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니야, <Atomic Habits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책 들어봤니?
- 많이 들어봤어.
- 워낙 유명해서 한 번 주문해 봤는데 네가 먼저 읽어볼래?
- 나도 읽고 싶었어.
- 그럼 네가 먼저 읽은 뒤에 엄마가 읽을게.
대개 내가 구입하는 책은 도서관에서 먼저 전자책으로 빌려 읽고 나서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Atomic Habits)은 책이나 강연에 종종 소개되어서 궁금했는데 도서관에서 빌리려면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습관에 관한 자기계발서는 여러 번 읽어서 주문할 생각이 딱히 없었음에도 이 책은 장바구니에서 결제하기로 사뿐사뿐 건너갔다. 혹시 딸이 읽을지도 모르니까. 딸은 독서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읽어보라고 한 책이 대개는 책상에 몇 달씩 놓여있고 수업 시간에 읽는 책 정도만 읽는다. 특히 소설은 나와 취향이 다르고 내가 추천해 준 넌픽션은 펼치면 바로 졸음이 온다고 한다. 단, 가끔 자기계발서를 추천해 주면 읽는 경우가 많고 소감을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올해 초에 이 아이가 학교에서 대범한 일을 저질러서 정학을 받을 뻔한 일이 있었다. 학생 주임쯤 되는 사람은, 딸이 학교를 대표해서 하는 모든 활동에 제약을 줄 거라고 했다. 나는 상당히 놀랐지만 별로 놀라지 않은 척 딸을 안심시키고 학교에 전후 사정을 말하여 정학이나 학교를 대표하는 활동의 제약을 받지 않는 선에서 무마되었다. 대학 원서 제출을 모두 마치고 대학에서 원서를 검토하는 기간인데 이 기간에 정학을 받는 경우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통보되고 합격이 취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기 인생이 여기에서 끝나는 듯 앞이 캄캄해졌다고 했다. 나는 아무리 어려운 순간에도 항상 길은 많은 법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다행히 정학을 받지 않았지만 만일 정학을 받았더라도 커뮤니티칼리지로 우회하는 방법도 있고 정학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대학도 있고 혹시 대학을 못 가게 되어도 대학졸업장 없이 할 수 있는 일도 많다고. 본인만 포기하지 않으면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딸은 이제 대학도 못 가는 것인가 앞이 캄캄한 순간 예전에 내가 권해 준 <The Pscychology of Money>에서 읽은 저자의 이야기가 생각났다고 했다. 그 책은 브런치에서 늘 좋은 책을 소개해 주시는 다른 작가님의 글에서 보고 딸에게 권해준 것이다. 안락한 환경 뒤에 숨은 비용이 삶을 무겁게 한다는 걸 딸이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권해주었던 책인데 이 책이 뜻밖에 역할을 한 셈이다.
이런 경험이 있어서 이 책도 선뜻 구입하여 권해준 것이다. 딸은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읽더니 나에게도 읽어보라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책 읽기 시작한 후 딸아이 방이 몰라보게 깔끔해지고, 표정도 밝아지고, 다른 생활습관도 좋아져서 그 책이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던 참이었다. 딸이 나에게 책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 책은 말을 기분 좋게 해."
읽어보니 대부분의 베스트셀러가 그렇듯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읽으면서 딸이 "이 책은 말을 기분 좋게 해"라고 덧붙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책 내용이 내가 딸에게 종종 하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즉, 엄마에게 늘 듣던 이야기이지만 이 책은 내가 그 말을 실천하고 싶게 만들어. 그런 뜻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습관이 중요하다는 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내 나이쯤 되면 스스로 깨치거나 주변 사람을 통해서 배우는 삶의 이치 같은 거니까. 하지만 딸이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나의 잔소리가 아니었던 거다. 듣기 싫을 때 지껄여대는 엄마의 잔소리는 맞는 말일지언정 힘이 없는, 아니 안 하느니 보다 못한 말이었을 거다. 아이를 기르면서 지껄인 수없는 "맞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을까? 상대방 기분이 언짢아지면 말의 내용이 가슴에 닿는 일은 대개 일어나지 않으니까.
이 책을 읽은 후 내가 배운 것은 글의 내용보다는 전달의 방식이다. 책에 나온 내용이라기 보다 그 책을 읽은 딸의 소감에서 배운 거다. 내가 배운 삶의 소중한 진리가 젊은 사람들에게 진부한 잔소리가 되지 않도록 말을 아끼는 것이 중년을 지나는 사람으로서 몸에 익혀야 하는 습관임을. 책에서 배운 부분을 적용하자면, 좋은 습관을 들이려는 의지보다 좋은 습관을 쉽게 들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제 말을 아끼는 습관을 들이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