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아침 6시. 온 집안이 시끄럽다. 1분도 늦고 싶지 않다는 각오다. 문도 제대로 잠그지 않고 아파트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을 다시 올라와 열쇠로 문을 잠그고 다시 내려간다. 이 놈의 건망증! 마음이 급해진다. 다시 우당탕탕!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그만 미끄러져 내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기네스급으로 큰 내 엉덩이가 계단에 찍혀 얼얼하다. 하지만 마음만은 이팔청춘이다.
하낫, 둘! 하낫, 둘! 아직 어둑한 새벽을 가르며 달려 나간다. 오늘은 내가 다이어트를 위해 러닝을 계획한 첫 날이다.
달린 지 채 3분도 되지 않아 벌써 숨이 차오른다. 입을 다물고는 호흡이 쉽지 않다. 코와 입 쌍방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해야 그나마 호흡이 안정적이다. 발이 어느새 무거워진다. 7년 전 등산을 계획하고 산 무거운 등산화를 신은 발과 다리가 러닝에 영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오늘 만나기로 한 운동 메이트를 기다렸다. 인근에 사는 늦깍이 대학생인 그녀는 배드민턴을 치고 싶은데 같이 칠 사람이 없다고 SNS에 글을 올렸다. 잘 됐다 싶어 문자를 보내고 그녀에게 좋다는 연락이 왔다.
마침내 조우한 우리는 드디어 배드민턴 경기(?)에 돌입했다. 팅, 팅, 톡. 두 번 이상을 오고가지 못하는 셔틀콕을 애써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바닥에서 주워 들었다. 팅, 팅, 팅, 톡. 진짜 장난이 아니다. 우리 두 사람은 진짜 장난이 아니게 배드민턴을 못 친다. 애써 웃으며 내가 말했다.
"처음이라 그래요. 오늘은 배드민턴 그만 치고 러닝이나 합시다."
"호호호, 제가 노안이 와서 셔틀콕이 잘 안 보이네요, 호호호."
"아직 이른 아침이라 날이 덜 밝아서 그렇지요, 하하하 하하하."
러닝이 시작 되었다. 말이 러닝이지 파워 워킹 수준이다. 배드민턴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지 여자가 눈치를 보며 먼저 말을 건넸다.
"오빠, 살 빼시면 제 주위에 있는 언니들 소개해 드릴께요. 호호호."
나는 슬쩍 웃음을 지었다 0.1초만에 표정을 되돌려 놓았다. 속으로는 이 여자야! 문제는 그것이 아니란 말이다 여자를 소개받기 전에 나는 이놈의 지방 덩어리들과 먼저 이별해야 한단다 고지혈증+고혈압+공복혈당 장애 등등등, 이 살들이 만들어낸 온갖 질병과 헤어져야 여자를 만나든 말든 하지 않겠나? 하며 부아가 치미는 것을 겨우 가라앉힌다.
운동 메이트 여자와의 인연은 그날로 쫑났다.
_미안합니다. 다른 분을 찾아서 화이팅 하세요. 제가 배드민턴을 너무 못 쳐서 서로 도움이 못 될거 같아요_
문자를 보내고 답장이 오기도 전에 나는 내가 감당해야 할 신성한 의식에 돌입한다. 체중계를 발로 거실 중앙에 끌고 와 바로 놓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체중계에 올라섰다. 99.8kg. 딱 200g 모자란 100kg이다. 맙소사! 큰일이다. 그만큼 달리고 애썼는데도 1kg이 빠지지 않았다. 울상이 되어 츄리닝을 벗어 던지고 속옷 차림으로 목욕탕 문을 열었다. 나는 목욕탕에 들어서기 전에 목욕탕 조명을 껐다.
임산부처럼 나온 배, 부풀 대로 부풀어 오른 허벅지와 엉덩이, 살이 쪄 못생기다 못해 축 처진 얼굴. 도저히 밝은 빛 아래서 정면으로 마주하고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혹자는 나의 몸에 대해 한마디로 정리했다_머리 크고 다리 짧고 엉덩이 큰_살 때문에 설움도 많이 받았다. 아직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는 시작도 하기 전에 명절날 고속도로처럼 콱콱 막혔다. 길을 지나다 외모 조롱과 비웃음은 기본값이었다. 대학생 때 카페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꼭 안 해도 될 말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_원래 예쁘고 잘생긴 애들이 카페에서 공부하는데_심지어 식당에서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을 때 사장님이 손님과 다른 아르바이트생 앞에서 내 이름 대신 부르는 별명이 있었다.
"뚱아! 손님 계산 도와 드려라."
어둠 속, 샤워기 호스에서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그런 구박과 설움을 견디며 산 세월이 무색하게 살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는 근육량이 줄어든 탓인지 나잇살 이름값 한다고 체중계 숫자는 요지부동이었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과거 새벽녘에 먹는 야식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야식을 참 골고루도 먹었다. 찜닭, 아이스크림, 튀김과 라면. 특히 라면스프를 뿌려 먹는 생라면이 그렇게 맛있었다.
처음부터 비만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조금 기골이 장대한 우량아일 뿐이다. 나도 그랬다. 처음부터 뚱뚱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당한 학교 폭력, 취업에 연속으로 실패하며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지낸 날들로 인한 자존감 하락, 용기를 내 취업 시험을 보고 면접을 봐 다니게 된 직장에서 겪은 직장 내 괴롭힘. 내 인생에 불운과 불행이 마음의 상처로 쌓이는 것과 비례하여 살은 1kg씩 언젠가는 10kg씩 마구, 마구 찌기 시작했다.
살과의 전쟁에 늘 소극적이지만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한 나는 살을 빼려고 댄스 학원에도 등록하고 수강생이 대부분 여성인 요가 강습을 청일점으로서 꿋꿋이 받기도 했다. 헬스라고 왜 안해 봤겠는가? 3개월에 10만원인 동네 헬스장에서 나보다 더 살이 찐 트레이너를 만난 기억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목욕을 마치고 하얀색 타올로 몸을 닦았다. 목욕탕 불은 여전히 꺼진 채였다. 선 자세로 속옷에 다리를 넣고 입는 자세가 영 불편하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미끄러운 바닥에 슬랩스틱 코미디언처럼 미끄러질 찰나 수건걸이를 붙잡고 겨우 위험을 모면했다.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졌다 헛! 헐!
살면서 살 때문에 곧 죽겠다고 아우성치다가도 가끔은 지금처럼 살아 있음이 다행이고 마음이 놓였던 적이 어김없이 찾아 왔다.
좋아하는 영화 때문에, 어머니가 해 주시는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나는 살아서 다행이었고 괜히 마음이 푸근해졌다.
당장 마라톤 경기에 출전할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을 할 계획을 세우고 약속을 지켰다.
내일은 무거운 등산화 대신 가벼운 운동화를 인터넷으로 주문해 볼 생각이다.
‘어글리(Ugly)’하지만, 살아있기에 ‘뷰티(Beauty)’한 나의 몸, 나의 인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