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도 고양이 필터를 쓴다

프로이트와 베르그송을 신당에 불러본 날

by 잭옵

이런 추위를 담뱃불로 녹이려 했던 건 멍청한 짓이란 걸 뉘우치면서 들어왔다.


따뜻한 온기가 반겨줬다.


깔깔이를 귀찮다는 듯 벗어버리고 몸을 부르르 떨면서 책상 앞에 앉았다.


몸에 남은 한기를 털기 위해서지, 우신이 아직 들어온 건 아니었다.


책상 오른편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책,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방울을 한번 흔들고 다시 원래 자리에 내려놨다.


이번엔 왼손이 각주쌀통 휙휙 저었다가 쌀알같이 구겨진 종이 두 개를 꺼내 책상에 떨어뜨렸다.


경쾌하게 굴러갔다. 리듬에 맞춰 부채가 처러럭~ 소리를 내면서 펴지고



"어리석음만이 인간에게 영원한 행복을 준다.


어리석음만이 인간에게 영원한....


어리석음만이...."



중얼거리면서 얼굴에는 미소가 점점 퍼져가고 있었다. 유쾌하게 웃으면서 종이 두 개를 펴봤다.



"프로이트 uncanny? 그리고 베르그송의 경직의 기계성? ㅎㅎㅎ"


"이 아저씨가 또 희한하걸 뽑아도 놨네"


그녀는 있지도 않은 귀밑머리를 뒤고 넘기면서 투덜댔다.


우신이 내려온 것이었다.



"안락하고 익숙하던 집이 갑자기 다르게 느껴지고


어느 날 식구들이 이상하게 다가오고


늘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남처럼 느껴지는 건 공포스러운 일이지"


그녀는 각주쌀을 만지작 거렸다.



"골목길에 항상 불 꺼져 있던 폐가에 어느 날 갑자기 불이 켜져 있다고 생각해 봐. 어우~ 소름"


귀신도 두려운 것이 있는지. 그녀는 몸을 떨었다.



"그와는 다르게 하루 두 갑씩 담배 피우는 사람이 새우깡을 담배처럼 물고 있는 모습이나


콜센터에서 일하는 친구가 자기도 모르게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비음을 많이 섞어 흉내 냈다.



"이런 경우는 우스꽝스러운 경우지. 가만가만 공통점은 익숙하던 것에서..."


귀밑머리 돌리듯 허공에 손가락을 돌렸다.



"완전 다른 두 방향의 감정이 나온단 말인데. 한번 섞어 볼까? Shake it???"


재미를 발견한 듯 눈이 반짝였다.



"아주 이쁜 나같이 이쁜 여자애가 있었던 거야. 그래서 거울 보는 게 취미에서 습관으로 바뀐 거야.


틈만 나면 거울 보면서 웃는 걸 즐겼어. 즐길 수밖에"


거울이 없는 신당을 두리번거리는 그녀



"그런데 늘 그렇듯 거울을 보는데 갑자기 뒤에 악령이 슥~ 지나가는 거야. 헉~~


그 아이도 놀랐지만 '잘못 본 걸 거야'라면서 애써 아닌 척했지"


장난기 있는 웃음을 띠며 이어갔다.



"그렇지만 거기서 끝나면 재미없지.


그 이후로도 거울에서 악령이 자주 나오는 거 아니겠어?


그렇지만 거울만은 끊을 수 없는 아이."



"온갖 엉뚱한 방법을 찾아낸 거지. 거울을 잽싸게 봤다가 고개를 돌려버리는 방법.


악령이 나올 틈도 안 주고 쉭 쉭 보는 방법.


악령은 어떻게든 거울에 나와보려고 하지만....


그게 되겠어? 되겠냐고 ㅋ"


웃으면서 계속 이야기했다.



"또 아주 작은 얼굴만 나오는 손거울을 이용하는 팁을 발견해 버렸지.


딱 아이 얼굴만 볼 수 있는 거울인 거야.


그러니까 악령은 뒤에서 배회하지만 거울에는 나올 수 없다는.... ㅋ"


그녀는 혼자 큭큭 거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거울 대신 핸드폰을 이용해 자기애를 즐기는 거야.


필터를 이용하니까 아무리 악령들도 귀여운 고양이로 바뀌어 버리는 ㅋㅋㅋㅋ"



그녀는 부채를 흔들면서 좋아했다.


우신당 유령 필터.png


나는 이런 때를 이미 여러 번 봤다.


그녀는 기분 한번 좋아지기 시작하면 말이 많아진다.


지금도 무언가 더 말할 게 있는 듯이 보였다.


이럴 때 멈추는 게 항상 좋다고 생각한다.


저번에 그녀는 흥분한 나머지 3시간을 지치지도 않고,


혼자 떠들어 턱이 너무 아팠다.



찹! 부채를 접고 책을 가볍게 치고 나서는


원래 자리에 내려놨다.


문득 기계적으로 내려놓는 이 루틴에 변화를 줘야 하나?


하면서 까끌까끌한 수염을 만졌다.






오늘의 인문각주

• 프로이트의 ‘언캐니(uncanny)’
 - 출전: 지그문트 프로이트, 「Das Unheimliche」(1919).
 - 내용: 원래 편안해야 할 집, 가족, 일상이 어느 순간 낯설게 느껴질 때 생기는 섬뜩함.

• 베르그송의 ‘경직의 기계성’
 - 출전: 앙리 베르그송, 『웃음: 희극의 의미에 관한 시론』(1900).
 - 내용: 살아 있는 존재가 습관·기계·자동응답처럼 굳어버릴 때, 그 틈에서 웃음이 나온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