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계의 주인>을 보고
학교에서 매해 수많은 아이를 만난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교실에 앉아 있지만, 그 마음 안에는 각자 말못할 상처 하나쯤 품고 있다. 밝고 명랑한 아이도, 눈맞춤이 쑥스러운 아이도, 세상 무기력한 아이도 마찬가지다. 그 마음을 일일이 들여다볼 수는 없기에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이 숱하다. 종종 용기를 내어 제 상처를 나에게 불쑥 꺼내 보이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럴때면 고마우면서도 덜컥 겁이 난다.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까. 단어를 골라보지만 어설픈 겉핥기식 위로가 되어 버릴까봐 망설여진다. 어렵게 내민 진심에 최선으로 응하고 싶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영화 <세계의 주인> 속 ‘이주인’도 깊은 상처를 품고 있는 여고생이다. 누구보다 당차고 씩씩해 보이지만, 어린 시절 삼촌의 성폭력에 노출되어 마음 한구석 어둠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건넨 ‘성폭력 전과자 출소 반대 서명서’를 보고 묻어두었던 기억이 다시 들끓는다. 서명 안내문에 적힌 표현들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 ‘망가진 몸과 마음’-을 본 주인이는 반문한다. 씻을 수 없는 상처라고? 내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고?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난 괜찮다고!
한편 주인의 동생 ‘해인’은 마술에 푹 빠져 있는데, 학예회 발표에서 엄마와 누나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마술이 있다. 바로 각자의 걱정이나 고민을 적은 종이를 모두 사라지게 하는 마술이다. 그러나 종이들이 바닥에 널부러지며 마술은 실패한다. 아무리 감추고 지우려 해도 나 여기 있어, 하고 불쑥 고개를 드는 상처들처럼.
자동 세차장에서 주인이가 오열하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세찬 물줄기와 비누거품 속에서 주인이는 엄마에게 묻는다. 왜 그때 내 곁에 좀 더 있어주지 않았냐고, 왜 내 말을 믿지 않았냐고. 원망과 슬픔의 절규는 소음에 묻혀 외부에서 들리지 않지만, 그건 주인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상처를 쉬쉬하지 않고 토해낸 순간이었다. 나 괜찮지 않다고, 여전히 아프다고 말이다. 세차가 끝난 후의 차처럼 말끔해질 수는 없겠지만, 그 울음은 주인이에게 꼭 필요한 통과의례였을 것이다. 말없이 죄책감만 삼키던 엄마는 나지막이 딸에게 묻는다.
“한 바퀴 더 돌까?”
주인이가 다니는 태권도장에서 함께 운동했던 ‘미도’ 역시 같은 상처가 있다. 친족 성폭력으로 청소년기에 가출과 방황을 거듭하다가 도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미도는, 라면을 끓여먹던 중 기둥에 그을음을 남긴다. 세월이 흘러 새로 페인트칠을 하면서도 관장은 그 흔적만 일부러 남겨둔다. “그건 따로 주인이 있다.”라고 하면서. 어쩌면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고통의 기억이 미도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그리고 상흔을 덮을 권한은 오직 당사자인 미도에게만 있다는 것도.
정현종의「방문객」이라는 시가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이 시의 내용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한 사람을 향한 환대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상처 입은 마음의 갈피, 그 사이사이를 함부로 닦아내거나 덮어 버리지 않는 조심스러움, 나는 너를 다 알지 못한다는 겸손이 누군가의 세계를 마주할 때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가 아닐까.
학교의 아이들 또한 그렇게 온다. 각자의 과거와 상처,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품고서. “딱 보면 알지.”라는 말을 더러 하곤 했는데, 그 오만의 위험을 이제는 안다. 아이를 한 단면으로 판단하지 않고, 겹의 존재로 바라보는 일. 그것이 내가 매해 만나는 수백의 세계를 향한 환대의 출발일 것이다.
영화의 제목 <세계의 주인>을 곱씹는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이에게 익명의 쪽지가 도착한다. “나도 너와 같은 경험이 있어. 나도 이제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고마워.” 쪽지 속 한 줄 한 줄이 반 아이들의 서로 다른 목소리로 낭독된다. 쪽지를 누가 보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같은 상처를 공유한 이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위안이자 단단한 연대가 될 테니까.
피해자의 삶을 몇 마디 말로 규정하는 서명 안내문 앞에서, 내가 망가진 것처럼 보이냐던 주인이의 외침은 그따위 기억이 내 삶을 무너뜨리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의지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상처와 눈물과 사랑과 행복이 복잡하게 뒤얽힌 한 인간의 세계를 본인 외 누가 함부로 정의하고 훼손할 것인가. 각자의 세계를 지키며,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교사로서,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저 “한 바퀴 더 돌까?”라고 물어봐주는 일, 섣불리 새 페인트로 얼룩을 덮으려 들지 않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