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도 지친 상태로 도착했다.
아프리카는 역시 아프리카였다. 덥고 건조하고, 물이 먹고 싶은데 마실 물이 마땅치 않았다.
탄자니아에 도착했을 때도 쉽지 않았지만, 다시 잔지바르로 떠나는 길은 더욱더 쉽지 않았다. 잔지바르를 꼭 가야 했던 건 아니었지만 잔지바르는 우리와 여행을 하면서 자주 만나던 '혜미'가 먼저 도착해서 보낸 문자 하나에 배낭을 챙겨 들었던 곳이다.
그녀는 우리보다 일정이 더 빨라 이미 도착해 있었고, 발품을 팔며 돌아다닌 결과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곳에서 숙소 찾기란 튼튼한 두 다리가 하는 일이다. '부킹 닷컴'이나 중계 업체를 이용하는 게 어려워 직접 다니면서 숙소를 찾거나 지역주민에게 물어보는 방법이 가장 좋다. 나는 운이 좋게도 '혜미'가 먼저 숙소를 잡아둔 게 있어서 고민도 없이 바로 들어갔다.
바닷가의 숙소는 진짜 저렴했다. 가격이 도심의 반정도밖에 안 되는 가격이었다. 심지어 집을 돌봐주시는 집사님이 식사를 만들어 주는데, 미리 주문하면 시간 맞춰 먹을 수도 있었다. 우리가 필요하다면 술은 직접 사와 먹기만 하면 되는 곳이었다. 우린 아프리카의 천국과 같은 이곳에 한참을 머물렀다.
마을은 아주 평온했다. 잔지바르는 작은 섬이라 특별히 시끄러울 일도 없고, 바쁠 일도 없다. 섬 전체가 한 마을이고, 동내였다. 가끔 본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거나 먼 거리 이동에 툭툭이를 타는 것 말곤 늘 걸어 다니며 온 마을을 헤집고 다니는 일이 일상이 되는 곳이다.
외국인, 특히 동양 외국인은 이 마을에서 우리뿐이었다. 사람들은 인사를 건네고 우리도 인사를 한다. 케냐에서 처럼 '칭챙총'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아주 가끔 아이들이 그러면 사탕하나 주면서 우린 '안녕'이라고 인사한다며 가르친다. 몰라서 그런 거다.
나도 어렸을 땐, 유독 피부 까만 아이를 깜둥이라고 놀렸으니 지금 내가 당하는 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고 올바름을 가르쳐 준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준비해 주신 식사도 맛있고, 만들어준 주스도 맛있었다. 쌀이 없어 밥이 없더라도 굳이 생각나지 않는다. 마음은 김치찌개에 스팸 하나 올리고 계란후라이 노른자 깨어 비벼 먹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얹든지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보단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상 위에 있을 때 더욱 즐겁다.
메뉴는 주로 카레다.
소고기를 넣은, 닭은 넣은, 생선을 넣은 카레.
탄수화물은 난이다. 빵이라고 해야 하는지 난이라고 해야 하는지 잘 모를 어느 경계의 구운 반죽은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아주 달콤한 꿈을 꾸는 듯하다.
먹는 것만 자랑하는 게 아니다. 진짜는 바로 숙소 앞 풍경이다.
뭣하나 걸림이 없는 전망을 자랑하는 바닷가의 집은 서로의 구역을 지키며 서 있다. 파도는 올 듯 말 듯 집 앞 오래 사장까지만 다녀가고 선을 넘지 않는다.
아프리카는 신기하게 하늘이 한국보다 더 가까이 있는 것 같다. 구름이 만들어내는 착시인지 진짜 하늘이 더 가까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바다에 누워있으니 영화관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는 것처럼 좋다.
썰물이 되어 물이 나갈 땐 그 나름의 풍경이 새롭다. 오가는 파도에 리듬에 익숙해졌다가. 멀어지는 바닷물을 보고 있으니 세상을 움직이는 건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 답지 않게 시원하다. 직사광선을 피해 나무 밑에 들어가 썬베드에 누워 있으니 생각보다. 많이 시원했다. 멀어져 가는 파도, 풍성한 나뭇잎에 가려 쉽게 들어올 수 없는 햇볕은 분위기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준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 바로 이곳 잔지바르다.
그렇다고 마냥 누워 있다가 온 것은 아니다. 잔지바르는 이곳이 가진 특기를 잘 살려 재미있는 놀이를 만들어 두었다. 그것은 바로 '카이트 서핑'
쉴 새 없이 불어오는 바람을 온전히 에너지로 바꾸어 얇은 판 위에 올라 수면 위를 타고 다니는 일종의 수상레포츠다. 바람미 많이 불면 끝없이 날아가는 탓에 모터가 달린 보트가 무리를 쫓아다닌다. 멀리서 보면 눈 오는 날 강아지가 하늘만 보고 기뻐 날뛰는 모습 같아 보인다.
카이트 서핑은 배우는 것도 하루면 된다. 바람이 워낙 좋아 연을 들고 있기만 해도 쉽게 바람을 탈 수 있다. 다만 어려운 것은 바람을 우리가 조종할 수 없어 연이 갈 수 있는 방향을 쉽게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길고 긴 이곳 생활 중 가장 활력이 돋아나는 시간이 바로 연을 타고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이다.
낮에 연을 타고 씻고 나오면 어스름하게 지는 해를 볼 수 있다. 금방 달이 뜨고 별이 수 놓인다. 호주에서 본 하늘도 남반구에서 보는 하늘이라 늘 보던 하늘과 달랐는데. 이곳 아프리카도 남반구라 하늘이 낯설다.
평소엔 잘 모르다가 바뀌면 달라 보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하늘이 그렇다. 뭔가 달라 보이는데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
별이 빼곡하게 보이더라도 뭔가 달라 보이는 그 느낌은 말로 설명하긴 어렵다. 이과생들(나?) 은 지구과학적으로 설명하겠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이 모두 지구과학을 알 필요는 없으니 그저 올려다보며 감탄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닐까?
눈썹 끝을 정리하고 나서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묻는 여자친구에게 '오늘 왜 이렇게 예뻐"라는 말 한마디면 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