)' 문화와 쾌적한 인테리어를 결합하여, 젊은 층과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휴식처이자 복고풍의 감성 명소로 인기다.


부처님께 바치는 정화에서 시작된 역사

센토의 기원은 놀랍게도 사찰이다. 6세기 불교 전래 당시, 몸을 씻는 것은 부처님을 섬기는 신성한 의식이었고 사찰에서 백성에게 보시의 의미로 목욕을 할 수 있도록 한 '시욕(施浴)'이 그 시초였다. 본격적인 대중문화가 된 것은 에도 시대다. 화재 예방을 위해 가정 내 욕실 설치를 제한했던 정책 덕분에 센토는 에도 사람들의 필수 사교 장소가 되었다. 이후 메이지의 위생 개혁과 쇼와의 황금기를 거쳐 오늘날의 형태에 이르렀다.


일본인들은 왜 이토록 목욕에 진심일까?

일본인에게 목욕은 단순히 때를 미는 행위 그 이상이다. 좁은 집의 욕조를 벗어나 천장이 높은 넓은 탕에서 느끼는 해방감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씻어내 준다. 현지 지인들은 "옷을 벗고 마주 앉으면 지위나 나이에 상관없이 평등해진다"라고 말한다. 이른바 '하다카노 츠키아이(裸의 付き合い, 알몸 사교)'다. 온돌이 없는 일본 가옥 특성상 차가운 바닥의 한기를 이겨내기 위해 뜨거운 탕에서 몸을 데워 잠자리에 드는 것은 오랜 생존 전략이자 휴식의 기술이기도 하다.


'반다이(番台)'의 비밀: 왜 위에서 내려다볼까?

전통 센토의 상징인 높은 접수대 '반다이'. 이전에 살던 고탄다(五反田)의 센토도 그랬다. 우리 상식으로는 빈다이에서 남녀 탈의실이 다 들여다보이는 구조가 당황스럽지만, 여기엔 나름의 효율성이 있다. 한 명의 관리자가 양쪽 탈의실을 조망하며 소지품 도난을 방지하고, 응급 상황이나 화재를 즉각 감시하기 위함이다. 과거 인력이 부족하던 시절, 혼자서 양쪽 손님을 응대하고 요금을 받던 가장 효율적인 설계가 오늘날까지 남은 것이다.


이성(異性) 스태프의 출입: '업무'로 받아들이는 문화

여탕에 남자 직원이 수리하러 들어오거나, 남탕을 여자 직원이 청소하는 모습은 한국 정서로는 생경하다. 하지만 일본 센토 문화에서는 이를 철저히 '업무적 행위'로 간주한다. 가족 경영이 많다 보니 아내가 남탕을, 남편이 여탕을 관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고, 이용객들 역시 이들을 '이성'이 아닌 '시설 관리자'로 대한다. 물론 최근의 대형 스파 시설에서는 이런 풍경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사라져 가는 것은 늘 아쉽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하루를 위로하며 골목을 지키고 있는 센토들. 오늘따라 뜨거운 탕에서 몸을 녹인 뒤 들이키던 차가운 병우유 한 잔이 더욱 그립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건물이 흔적도 없이 허물어진 광경은 당혹감을 넘어 서글프기까지 했다. 부서진 건물이 어떻게 탈바꿈할지 기대 아닌 기대가 되기도 한다.


전통적인 센토의 접수창구(番台)에서는 남녀 탈의실(脱衣場)을 모두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전통적인 센토의 모습. 대부분 센토의 외부에는 굴뚝이 보이고, 실내 벽면에는 후지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진출처: 인터넷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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