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1화
1970년 4월 22일, 미국 전역에서 2천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그날 이후, 해마다 ‘지구의 날’이라는 이름의 행사가 열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이들이 외쳤다. 더는 침묵할 수 없다고, 이대로는 안 된다고. 그리고 1987년, 유엔은 『우리 공동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을 세계에 내놓는다. 그 말은 곧 주요 정책, 시민사회, 환경운동의 언어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 개념은 그 자체로 하나의 논쟁거리가 되었다. 무엇을 지속할 것인가.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 발전인가 개발인가. 그 대가는 무엇이며, 그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지속가능한 발전은 이제 하나의 말에 여러 뜻이 담긴, 단순히 정의할 수 없는 말이 되었다.
이 연재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줄여서 ‘지편서정’)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다양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이 시리즈에서도 그렇지만, 우리는 편의상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해 오고 있다. 이미 널리 퍼져 있고, 지금도 해석이 분분한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연재의 전반부에서는 지속가능한 발전 담론의 기점이 된 브룬트란트 보고서를 다룬다. 이 보고서는 지난 수십 년간 환경 담론의 기초가 되어왔지만, 오늘의 눈으로 보면 그 안에 담긴 제안들은 여전히 실현되지 않았거나, 오히려 더 급진적인 재사유를 요구하고 있다. 이 연재는 그 보고서를 단지 과거의 문헌으로 읽지 않는다. 오늘의 문제를 다시 구성하고, 내일의 길을 함께 사유하기 위한 하나의 토론 자료로 삼고자 한다.
이 연재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에 관한 다양한 해석에서 출발한다. 그 말이 어떤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의미를 부여받았는지, 어떻게 제도화되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어떤 정치의 풍경이 새롭게 펼쳐졌는지를 따라가본다. 우리는 이 개념이 정책 속에서 어떻게 이동해왔는지를 살필 것이다. 정책은 왜, 어떻게 전환되어야 하는가. 지구라는 공유 재산을 누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정책 통합이라는 난제를 구체적인 사례 속에서 짚어가며,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다. 특히 독일과 유럽연합의 경험은 전환의 실마리를 비춰주는 하나의 거울이 되어줄 것이다. 연재의 끝에서 우리는 ‘두 갈래의 가능성’을 놓고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현상 유지인가, 혹은 전환인가.
'지편서정'은 하나의 최종적인 선언이라기보다는, 계속되는 대화의 소재이기를 바란다. 지구의 편에 선다는 것은 단지 친환경적인 슬로건을 지지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정치적으로 상상하고, 가치들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다시 그릴지를 묻는, 조용하지만 근본적인 정치 행위다. 다행히도, 아직은 아름다움이 남아 있는 이 별 위에서, 이 연재를 통해 그 대화를 이어가고자 한다. 그렇게, 시작하려 한다.
이 시리즈에 사용된 모든 삽화(표지 및 본문 포함)는 동일한 조건(© 2025 Sonarius, OpenAI DALL·E 활용)으로 제작되었으며, 이후부터는 별도의 저작권 표기를 생략합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이 걸어온 흔적을 따라가 봅니다. 브룬트란트 보고서를 단서 삼아, 이 개념이 지닌 함의와 우리 사고의 출발점을 다시 그려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