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_라디오

by THe STory lab

라디오는 그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었다. 3억 오천만원. 아버지가 30년 남짓 다닌 회사를 정년퇴직하면서 이 돈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돈이 통장에 입금되기를 기다린 사람은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형도 호시탐탐 그 돈을 노리고 있었다. 형은 벌써 세 번째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가짜 명품을 싸게 떼 와서 판 첫 번째 사업과 성인용품점을 동네 어귀에 차린 두 번째 사업을 깨끗하게 말아먹은 뒤였다. 우리 집 창고에는 형이 팔다 남은 시계와 가방 그리고 콘돔과 딜도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아버지는 사내놈이 사업 몇 번 했다 말아먹을 수도 있다며 형이 귀가할 적마다 탕자를 기다린 사람처럼 형을 덮어놓고 감싸며 별 말이 없었다. 그 탓에 형의 벤처 정신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정작 복장이 터진 사람은 어머니였다. 여태까지 어머니는 형 일을 두고 어금니를 꽉 깨무는 데 그쳤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드라마 속 전형적인 새엄마처럼 형을 학대하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형을 친어머니처럼 정성을 쏟아가며 키웠다. 그런데 어머니가 형과 나를 대할 때 차이를 두는 게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남긴 밥은 물에 말아서 먹지만 형이 남긴 밥은 그대로 개수대에 갖다버리는 정도의 소박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태도, 그러니까 형을 두고 꾸지람 한 마디 안하는 것 외에도 어머니를 속상하게 하는 게 하나 더 있긴 했다. 아버지는 조강지처 아들인 형과 후처 아들인 나에게 상반된 경제관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친어머니를 일찍 여읜 큰아들에게는 지갑이 냉장고 문 열 듯 잘 열리는 반면 나에게는 아무리 열려라 참깨를 외쳐도 열리지 않는 철옹성이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퇴직금이 입금되자마자 이번만은 절대로 큰아들에게 돈을 내 주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유학 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나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마하고 스스로 치맛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어머니의 치맛바람을 못 미더워 하면서도 혹시나 아버지가 이번만은 내 뒤를 봐 주지 않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유학을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그 자체보다도 우리 집을 둘러싼 경제권 다툼이 더 흥미로웠다. 관찰자이자 방관자의 심정으로 상황을 지켜보며 나는 남들이 모르는 즐거움을 느꼈다. 나에게 아버지의 정년퇴직은 어머니와 형 사이 파워 게임의 전조로 여겨졌다. 형이 이번에는 틀림없다며, 일본에서 슈크림 빵을 들여와 팔아보겠다고 했다. 형은 학창시절부터 공책에 필기만 열심히 한 열등생답게 아버지에게 내민 사업계획서가 무려 백여 쪽을 넘고 있었다.

“오냐, 오냐. 조금만 기다려봐라.”

아버지는 이번에도 형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사업자금을 대 주려 했다. 형에게만 한없이 관대한 아버지를 보고 어머니가 머리끝까지 화가 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네 자식은 큰아들이 다냐?”

초등학교 동창지간인 어머니와 아버지는 평소에는 말을 높였지만 싸울 때는 물불 가리지 않고 야자하며 말을 놓았다.

“그래도 우리 집 장손은 큰아들이야. 내 제사 지내줄 놈도 그놈이고.”

“그때 동창회만 안 나갔어도 내가 이렇게 살지는 않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멀쩡한 조강지처, 아들 다 놔두고 내가 미쳤지. 그 때 사람이 아니라 난데없이 여우 한 마리가 꼬리 흔드는 걸 눈치 챘어야 했는데…….”

아버지가 어머니 뇌관을 건드리려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노려보며 화장대 위 탁상시계를 아버지 앞에 내동댕이쳤다.

“뭐, 여우? 40줄 중반부터 사내구실도 못하는 놈을, 그것도 남편이라고 떠 받들어 줬더니만 이제 와서 여우 소리 들으려고 그 고생을 한 줄 아냐?”

아버지는 ‘사내구실도 못 하는 놈’ 소리에 눈이 뒤집혔다.

“옳거니! 네가 네 어미를 닮아서 갈보 년의 핏줄을 감추지 못 하는구나.”

어머니는 아버지가 외할머니 욕까지 하자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울먹이기 시작했다. 어머니 울음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격해졌다. 어머니는 아버지 멱살을 잡고 흔들었고 아버지는 어머니 머리카락을 몽땅 뽑을 듯이 잡고 육탄전을 벌였다. 내가 개입해 서로 죽일 듯이 달려드는 두 몸뚱어리를 떼어놓음으로 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서로 아예 피했다. 아버지는 형 방을, 어머니는 안방을 차지해 각 방을 쓰고 꼬박 일주일 동안 단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았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더 또렷이 서로를 부서뜨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고향 마을에서 술집을 한 외할머니가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마음에 남아 아렸는데 사정을 잘 아는 아버지가 그 치부를 건드렸다는 사실을 쉽게 용서하지 못했다. 한편 아버지는 40대 중반부터 전립선염을 앓아 성기능 장애에 시달렸다. 그 때문에 젊은 시절처럼 성욕이 왕성하지도 않았고 어머니를 성적으로 충분히 만족시켜 줄 수도 없었다. 서로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린 것, 그 금기를 깨고 나자 판도라의 상자 같은 부부관계에는 날선 칼 같은 앙금이 남았다. 어머니는 친구들과 함께 바다를 보러 차를 맞춰서 포항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시 창작 모임도 나가며 시간의 공백을 메워나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고 무료한 시간을 보낼 방법을 쉬이 찾지 못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관심을 보인 것은 엉뚱하게도 당신이 집 창고에서 찾아낸 라디오였다.

“갑자기 웬 라디오에요?”

어머니가 일주일하고도 이틀 만에 둘 사이의 침묵을 깨며 물었다. 어머니 물음에 아버지는 얼굴이 굳은 채 말이 없었다. 마치 너와는 아무 관련 없으니 상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동안 아버지 퇴직금을 둘러싼 형과의 전쟁으로 인해 현실감각을 회복한 어머니는 아버지 행동을 예의주시하며 뾰로통한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고물 라디오의 출현에 의아해 한 건 형과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와 형의 관심은 퇴직금에서 오래된 라디오로 옮겨졌다. 북태평양 기단과 오호츠크 해 기단이 맞서는 장마전선 같던 어머니와 형의 힘겨루기도 잠시나마 소강상태가 되었다.

“이 라디오, 옛날에 어머니가 들으시던 거 아니에요?”

형이 ‘어머니’라고 말하자 어머니가 고개를 들어 형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형 눈길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게 아니라 라디오를 주시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이내 자신도 라디오를 일그러진 얼굴로 바라보았다. 형이 말한 ‘어머니’가 가리키는 인물은 내 어머니가 아니었다. 형은 어머니를 부를 때 어머니라는 말 대신 저기요, 여기요라는 말을 썼다. 식당에서 서빙 하는 아주머니를 부를 때 느끼는 애매모호함이 형이 내 어머니를 부르는 말 속에는 숨어 있었다. 형이 말하는 ‘어머니’는 자기 친어머니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버지 퇴직금이 형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느냐 어머니 치마폭에 들어가느냐 하는 중요한 순간에 뜬금없이 아버지 조강지처가 듣던 라디오라니. 어머니는 불안감에 얼굴이 경련을 일으킬 듯했다. 의도적으로든 아무 생각 없이 그랬든 형은 아까부터 고물 라디오를 계속 쓰다듬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형을 보고 부아가 치미는지 갑자기 찬장에 있던 유리그릇을 꺼내다가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큰 소리를 내며 설거지하는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형은 눈치가 있는지 없는지 더 큰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한 노래가 뭐였어요?”

아버지가 형 얼굴을 보더니 빙긋이 웃음을 띠고 대답했다.

“네 어머니는 심수봉의 ‘사랑 밖에 난 몰라’를 가장 좋아했지.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그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는데 나중에는 심수봉이 ‘사랑 밖에 난 몰라’를 부르는지 네 어머니가 부르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어.”

아버지가 은근한 손짓으로 라디오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마침 심수봉의 ‘사랑 밖에 난 몰라’가 흘러나왔다. 그때 부엌에서 유리잔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났다. 순간 정적이 흐른 뒤 아버지와 형은 부엌에서 라디오로 다시 눈을 돌리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머니는 떨어진 유리 조각을 손으로 주워 담았다.

“어머니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신 줄 알았는데 심수봉 노래를 좋아하셨다니 그거 참 의외네요.”

“클래식 음악도 좋아했지. 대학교 다닐 때 수업 땡땡이 치고 자취방에서 네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서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과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을 듣고는 했다.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레드 제플린이나 비틀즈 노래를 들었지.”

아버지는 옛날 본처와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지 추억에 젖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심수봉 노래 ‘그때 그 사람’을 배경 음악으로 형은 아버지 발톱을 깎아주었다. 형은 아버지로 하여금 조강지처와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어머니와 퇴직금을 놓고 벌이는 전쟁에서 반 이상 자기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한 게 분명했다. 그 추억의 힘은 막강해서 어머니가 설거지하는 소리도 기운을 잃고 말았다. 어머니는 형과 아버지 대화를 더는 그냥 들어주기 힘들었는지 언제 설거지가 끝났는지도 모르게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머리에 수건을 싸매고 팔을 이마에 올린 채 이불을 펴고 누워 있었다. 내가 들어온 인기척을 느꼈는지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아이고, 아이고.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만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지. 아무리 제 어미 생각이 간절해도 그렇지. 어떻게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바로 앞에서 그 여자 이야기를 부자가 그렇게 다정히 나눌 수 있단 말이냐?”

어머니는 내 손을 꼭 부여잡고 하소연을 했다.

아버지의 라디오 사랑은 그날부터 더욱 뜨거워져 갔다. 아버지는 라디오를 들으며 조강지처와 서로 카세트테이프에 목소리와 음악을 녹음해 마음을 전하고 키스하고 사랑을 나누던 순간순간을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마치 라디오에 조강지처의 혼령이라도 씐 듯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버지 곁을 지키는 라디오를 볼 때마다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는 라디오라고 하면 치를 떨었다. 어느 날은 라디오에서 낯선 여자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더라며 내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라디오 쪽으로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 형은 라디오 덕분에 나보다 우월한 위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죽은 본처 자식 사랑이 살아있는 후처 치맛바람을 잠재우고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라디오에서 등산이 건강에 좋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가 생전 오르지 않던 산을 오르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심한 고혈압이어서 팔공산 정상을 오르는 일은 시한폭탄을 안고 불 속에 뛰어드는 일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버지 고집이 일주일에 한 번 팔공산 정상에 오르는 무모한 도전을 실현시켰다. 라디오를 배낭 한 쪽에 매단 채였다. 그 도전은 과욕이었음이 곧 판명되었다. 아버지 말처럼 사내가 도전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지만 그건 좀 더 젊고 건강한 사내의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아버지 몸은 아버지 욕망보다 훨씬 정직했고 신호등 불빛이 파란불에서 빨간 불로 옮겨가듯 위험신호를 알려왔다. 결국 아버지는 산을 내려오다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졌고 바로 119차를 타고 병원으로 직행했다.

어머니와 형 그리고 내가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을 때 아버지는 의식이 없었다. 담당의는 우리에게 아버지 상태를 감정 없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전했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대로 숨을 거두거나 아니면 의식이 돌아와도 예전처럼 등산을 할 수는 없을 거라고. 아버지가 깨어나도 반신불수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아버지 생사를 관장하는 신은 생명까지 앗아가지는 않았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는 며칠 후 의식을 되찾았고 눈으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었다. 의사는 재활치료에 얼마나 힘을 쏟느냐에 따라 아버지의 예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전했다.

아버지를 곁에서 보살필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와 형 그리고 나, 세 사람 가운데 하나여야 했다. 간병인을 들일까하는 말도 오고 갔지만 마누라와 장성한 두 아들이 있는데 돈을 주고 사람을 쓴다는 게 영 말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 몸은 늙었지만 물을 머금은 솜처럼 무거웠다. 여자인 어머니가 그 몸을 감당한다는 것은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형과 나, 두 아들 중에서 사업 구상으로 바쁘다는 큰아들이 먼저 떨어져 나갔다. 형은 퇴직금을 걸고 아버지 병간호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고생 안 하고 아버지 돈을 물려받길 원했다.

작은아들인 나에게 간병을 하라는 임무가 떨어졌을 때 나는 별 저항 없이 그 책무를 받아들였다. 유학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일이 부담으로 작용했지만 나는 스스로 놀랄 정도로 군말 없이 아버지의 늙은 몸을 떠안았다. 병원 생활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아버지는 혼자 똥, 오줌을 가리지 못했다. 등과 엉덩이에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몸을 뒤집어 주는 일부터 밥을 떠먹이고 운동까지 시켜야 하는 일들 앞에서 아버지 당신이 힘든 이상으로 나 역시 무력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버지 몸은 조금씩 예전의 활력을 찾아갔다. 식사량이 조금씩 늘고 말라가던 몸도 살이 오르고 전보다 영 생기 있어 보였다. 아버지가 반쯤 열린 입으로 침을 흘리며 나에게 한 첫 마디는 어머니와 형 그리고 나도 아니었다.

“라, 디, 오, 가, 져, 와.”

나는 애써 아버지 요구를 외면했다. 어머니가 생각나서였다. 아버지가 병원 생활을 시작하고 집에 덩그러니 남은 라디오는 주인 잃은 개처럼 힘을 잃은 듯했다. 아버지가 집을 비우고 어머니가 맨 처음 계획한 일은 ‘흉물스러운 라디오’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집에 잠시 들른 나에게 라디오를 당장 갖다 버리라고 했다. 어머니는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지 않은 말들을 무당이 주문을 외우듯 쏟아냈다. 어머니 말을 요약하자면 아버지가 아픈 것도 다 영감 당신이 라디오로 안 하던 짓을 하다가 일어난 사단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어머니 뜻대로 라디오를 갖다 버릴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아버지 뜻과는 상관없이 당신이 귀하게 여기고 애타게 찾고 있는 라디오를 버리는 것은 자식 된 도리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라디오 사랑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사람은 누구나 살다가 힘들 때 기대고 싶은 추억 하나쯤 가질 권리는 있다고 생각했다. 라디오를 돌아온 조강지처 보듯 아끼는 아버지와 라디오와 한시도 같이 있고 싶지 않다는 어머니 사이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을 선택했다. 나는 어머니에게는 버렸다고 거짓말하고 라디오를 창고 깊숙이 숨겨두었다. 아버지가 퇴원한 후 라디오를 어떻게 할지 당신께 맡기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형이 내 계획을 수포로 돌려버렸다. 형은 주말에만 가끔 아버지가 누워있는 병실을 찾았는데 라디오를 찾는 아버지 말을 들었나 보다. 하루는 집에 들어서는데 형과 어머니가 목소리를 높여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도대체 라디오를 어떻게 했느냐고요?”

“그걸 왜 나한테 묻니?”

라디오를 찾는 형과 라디오의 행방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어머니 사이에 말싸움이 크게 났다. 나를 본 형은 내게 다가와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네가 치웠냐? 라디오?”

내가 말없이 형에게서 눈을 돌리고 서 있자 형은 무언가를 짐작한 듯 창고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형은 자신에게 낯익은 가짜 명품들과 성인용 기구들이 꽉 채워져 있는 창고에서 내가 숨겨놓은 라디오를 찾아냈다. 그때 어머니는 같이 범죄를 저지른 공범자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배신감과 원망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런 어머니 눈길을 마주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라디오는 형 손에 들린 채 아버지 병실로 옮겨졌다. 아버지 곁에서 라디오는 다시 조강지처 역할을 해냈다. 아버지는 라디오와 함께 하루 종일 웃고 말하고 때로는 침묵하고는 했다.

그러기를 얼마쯤, 라디오에게도 육신이란 게 있어서 병이 난 걸까? 아버지가 듣던 라디오가 고장 나 버렸다. 아버지는 고장 난 라디오를 수건으로 닦고 손이 닿지 않는 곳은 면봉으로 꼼꼼히 닦아냈다. 마치 조강지처의 아픈 몸을 닦아주는 듯 했다. 그래도 라디오가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하자 아버지는 마지막에 눈물까지 보였다. 나는 아버지가 측은해서 당장 빨간색 새 라디오를 사다줬다. 빨간색은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새 라디오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오히려 고장 난 라디오에 전보다 더 집착했다. 아버지는 싱싱한 육체로 분명하고 깨끗한 발음을 하는 새 라디오보다 알 수 없는 말들을 웅얼거리는 고장 난 라디오에 더 깊은 애정을 보였다. 아버지의 그런 고집을 아들인 나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 고물 라디오가 무어라고 그토록 사랑을 쏟는 것일까?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십여 년 전 병이 나서 죽은 아버지 본처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첫사랑 조강지처를 대학교 때 처음 만났다.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서글서글한 눈매와 하얀 덧니가 참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둘은 살림을 차렸다. 가난하고 누추했지만 사랑만으로 버틸 수 있었던 젊은 청춘들이었다. 아버지가 학교를 마치고 대기업에 취직을 하자 아버지는 본처를 집에 데려갔다. 어른들은 본처가 가난한 집안 딸이라 반대를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본처는 곧 아버지 아이를 배었고 그 아이가 바로 형이었다. 아버지와 조강지처의 만남과 결혼이 평범하고 자연스러우며 비교적 순조로웠다면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종잡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시골에서 컸는데, 서울에서 전학 온 아버지를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다. 자신의 검은 얼굴, 손과는 달리 온실 속의 화초처럼 귀하게 길러져 귀티 나는 아버지 얼굴과 험한 일이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듯 한 하얀 손이 마음에 들었다. 서울에서 전학 온 이유도 소설처럼 폐병 때문에 요양 차 온 거라니 어머니는 아버지와 자기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마음대로 일기장에 써 내려가고는 했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행복한 결혼을 꿈꾸던 어머니 소원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중학생이 되어 대구로 떠났고 어머니는 동네에서 술도 팔고 웃음도 팔고 때로는 몸도 팔던 외할머니 곁을 떠날 수 없었다. 20여년이 지나 결혼한 아버지와 한 번 시집갔다 아기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박을 맞고 친정집에 와 있던 어머니는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재회하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외로움이라고, 외롭지만 않을 수 있다면 어떤 일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그날 술에 취해 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와 몸을 섞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 얼굴은 발그레하게 익었고 아버지의 하얀 얼굴은 더 하얗게 변해 사색이 되었다.

“걱정하지 말그라. 내 아무한테도 말 안할 끼다.”

아버지는 아직 시골티를 벗지 못해 억센 사투리를 쓰는 어머니 말만 믿고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 방을 나왔다. 밖에서는 외할머니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약속은 지켜질 수 없었다. 얄궂은 운명의 화살이 아버지를 과녁 삼아 날아갔다. 아버지는 하룻밤 실수로 어머니 몸에 내 씨앗을 단단히 심어 주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제발 부탁이니 아이를 지우자고 했지만 자신이 불임이 아님을 증명하는 나를 지키겠다는 어머니 고집을 꺾지 못했다. 마침내 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아버지는 본처와 형, 어머니와 나 사이를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본처가 말기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건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어머니와 나는 그 말을 듣고 사실 걱정보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것은 본처가 죽음으로써 우리가 정식으로 아버지 호적에 오를 거라는 감정의 공유였다. 어머니는 평생 어두운 그늘 속 여자로 살아온 게 한이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 호적에 올라 떳떳하게 마누라 행세를 할 수 있게 되기를 학수고대 해 왔다. 그런 어머니 바람대로 본처는 암 진단을 받은 지 얼마 후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때까지 나는 아버지 본처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살아서는 만나지 못하고 그녀가 죽은 후 장례식 날 영정사진을 마주한 게 그녀와 내가 맺은 인연의 전부였다. 1년 후 어머니와 아버지는 재혼이라는 형태로 정식 부부가 되었고 나도 아버지 호적에 내 이름 석 자를 올릴 수 있었다. 어머니와 같이 본처의 죽음을 기대했지만 반대로 나는 그녀의 죽음에 죄의식을 동시에 느꼈다. 그것은 우리가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지만 분명히 그녀의 수명을 한두 살 정도 갉아먹지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온 것이었다.

그 와중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형이었다. 어머니를 잃은 와중에 마땅찮은 새어머니와 이복동생을 맞아들여야만 했던 형. 형의 친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같은 집에 사는 우리를 어머니와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이어졌다. 언제였던가? 내가 길에서 우연히 친구와 함께 있는 형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내가 형이라고 불렀을 때 형은 차갑게 고개를 돌려 버렸다. 네 동생이냐고 묻는 친구 말에 형은

“나, 동생 없어.”

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 이후로 나는 형과 밖에서 어쩌다 마주쳐도 굳이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형과의 관계는 더 차갑고 소원했다. 형은 어떤 상황에서도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하는 날에도 어머니와 동행하지 않고 차라리 집에서 배를 곯는 쪽을 선택했다.

고장 난 라디오에 대해서도 형은 우리와 다른 태도를 보였다. 내가 아버지에게 라디오를 사다 준 것과는 다르게 형은 아버지에게 고장 난 라디오를 고쳐 주겠다고 장담을 했다. 그러고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드라이버를 꺼내 라디오를 뜯어내고 부속품들을 건드렸다. 형 말은 말로만 그쳤다. 애당초 공고나 공대가 아닌 문과를 졸업한 형이 라디오에 손을 대는 거 자체가 무리한 일이었다. 그 사이 아버지는 재활치료가 잘 이루어져 걸어서 병원 문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가 퇴원을 하고 가장 먼저 당신 발로 찾아간 곳은 전자제품을 고치는 서비스센터였다. 아버지가 라디오를 고치러 간다고 했을 때 어머니와 나는 제발 라디오가 고쳐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것은 아버지 본처가 말기 암에 걸려 생사를 헤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와 같은 감정인지 모른다. 동시에 나는 어머니와 나 때문에 본처가 죽었다는 죄의식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그런 이중적인 생각을 하며 나는 아버지와 대동했다. 라디오를 이리저리 살펴 본 서비스센터 기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라디오가 오래 돼도 너무 오래 됐습니다. 이제 그만 새 라디오로 바꾸시죠?”

기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오히려 라디오에 대한 정이 더 깊어져 꼭 고쳐달라고 기사에게 사정했다. 기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버지를 한 번 바라보더니 형과 마찬가지로 드라이버를 꺼내 라디오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서 다시 조립된 라디오가 약하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라디오는 기사회생했다. 라디오를 고쳐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잘 움직이지 않는 얼굴 근육을 실룩거리며 중얼거렸다.

“다, 행, 이, 다. 다, 행, 이, 야.”

그러나 아버지와 라디오의 봄날 같은 연애는 오래가지 못했다. 라디오가 잘 흘러나오다 아버지 몸이 굳어졌을 때처럼 소리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아버지와 나는 다시 서비스센터를 찾아갔다. 기사는 고개를 흔들며 라디오가 영영 다시 살아나지 못할 거라고 했다. 사람으로 치면 뇌사 상태에 빠졌다고 친절하게 비유까지 들었다.

“아버지, 이제 그만 가요.”

발길을 쉽게 돌리지 못하는 아버지를 부축하며 나는 서비스센터를 돌아 나왔다. 어머니는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보더니 나만 눈치 챌 수 있는 웃음을 띠며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라디오를 품에 안고 자리에 누웠다.

“어떻게 됐니? 라디오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게 분명하지?”

어머니가 나를 붙들고 물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이번에 라디오를 아주 망가뜨린 게 자신이라며 내가 묻지도 않은 고백을 했다. 아버지가 통원 치료를 위해 집을 비운 사이 어머니는 눈에 가시 같은 라디오를 발로 차 버렸다. 그 이후로 라디오는 더 이상 한 마디도 뱉어내지 못했다. 자신이 한 짓을 말할 때 어머니 눈은 이상한 기운으로 빛나며 번뜩거리고 있었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뒤틀린 오장육부가 한 순간에 풀리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아버지나 네 형한테는 비밀이다.”

어머니는 입에다 손가락을 갖다 대며 비밀을 지킬 것을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나로서도 라디오의 영원한 종말은 내심 바라던 일이었다. 형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던 아버지의 편애가 끝날 수도 있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라디오의 마지막을 자기 손으로 직접 처리하고 싶어 했다. 아버지는 숨을 멈춘 라디오를 버리러 재활용 수거대 앞에 섰다. 아버지는 한 손으로는 라디오를 수거대 쪽으로 가져갔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마지막 생명줄처럼 보이는 전선을 감싸 쥐고 집으로 돌아갈까 망설였다. 결국 라디오는 조금은 비좁은 관 같은 재활용 수거대 안에 자리 잡고 영원한 침묵을 허락받았다.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라디오를 보내며 묵념을 하고 계시는 듯 보였다. 아버지는 라디오와 그렇게 이별을 한 후 몸살을 크게 앓았다. 라디오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듯이 자신도 죽지 않을까 걱정했다. 나는 어서 빨리 시간이 흘러 아버지 뇌리에서 라디오와 그것이 담고 있는 가치와 의미들이 퇴색되길 기다렸다.

형은 무슨 꿍꿍이를 하고 있는지 사흘째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왜 집에 들어오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친어머니를 의미하던 라디오도 사라지고 아버지도 점점 노쇠해지고 있는 마당에 뭐 하러 집에 들어올 맛이 나겠냐고 말할 것만 같았다. 라디오를 수단으로 사업자금을 아버지로부터 타 내려는 형의 계획은 어그러질 가능성이 커졌다. 아버지는 돈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태로 치닫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퇴직금 중 가장 많은 금액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배우자인 어머니였다. 형이 가져갈 수 있는 돈은 구상하고 있는 사업규모에 비해 초라한 수준이었다. 형은 그 사실을 변호사 친구에게서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형은 이제 어머니와 내 눈치를 보게 되었다. 의기양양한 적군이었던 형이 백기를 들고 아군이 되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형을 아군으로 받아들일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어머니 치마폭은 형까지 감싸 안을 정도로 넓지 못했다.

집에 들어오지 않은 나흘째 되는 날 형은 결혼할 사람이라며 한 여자를 집에 데려왔다. 여자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5번이나 떨어져 지금은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것도 작년까지는 7급 시험을 준비하다가 등급 하락한 거라고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억세게 시험 운이 없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사법시험에 붙은 판사나 변호사 같은 형수보다 이때껏 시험에 떨어지고 우리 집에 며느리가 되겠다하고 찾아와 모든 일에 초연한 표정을 짓는 이 여자가 좋았다. 어떻게 만나게 됐냐는 어머니 물음에 형이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사실은 변호사 친구한테 우리 집 재산분할소송을 부탁하러 갔다가 그 친구 소개로 만났어요.”

형이 어머니와 나를 상대로 소송을 하겠다는 말을 듣고 여자는 가족끼리 원수질 일 있냐며 형을 극구 말렸다고 했다. 시험에 줄곧 떨어진 이력과는 달리 여자는 허황된 사업을 벌이겠다는 형의 의지를 한 순간에 제압할 정도로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퇴직금을 사업자금으로 쓰겠다는 형의 목표는 사랑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라디오를 버린 뒤 몸 져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하관하는 날 나는 아버지 시신 옆에 내가 사준 빨간색 라디오를 놓았다. 시신 옆 빨간 라디오라니. 불경스럽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관 뚜껑이 닫히기 전에 서둘러 라디오를 넣었다. 웬일인지 형은 아무 말이 없었고 내 옆에 서 있던 어머니도 내가 하는 행동을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나는 아버지가 다른 세상에서만큼은 내가 선물한 라디오로 즐겁고 행복해지기를, 그리고 이제는 본처와 후처, 큰 아들과 작은아들 구분 없이 모두를 굽어보며 추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끝>_2013,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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