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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평 Oct 27. 2020

너는 좋겠다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 

문제가 발생하여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일부 오류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자동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먹통이 된 컴퓨터 화면,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문제 발생을 알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화면을 보다가 불쑥 튀어나온 말이, 

"너는 좋겠다"였다. 


문제가 생긴 것도 알아채고, 무엇이 문제인지도 알아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그 능력이 진심으로 부러워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 너는 참 좋겠다...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를 모르겠는데 다시 시작할 수 있냐 없냐가 무슨 소용이람. 


살아오면서 크게 후회할 만한 일은 없었다. 

그 말을 들여다보면, 

후회할 만큼 대단한 모험을 했다거나 뭔가를 다 걸었다거나 그 선택으로 인해 인생의 방향이 확 달라진,  

그럴 만한 일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저 그런, 평범하고 시시하고 사소한 선택만을 하며 살았다는 말이다.

언제나 한 발만 담근 채 언제나 모두를 거는 법은 없이 언제든 도망칠 수 있게.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자꾸, 자주 뒤돌아본다. 

그때 그랬더라면, 혹은 그러지 않았더라면. 

물론 어떤 만약의 경우를 상상해 봐도 내 인생이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오지 않았더라면, 

대학원 말고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조금 더 일찍 하고 싶은 일에 전념했더라면, 

아니 좀 더 돈에 악착같았더라면, 

꿈같은 걸 꾸지 않고 살았더라면, 

아니 내 집 장만을 꿈꾸었다면....


내 인생은 조금 달라졌을까. 덜 가난했을까. 덜 불안했을까. 


한동안 돈 버는 글쓰기에 몰입해있었다. 

'구독'과 '라이킷'에 연연하지 않으리라던 마음과 달리 자꾸 '통계'를 눌러보게 됐던 브런치 글쓰기도 

방향성을 잘 모르겠어서 핑계 김에 흐지부지했고, 

실력 말고 '운'을 바라며 접수했던 공모전에 보기 좋게 판판이 떨어지면서 기력을 잃었고, 

여차저차 돈 버는 글쓰기에 전념했다. (물론 중요한 일이고 고마운 일이다, 하찮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또 불안이 찾아온다. 

아, 내 글을 못 쓰게 되면 어떡하지,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데,  중요한 시기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렇게 넋두리처럼 줄줄줄 읊다 보니 불쑥, 

알겠다! 알아졌다. 


내게 문제가 생겼고, 무슨 문제인지 알겠고, 그러니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금연이든 운동이든 영어 회화든 

작심삼일을 일 년에 수십 번 반복하면 절반은 목표한 지점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끝내고 시작하고 끝내고 시작하고를 무한히 반복해보자. 

그러다 보면 어딘가에 조금은 닿아있겠지. 지금 하곤 다른 어떤 날이 오겠지. 


브런치에 쓰는 글은 언제나 나를 다독이는 글이다.

바라는 게 있다면 이런 다독임이 나 말고 어떤 다른 이의 등을 토닥일 수도 있다면.. 하는 것이지만 

이루지 못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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