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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브이씨 THE VC Sep 30. 2022

"경쟁 불가" 인정한 어도비의 피그마 인수

'한국의 피그마' 후보는?


최근 어도비(Adobe)가 웹기반 디자인 협업툴 피그마(Figma)를 200억 달러(약 28조 원)에 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크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의하면, 피그마가 지난해 투자 유치 당시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100억 달러, 2022년의 예상 연순환매출은 4억 달러로 어도비가 기존 기업가치대비 2배, 연순환매출 대비해서는 무려 50배의 금액을 인수가로 지불한 셈입니다.


때문에 피그마의 잠재력 자체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수긍하면서도, 투자시장 위축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나친 오버페이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피그마 인수 발표 이후 어도비의 주가가 45% 가량 급락하는 등, 시장의 반응도 상당히 부정적인 모습입니다. 


어도비에 인수된 피그마(출처: 피그마)



주가 폭락에도  ‘오버페이 아니다’ 평가하는 이유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어도비에 있어 피그마는 충분히 200억 달러를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유명 애널리스트 벤 톰슨(Ben Thompson)은 자신의 뉴스레터를 통해 어도비의 주가 폭락은 시장이 어도비의 기존 가치를 오판(誤判)하고 있었기 때문일 뿐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즉, 주가에 미처 반영되지 않았을 뿐, 이미 피그마로 인한 어도비의 가치하락은 이미 수년에 걸쳐 진행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톰슨에 의하면, 피그마의 핵심은 웹 기반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어도비의 경우, 비즈니스 모델의 측면에서는 2013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Creative Cloud)를 출시하며 기존 라이센스 판매에서 구독 모델로 성공적인 전환을 이뤘으나, 제품 자체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기능적인 측면에서 업데이는 있었으나, 중요한 것은 '파일 형태로 작업하는 단독 앱'이라는 근본 컨셉 자체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를 이용하는 디자이너들은 각자의 작업물을 연결하고 공유하기 위해 외부 협업 툴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요. 톰슨은 바로 이 틈새로부터 피그마와 같은 신생 웹 기반 앱들이 나타나 디자인 시장에 대한 어도비의 장악력을 점진적으로 침식해 나가기 시작했다며 아래와 같이 분석합니다.


UI 디자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협업이다. 그러므로 웹의 한계에 의해 야기되는 성능의 희생은 그게 무엇이든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다. 즉, 어도비는 디스럽트(disrupt, 혁신적인 도전자에 의해 시장이 교란되는 것) 당하고 있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이미 장악하고 있는 영역에서 기존 고객들을 위해 더욱 강력한 기능을 제공하는데 집중해 온 어도비가 미처 대응하지 않고 있었거나, 대응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경쟁의 영역이 나타나도록 만들었다.


이때 새로운 기술은 웹에서 멀티유저 협업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반 기술, 새로운 경쟁의 영역은 협업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협업은 앱 개발 수요가 증가하고, 앱의 기능이 복잡해줄수록, 그리고 그러한 앱 개발에 참여하는 디자인과 개발 양측 인원의 규모가 커질수록 지속적으로 그 중요성이 증대해 왔는데요. 그럴수록 자연히 어도비에 있어 피그마는 점점 더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피그마는 디자인계 OS 될 것”, 어도비가 직면한 위기


이때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피그마가 어도비의 코어 제품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피그마, 스케치(Sketch)에 이어 점유율 3위에 그치고 있는 어도비의 UI/UX 툴 '어도비 XD'는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 번들의 일부일 뿐, 코어 제품은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이기 때문입니다.


상술했듯, 피그마의 강점은 성능의 희생을 감수하고 웹 기반으로 원활한 협업이 이루어지도록 지원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편집툴 자체의 성능만 놓고 보면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이는 피그마의 홈페이지에도 명시된 내용으로,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이용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피그마 측은 이렇게 답변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편집하고 있다면 어도비 포토샵을 쓰세요. 디테일한 일러스트레이션을 한다면 의심의 여지 없이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가 답입니다. 그러나 UX 디자인을 위한 최고의 툴을 찾는다면, 여기 피그마가 있습니다. 

어도비와의 차이를 설명한 피그마 홈페이지(출처: 피그마)


즉, 앱 개발 과정에서 개발팀과 기획팀에 앱 뷰를 공유하기 위해 앱의 특정 위치에 로고나 이미지를 삽입할 때는 물론 피그마를 사용하지만, 디자이너가 실제 그 로고나 이미지를 디자인할 때는 여전히 어도비의 코어 제품들이 쓰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전까지 디자인 워크플로우를 장악하고 있던 어도비가 이제는 피그마가 주도하는 워크플로우의 일부분으로 위치가 격하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 피그마가 입장을 바꿔 고성능의 편집 툴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한다면,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피그마가 API를 통해 서드파티 개발자들이 자사 편집툴을 피그마에 플러그인 형태로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점인데요. 이는 피그마가 직접 투자하지 않고도 비교적 손쉽게 고성능 편집툴을 자사 플랫폼의 일부로 제공함으로써 디자인 워크플로우에서 어도비를 밀어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톰슨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피그마가 디자인의 운영체제가 된 세상이 도래했다"며, 이번 인수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정리합니다.


피그마는 '디자인을 위한 운영체제'가 될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어도비의 질서에 따라 피그마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피그마의 질서에 어도비가 끌려가는 처지의 역전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즉, 어도비는 단지 디자인 시장에 대한 장기적인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그마에 대한-인용자) 스스로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수금을 지불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엄청난 돈을 지불할 가치가 충분하다!


즉, 피그마의 등장으로 디자인 파이프라인에 대한 장악력을 점진적으로 상실해 가고 있던 어도비는 피그마 인수로 장악력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피그마에 완전히 종속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했다는 것인데요. 인수 이전의 어도비는 사실 주가로 표현된 시장의 평가보다 불안정한 위치에 있었으며, 때문에 이러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피그마를 인수한 것은 매우 합당한 판단이었다는 것이 톰슨의 분석입니다.



레거시의 멀티유저화는 “거의 불가능”, 인수가 답인 이유


여기까지 봤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의문이 한 가지 있습니다. 피그마가 어도비를 대체할 만한 편집툴을 만드는 가능하다면, 역으로 어도비가 피그마를 대체할 만한 협업 툴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의 일부로 제공할 수는 없었을까? 실제로 어도비는 지난해 스페이스(Spaces)나 캔버스(Canvas) 등의 기능을 추가하고, 포토샵(Photoshop)을 웹버전으로 제공하기 시작하며 자사 제품에 대한 웹 적용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바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물음에 대해 톰슨은 "어도비가 무슨 짓을 하든, 클라우드 네이티브한 피그마와 달리,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 수트에 포함된 애플리케이션들이 데스크톱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며, 피그마가 편집툴을 개발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어도비가 협업이나 빌트인 버전 제어 등 웹 네이티브한 기능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합니다.


이는 다른 전문가들도 상당수 동의하는 부분으로, 특히 아말 도라이(Amal Dorai)의 설명을 참조해 볼 수 있습니다. 아노락 벤처스(Anorak Ventures)의 파트너이자 협업 소프트웨어 라이브루프(LiveLoop)를 창업해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에 매각한 바 있는 아말 도라이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피그마를 인수하기로 한 것은 "영리한 결정"(smart move)이라며 레거시 소프트웨어를 애플리케이션을 멀티 유저 협업이 가능하도록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nearly impossible)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말 도라이의 트윗(출처: 아말 도라이 트위터)


도라이는 라이브루프 인수 이후 오피스를 실시간 협업툴로 변모시키고자 마이크로소프트가 막대한 투자를 쏟아부었음에도 여전히 오피스의 협업 기능은 구글 앱스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당시 경험으로부터 이같은 결론을 도출했다고 설명합니다. 도라이가 긴 트위터 스레드를 통해 상세히 설명한 바를 간략히 간추리면, 레거시 소프트웨어에서 파일 포맷으로 인한 버전 일치와 하위호환성 문제를 해결하고, 수없이 많은 기존 기능을 멀티유저 환경에서 작동하도록 재정의하는 기술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데요. 도라이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배에 바퀴를 달아서 땅에서 달리게 만드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배를 녹여서 자동차를 만드는 편이 낫다"


즉, 어도비는 절대 피그마를 따라잡을 수 없으며, 피그마의 아키텍쳐를 이용해 어도비의 기존 애플리케이션을 새롭게 구축하는 편이 기존 앱을 피그마만큼 편리한 멀티유저 애플리캐이션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비용도 적게 든다는 것이 도라이의 결론인데요. 이를 톰슨의 표현으로 바꾸면, 피그마에 대한 "이번 인수는 경쟁에서 이미 패배했다는 사실에 대한 어도비로부터의 인정"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불황에도 식지 않은 협업툴 시장, ‘한국의 피그마’는?


이상의 내용을 참조해 보면, 어도비의 피그마 인수는 레거시 소프트웨어 기업들 사이에서 직접 만드는 방식으로는 떠오르는 웹 기반 스타트업들과의 경쟁에서 따라갈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피그마의 인수가에 대한 월스트리트의 부정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웹 기반 협업 툴 스타트업들의 가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높아질 것으로 점쳐집니다.


국내에서도 최근 기존 한컴오피스를 클라우드 기반 SaaS 형태로 제공하는 구독형 서비스 '한컴 독스'를 출시한 한글과컴퓨터가 지분 인수를 추진 중인 대만의 SaaS 전문업체 케이단모바일을 통해 국내 협업 플랫폼 '잔디'의 운영사 토스랩에 15억 원을 투자하는 등, 협업툴 스타트업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이들 레거시 플레이어들이 앞서 언급된 어도비의 사례와 같이 비즈니스 모델 차원의 전환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멀티유저 경험을 구현하고자 한다면 앞으로 관련 역량을 보유한 스타트업들의 가치는 더욱더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피그마'로 거론될 만한 스타트업으로는 어떤 곳들이 있을까요? 디자인툴 중에는 '프로토파이'를 주목해 볼 만합니다. 프로토파이는 구글 출신의 김수 대표가 설립한 스튜디오씨드코리아의 디자인툴로, 손쉽게 스마트 인터페이스 프로토타입을 구현하고, 코딩 없이도 스마트폰, 데스크톱, 텔레비전, 자동차 대시보드 화면 등 다양한 환경에서 테스트해 볼 수 있도록 합니다.


프로토파이의 디자인툴(출처: 프로토파이)


프로토파이 역시 팀이 공유하는 저장 공간에 프로토타입을 저장하고, 즉시 피드백을 받고, 재사용 가능한 컴포넌트 라이브러리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용이한 협업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Apple), 메타(Meta) 등 다수의 미국 테크 기업들과 BMW, 다임러(Daimler) 등 자동차 제조사, 디즈니(Disney) 등 미디어 기업들이 프로토타입을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운영사인 스튜디오씨드코리아는 올해 5월 105억 원 규모 시리즈 B 라운드를 유치하며 누적 224억 이상의 투자금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현재 80~100억 원 규모 후속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인 것으로 보도된 비즈니스캔버스의 '타입드' 역시 눈에 띕니다. 타입드는 분산된 툴을 통해 이뤄지던 자료 수집 및 관리, 문서 작성 등을 하나의 인터페이스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문서 기반 협업 툴로, 구글 워크플레이스 사용자들이 크롬 등의 브라우저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수집한 자료를 워크플레이스에 연동해 검색하거나 인용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타입드의 문서 협업툴(출처: 타입드)


구글 워크플레이스 기반으로 기존의 MS 오피스를 대체할 수 있을 만한 문서 협업툴을 제공하는 타입드의 접근 방식은 앞서 톰슨이 전망한 피그마의 성장 전략을 연상케 하는데요. 피그마가 API 기반으로 자사 플랫폼에 어도비를 대체할 수 있을 만한 편집 툴을 추가하듯, 구글 역시 워크플레이스 확장 기능처럼 기능하는 타입드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를 압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구글 역시 타입드의 이러한 잠재력에 주목하며 타입드를 공식 파트너로 선정하고 협업을 추진 중입니다.


그 외 지난해 말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60억 원 규모의 시리즈 A 라운드 투자를 유치한 화이트보드 기반 협업툴 '알로'의 운영사 오시리스시스템즈나 노션과 유사한 문서 기반 협업툴 '콜라비'를 운영하는 콜라비팀, 최근 SK브로드밴드로부터 400만 달러(55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글로벌 협업 플랫폼 '스윗'의 개발사 스윗테크놀로지 등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협업툴 시장을 둘러싸고 경쟁 중인데요. 보다 다양한 협업툴 스타트업들에 대한 정보는 아래 더브이씨 컬렉션 링크를 통해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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