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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북 Aug 24. 2023

운명처럼 가족이 되었다

위로와 회복

어쩌면 나에게 첫 아이일 수 있는 크리스토퍼가 대학을 졸업한다는 소식에 뭉클하다.

큰 상실감에 빠져있을 때 크리스토퍼는 운명처럼 나에게 찾아왔다.


아마 이맘때였던 거 같다.

오랜 시간 기다려온 아이를 잃고 비 온 뒤 축축이 젖은 길거리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던 날. 남편은 묵묵히 옆에서 내 어깨를 잡아주며 함께 울음을 삼켰다. 다들 당연한 듯 누리는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 걸까. 그때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던 건지 이제는 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고 영원한 것도 없다는 걸.


가까운 이들이 함께 아파하고 위로해 줬지만 상실감은 도저히 채워지지 않았다. 나에게 기댈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나의 울음을 들어주고 괜찮다고 안아줄 존재가 절실했다. 그날도 비가 내렸었지. 공허한 눈으로 티브이를 바라보다 어린이 결연 캠페인을 알게 됐고 마치 난 무언가에 홀린 듯 일어나 인터넷에 접속했다. 후원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사진들이 마치 상품처럼 줄이어 보였고 후원할 아이를 선택한다는 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난 사진이 보이는 페이지를 벗어나 당시 후원이 가장 필요한 국가의 아이를 후원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기다렸다. 얼마 후 받은 한 장의 사진 속에는 작고 까만 아이가 어색한 듯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간다의 여섯 살 남자아이 크리스토퍼와 대한민국의 나는 어쩌면 서로 한 번도 닿을 수 조차 없는 지구 반대편에서 그렇게 서로 만났다.


사랑하는 후원자님께.
많은 아이들 가운데서 저를 후원 아동으로 선택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제가 공부를 잘하도록 기도 부탁드려요. 저의 꿈은 의사선생님이예요.
저의 가족은 아빠, 엄마, 두명의 남형제와 두명의 여행제가 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공부는 영어예요. 좋아하는 음식은 고기와 밥이구요. 좋아하는 색은 분홍색이예요. 축구를 제일 좋아하구요, 모세 이야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이야기예요.

안녕히 계세요.


아직 글을 쓰지 못했던 아이의 말을 교회 선생님이 대필해 주셨다고 한다.

크리스토퍼가 처음 보내온 편지를 잊지 못한다. 짧은 글과 그림이 얼마나 앙증맞던지, 당장 답장을 보냈다. 내가 크리스토퍼를 선택한 게 아니라 크리스토퍼가 나를 선택해 줘서 너무 고맙다고. 그리고 앞으로 크리스토퍼의 꿈을 위해 옆에서 함께 걸어가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난 종교가 없지만 우리에겐 종교가 무의미했다. 크리스토퍼 형제의 갑작스러운 죽음, 부모님이 일자리를 잃고 우간다의 오랜 가뭄에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파할 때, 크리스토퍼는 나에게 함께 기도해 달라 했고 난 이 세상의 모든 신들께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다행히 그동안 크리스토퍼는 잘 자라주었고 우리 부부에게도 기적처럼 소중한 두 아이가 찾아왔다. 크리스토퍼는 그 누구보다 기뻐해줬고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줬다. 그렇게 우린 오랜 시간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어느 날 결연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결연을 마무리하는데 공부를 잘했던 크리스토퍼는 대학을 가길 희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 대학까지 후원할 건지 결연을 마무리할 건지 의사를 물어봤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처음 크리스토퍼와 한 약속처럼 아이의 꿈을 위해 옆에서 함께 걸어가 주는 거. 난 대학 축하금과 졸업때까지 후원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얼마 후 크리스토퍼에게서 한 장의 편지가 왔다.  끝까지 후원해 줘서 감사하다며 자신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이제 그 아이가 대학을 졸업한다고 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공부를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한 크리스토퍼가 너무 대견하고 기특하다. 비록 만나지는 못했지만 매해 아이의 성장과정이 담긴 사진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나도 함께 성장해 갔다. 크리스토퍼는 나에게 늘 고마워 하지만 오히려 난 크리스토퍼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나의 큰 상실감을 채워주고 나의 오만함을 깨우쳐줘서, 사랑의 모양은 다양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걸 알려줘서 고맙다고.


어제 사회 진출을 앞두고 있는 크리스토퍼에게 양복 한 벌을 보내며 진짜 우리의 이별이 다가오는 게 느껴져 마음 한 편이 아려왔다. 기쁘면서도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첫출발을 기쁜 마음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또 다른 꿈을 꾸는 아이에게 작은 힘이 되길 바라며 후원을 이어가려 한다. 피부색과 성별, 나이와 종교가 달라도 우린 언제든 서로에게 힘이 돼주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걸 많은 분들도 느껴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해준 크리스토퍼. 에발~ 고마워~ 진짜 네 꿈을 마음껏 펼쳐보길..

언제나 널 응원하고 기도할게.


나 또한 매일이 감사함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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