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분은 종종 함께 오시는데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다. 식당 사장님과 주방에서 일하시는 직원이시다.
사장님은 본인보다 연세 많으신 주방이모님을 '여사님'이라고 꼭 불러주신다. 그리고 주방에서 일하시는 이모님은 사장님 대신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가게에 남자 사장님이 계신가 보다.
처음에 같이 오셨을 때는 무슨 일을 하는 분들인지 몰라서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일까 호기심이 생겼다. 그것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여사님' '사모님'이라 부르면서 존중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었다. 인품도 비슷한 것일까? 음식점 사장님도 장사를 하셔서인지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 매너가 좋은 손님 중 한 사람이다. 여사님이라 불리는 주방이모님도 마찬가지로 내가 깎아주면 너무 많이 깎아주는 거 아니냐며 먼저 말씀하신다. 남들과 똑같이 깎아드린다고 말씀드렸지만 오히려 이렇게 많이 깎아줘도 되냐면서 꼭 '고맙다'라고 말씀하시며 좋아하신다. 그리고 두 분 다 더 깎아달라는 말씀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어떤 날은 내가 마음이 안 편해서 좀 더 깎아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사모님이 우리 가게 손님이었다. 그러다가 여사님께서 사모님 옷이 예쁘고 편해 보인다고 물어보셔서 모시고 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모님은 혼자서 쇼핑을 오시지만 여사님은 한 번도 우리 가게에 혼자 오신 적이 없었다. 여사님 옷을 고르실 때는 사모님이 꼭 동행해서 오신다. 그날도 두 분이 함께 오셔서 여사님의 옷 고르는 것을 봐주고 도와주셨다. 그리고 쇼핑도, 계산도 쿨하게 끝내고 가셨다.
매장에 계셨던 또 다른 한 팀. 옷을 다 고르고 계산할 시간..(가끔 나는 이렇게 여러 명이 오셔서 옷을 사고 계산할 때 묘한 긴장감마저 들 때가 있다. 아직도 그렇다. 오랜 단골들은 아니지만 아직 슈가인이 완전히 되지 못한 일부 손님들과 이제 슈가의 문턱을 드나들기 시작한 분들에게 긴장을 한다. 안 그래도 되겠지만 가격 흥정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내가 받아야 할 적당한 금액이 있고 손님 입장에서는 기분 나쁘지 않게 옷을 잘 사가야 하는 것이다. 제 값을 지불하면 문제가 없는데 늘 더 깎아 달라고 하는 이런 실랑이 때문에 내 마음이 상하든지 손님 마음이 상하든지 이런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잠시 이야기가 옆 길로 다녀왔다.
계산을 하려니 두 명 세명 더 깎아달라며 한 마디씩 옆에서 거든다.
"방금 계산하고 가신 두 분 보셨죠? 많이 사가지만 더 깎아달라는 말씀 안 하고 사가시는 거 보셨잖아요. 가격은 정해져 있어요."
물론 글이라서 이렇지만 사실 나는 손님이 마음 상할까 봐 표정연기부터 목소리 톤까지 갖추어서 손님을 어쨌든 기분 나쁘지 않게 설득시키려고 애쓴다.
"방금 손님들은 우리보다 부자겠죠."
"서로 사모님. 여사님. 부르던데."
"아니에요. 방금 옷 많이 사가신 키 작고 나이 좀 드신 이모는 식당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이세요. 물론 식당 주방에서 일한다고 해서 부자가 아니리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하시는 그런 여사님이 아니에요."
"사모님도 식당 주인이신데 여사님 옷 계산할 때 본인 옷값 깎아달라는 말씀은 안 하셔도 가끔 주방이모님 옷값은 더 깎아주라고 한 마디씩 하세요."
대화가 이쯤 되고 나니 우리 손님들 착하긴 하다. 빼 지게 떼쓰지 않고 '아. 그렇구나.' 하시고 역시 쿨하게 계산하신다. 말 꺼낸 입이 부끄러울까 봐 계산할 때 정말 과자값도 안되지만 천 원, 이천 원 더 내어드린다. 가르친 것 같은 미안함에 또 그녀들이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려고 내 할 말은 다 전달하고 깎아주는 금액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다음에도 슈가의 손님으로 편하게 오시고 나는 저절로 더 깎아주고 있을 것이다. 서로가 천 원, 이천 원으로 기분 상하는 일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호칭'
서로를 부르는 그 호칭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 두 분을 여사님과 사모님으로 부르고 있었다. 식당 사장님은 우리 가게에 처음 오셨을 때부터 나에게 줄곧 사모님이라고 부르셨다. 내가 가게 손님이 아니고 식당 사장님이 우리 가게 손님으로 오셨는데도 나에게 꼭 사모님이라고 여전히 그렇게 부르신다. 그리고 본인은 사장이지만 주방이모님을 '이모나 아줌마'라고 부르지 않는 모습에서 나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방이모를 '여사님'이라고 불러주는 식당 주인에게 손님들은 오히려 더 공손하고 예의를 지킬 것 같았다. 내가 그만큼의 좋은 언어습관과 예의를 갖추고 상대를 대하면 분명 상대방도 그렇게 따를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마음을 글로 전해주는 손님들이 종종 계시다. 이런 글을 접할 때 힘이 난다.
처음에 옷가게를 시작했을 때 호칭이 불편하기도 했다.
옷가게에서는 손님들에게도 '언니'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나이와 상관없이 ‘언니’라는 호칭을 썼다. 나는 언니가 없어서인지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언니라는 말이 잘 안 나왔다. 마땅한 호칭을 몰라 손님들에게 처음부터 그냥 '손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나이가 나보다 많든 적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통하는 단어였다. 단골들이 생겼지만 호칭은 여전히 '고객님' 보다는 '손님'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손님들의 이름을 알게 되면서 이름 뒤에 '~ 씨'를 붙여서 불러 주었다. 한결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최근에 새로 알게 된 손님들에게는 연령대가 좀 있어 보이는 분들에게는 모두 '사모님'이라 호칭한다. 그리고 직장을 다니시는 손님에게는 대부분 '선생님'이라고 불러준다. 그게 가장 무난하면서도 예의를 갖춘 호칭 같았다. 하지만 이미 오랜 단골손님들에게는 여전히 '언니'나 '~씨'라고 부른다. 그녀들에게 갑자기 선생님이나 사모님이라고 부르면 아마도 '언니, 왜 그래요? 이상해요.'라고 말할 것이다.
오래전에 나이 차이가 14살 정도 나는 동생에게도 꼭 '~ 씨'라고 부르며 존대를 해주었다. 그 벽을 깨는 데 몇 년이 걸렸다.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에게도 말을 놓지 못하고 늘 '~ 씨'라고 부르며 존대를 해주었는데 많이 친해진 다음에 그 동생은 결국 한 마디 했다.
"언니,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부를 겁니꺼?"
"언니는 내랑 친해지기 싫은가 보네요?"
이 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ㅇㅇ 씨, 말 놓는 게 정말 잘 안 되네. 인자 진짜로 말 편하게 할게요."
이런 식으로 조금씩 거리를 좁혀나갔다. 나는 띠 동갑도 훨씬 넘는 동생한테도 말을 쉽게 놓지 못했다. 그런데 친하지도 않고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 손님이 나에게 말을 낮출 때는 불쾌했지만 참아야 했다. 그런 사람들은 습관인 것 같았다. 나중에 친해지고 보니 평소 언어 습관이었다.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나쁜 언어습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벌써 오래전인데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손님들은 나를 어리게 보아 말을 낮추기도 했지만 그런 것 또한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함부로 말을 놓는 사람은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다른 가게를 가면 ‘이모’ 또는 ‘이모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성별 상관없이 그냥 '사장님' 또는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내가 직원이어도 나에게 사장님이라고 불러 부면 주인의식이 더 생길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인연이 10년 세월이 되었다. 열 살 아래. 동생 같은 손님에게 티셔츠를 끼워주었더니 감사의 문자를 잊지 않고 보내준다.
장사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 언니, 동생이라 부르던 그녀들과 긴 시간이 지났지만 조금씩 멀어지고 발길도 뜸해지면서 이제는 오지 않는 손님들도 있다. 반대로 새로운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으며 초지일관 꾸준히 오는 손님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또 언제 어떤 이유로 떠나게 되고 연락이 끊어질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렇게 떠나가고 끊어진 인연에 대해서 연연하는 마음이 덜해졌지만 여전히 가깝게 지냈던 손님들은 늘 생각이 난다. 발길이 뜸해져도 문득문득 생각나 안부를 전하기도 한다. 그것이 꼭 우리 가게에 들러달라는 인사도 아니며 옷을 사러 오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생각나서 안부를 묻는다. 어제는 정말 몇 년 만에 잊지 않고 방문해 준 손님이 있었다. 마치 계속 만나온 사람처럼 편했다. 변한 것이 없었다. '아. 나만 여기를 지키고 있으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때론 끈끈한 인연이 되어 좀 남다르게 만나고 있는 친구 같고 동생 같고 언니 같은 사람들이 있다. 좋은 인연은 너무 애쓰거나 일부러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비록 손님과 옷가게 주인이지만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이 '돈'이라는 생각으로 대하지는 않았다. 이만큼 자리 잡고 지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손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았으며 지금은 좋은 사람들만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옷가게를 그만두고 정든 손님들과 이별할 날도 올 것이다. 손님들은 서운해하겠지만 곧 다른 옷가게를 찾게 되고 단골이 되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