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의 교육

by 류휘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바둑에서 경우의 수는 천문학 적이어서 슈퍼 컴퓨터라도 일일히 계산할 수 없다. 그래서 바둑은 인공지능이 정복해야할 목표였다. 드디어 알파고가 그 일을 해냈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지 않고, '경험'을 바탕으로 대안을 추린 후에 확률을 파악하고 결정한다. 그로 인해 도달한 결과값을 다시 학습한다.

이를 본 몇몇의 사람들은, 인간과 자동차를 이 대국에 비교했다. 이어서 말했다. 자동차가 등장했지만, 여전히 육상 경기를 한다. 기술이 발전했지만, 인간은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찾아냈다.

나는 이 판단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알파고(인공지능)은 인류가 이제껏 마주한 기술과는 다르다. 이전의 기술들이 기능을 중심에 둔 것이었다면, 인공지능은 학습이 중심이 된 기술이다. 기능을 발휘하는데 인간이 필요했던 이 전과 다르게 인공지능은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기능을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어질 것이다.

교육에서 본 인공지능의 관전포인트

지금 수준의 인공지능을 가능하게 한 기술을 살펴보자.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 딥 러닝, 강화 학습이다.

몬테카를로 트리탑색은 선택지들 중에 임의 선택을하고 확장하고 시뮬레이션 해보고 다시 선택지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딥러닝은 사람의 뉴런을 모방한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을 발전시킨 방식이다. 자세한 방식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는 게 나을 듯하다. 강화학습은 인공지능의 선택 결과에 상과벌을 주는 방식으로 학습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런 일련의 기계학습 알고리즘은 여러 학습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상과벌을 이용하는 스키너의 행동주의 학습이론 부터, 경험을 자기 만의 방식으로 구성해서 학습한다는 구성주의 이론까지.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방식은 인간의 그것과 닮아있다. 또 알파고와 딥마인드의 목표가 범용 인공지능이라면, 바둑에서 의료 등으로 적용 영역이 넓혀져 가는 과정에서는 비고츠키의 근접발달이론의 그림자가 비춰질지 모르겠다. 그래도 차이가 있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을 압도하는 계산 능력을 갖췄고 전기와 정비 외에는 필요로 하지 않는 점이다.


이렇게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그러나 지치지 않고 학습하는 인공지능이 결국 미래학자 커즈와일의 예측대로 수십년 안에 인류의 인지, 감각 능력을 뛰어넘는다면 인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참고) 여러 저명 인사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경고했다.

http://www.nytimes.com/2015/07/28/technology/elon-musk-and-stephen-hawking-among-hundreds-to-urge-ban-on-military-robots.html


사라지는 직업들, 지금의 교육은 뒤쳐져있다.

http://www.bbc.com/news/technology-34066941

위 링크는 미래에 어떤 직업이 얼마만큼 인공지능으로 대체될지를 보여주는 사이트이다. BBC가 구축했다. 단순히 반복하는 화이트 칼라 업종은 거의다 대체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텔레마케터telephone sales person 같은 경우는 99%가 대체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그것은 인간다움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난 자동차가 인간의 육상을 대체하지는 않았듯이 인공지능이 우리의 노동과 일자리를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것은 학습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직접 가르치는 기술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나은 경로(선택)를 탐색하는 기술이다. 거기에 상벌제를 통한 행동강화까지 추가 되었다.

https://www.bloter.net/archives/251528


앞으로, 전문직이라 불리는 직업들은 대체될 것이다. 그저 인공지능에 대한 감시나, 조언하는 자리 정도만 얼마간 남을 것이다. 예술도, 대중예술은 아주 빠르게 대체될 것이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거나 이루어지는 일은 소수의 취향으로만 남을 것이다. 이세돌이 4국을 이겼지만, 그건 이세돌의 승리일뿐.


유네스코가 시행하고 있는 개발원조 프로젝트인 EFA(Education for All)에서는 3R(쓰고 읽고 샘하고)을 위시한 초등교육이 중요시된다. 중등과 고등이 아니라 초등교육이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 이 능력은 바로 기본적인 사고력을 증진시키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인간다움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정의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사고하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하는가로 정의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애초에 교육은 내면적이었고 그 성질은 시대가 바뀌더라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교육이 뒤처져있다고 말하는 것은, 교육의 목표를 오독한 탓이다. 교육의 본질적인 목표는 원래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이었지, 자본주의의 혹은 사회에서 기능하는 부속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목표가 신자유주의와 시장주의의 왜곡에 의해 변질된것이지, 원래 그것이 교육의 목표는 아니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는 교육의 본질적인 목표인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 참된 인간이 되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출 기회를 얻었다.

교육이 뒤처진 것이 아니라

이제서야 교육의 본질에 다가설수 있게 된것이다.


당연히 인공지능과 함께 하는 법을 가르쳐야한다. 현실이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 문해 교육이 앞으로도 더 중요시 될것이다. 그 중에서도 프로그램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가르쳐야한다. 의외로 요즘 세대의 디지털 이해가 떨어진다. 익숙할 뿐 더 잘 알지 못한다.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더 발전해서, 학생들은 별다른 고민없이 직관적으로 사용할 뿐, 디지털 문해력이 더 뛰어난 것은 아니다. 이들은 날 때부터 이미 주어져있던 환경이기 때문에 질문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질문할 수 있게 만들어서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주체로 마들어야 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다음과 같이 예견한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05/2015050502054.html?Dep0=twitter

스티븐 호킹은 “완전한 인공지능(AI)의 발달은 인류 종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AI 위협론에 관한 견해는?

인류를 가장 놀라게 만들 발명이 ‘의식없는 지능(non-conscious intelligence)’이라는 데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의식은 없어도 지능은 고도로 높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말한다. 수백만 년 역사 속에서 고등 지능은 발달된 의식과 나란히 갔다. 오직 의식 있는 존재들만 고도의 지능을 필요로 하는 업무, 가령 사냥이나 체스 게임이나 질병 진단이나 논문 쓰기 같은 일들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 지능은 점차 의식과 분리되고(decoupling) 있다. 우리는 인간보다 체스도 더 잘 두고 질병 진단도 훨씬 더 잘 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의식없는 지능’을 개발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질문을 제기한다. 둘 중에 정말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인가? 지능인가 의식인가?

두 가지가 함께 나란히 진행되던 과거에는 이런 질문은 철학자들이나 한가롭게 고민할 문제였다. 하지만 21세기에 와서 이 문제는 급박한 정치적 경제적 이슈가 되고 있다. 적어도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지능은 필수적인 반면, 의식은 별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겁이 난다. 그런 관점에서는 우리 인간은 조만간 쓸모없고 무기력한 존재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도 기술의 힘으로 한 단계 진화해야 한다는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거칠게 말하면, 나는 우리가 직면한 주요 쟁점이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기술 발전을 감안하면, 인간이 자신을 어떤 우월한 종의 존재로 업그레이드하려 들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처럼 바꾸려고 할 것이다. 비유적인 말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다. 인간은 그전까지 전통적으로 ‘신적인’ 능력이라고 생각돼온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인간은 아마도 조만간 생명체를 자의에 따라 설계하고 만드는가 하면, 자기 마음 속에서 직접 가상의 현실을 옮겨다니고, 수명을 극적으로 늘리며, 자기가 바라는 대로 몸과 정신을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동안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혁명이 있었지만 그래도 인간성(humanity)만큼은 불변이었다. 하지만 수십년 안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성 자체가 급격한 혁명(radical revolution)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와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 신체와 정신도 유전 공학과 나노기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에 의해 변형될 것이다.

이것은 엄청나게 새로운 기회와 더불어 경악할 만한 새로운 위험을 낳게 될 것이다. 그것에 대해 낙관적인가 비관적인가 하는 것은 부질없다. 우리는 현실주의자(realist)가 돼야만 한다. 우리는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그것이 공상과학소설(SF)의 차원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의 심각성에 비하면 지금 정부나 시민 개개인이 걱정하는 다른 대부분의 문제들은 하찮게 보일 정도다.



나는 우리가 직면한 주요 쟁점이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가 이제껏 마주하지 못한 전환기에 있다. 과거의 기술적 전환과 지금의 전환은 다르다. 그러나 우리가 인지적인 발달과 성숙이 필요하지 않다고 얘기할 수 없다.

교육의 내용은 사실상 변한 적이 없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제 지식를 암기할 필요가 없다고 떠들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무언가를 외우고 있다.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인지 발달도 일어나고, 기초적인 지식 없이 정보를 찾고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교육이 지식의 습득이나 기능의 체득이 아니라 사고력과 신체의 발달과 성숙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인공지능 덕분에 우리는 성숙을 위해서만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