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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강령 Nov 01. 2017

저는 '담배 피우는 여자'입니다

그렇게 안 생겼지만.

걔 담배 피워.


대학에 들어와서 막 CC를 시작했을 때, 애인의 과 친구를 질투했다. 똑똑하고, 예쁘고, 성격까지 좋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애인은 그런 나를 안심시키겠답시고 '진짜 그냥 친구다', '내 스타일 아니다'등등 여러 핑계(?)를 짜냈지만 내 질투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안심을 하게 됐는데, 그녀가 담배를 피우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애인이 '담배 피우는 여자'를 좋아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애인도 그런 내 생각을 미리 알아챘을 테다. "걔 담배 피워."라는 말 안에는 '내가 담배 피우는 여자를 좋아하겠어?'라는 무언의 사인이 담겨 있었다.




담배 포비아


애인의 말을 듣고 안심하며 동시에 했던 생각은 '그렇게 안 생겼는데?'였다. 어쩐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모두 쎈캐거나 소위 말하는 양아치(?)같이 생긴 사람일거라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지배하고 있었다.(그런 이미지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겠으나 내 취향은 아니었다.)


사실 화보나 영화, 드라마 등 스크린에서도 담배는 어둡고, 카리스마 있고, 강한 느낌으로만 그려지지 않나. 노려보거나 어딘가 사연있어 보이는 표정을 짓거나 흑백 처리를 한다거나. 커버 사진을 웃는 표정으로 찍은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청순의 대명사 김태희도 담배를 들면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 된다.


고등학생 때 반 친구가 담배를 피운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애는 담배 냄새를 풍기지도 않았고, 친구들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지만 나와 친구들은 알게 모르게 그 친구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운다'는 행위 자체에 이미지를 부여하고, 그 이미지를 뒤집어쓴 사람과 가까이 지내지 않으려 했다. 뭔가 불량스럽고, 성격 더럽고, 허세 그득한 철없는 사람 같았으니까. (왠지 모르게 여자는 더! 보기 불편했다.)


내 주변에는 (나를 포함한) 담배 포비아들이 많았다. 부모님, 고등학교 친구, 대학교 친구, 동네 친구까지 담배 피우는 사람을 싫어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냄새가 나서, 건강에 안 좋아서(?), 간접흡연으로 피해를 줘서 등등.


하지만 하나는 똑같았다. 그런 이유들을 알아채기도 전에,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 담배를 싫어하는 이유는 싫어한다는 걸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 같기도 했다. '미성년자가 피우니 문제가 되는 거지!'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다른 이유를 대며 욕하던 걸?(물론 나도 그랬다.)




이해하기 어려운 담배 피우는 이유, '힘들어서'


다행히 나이가 조금 들어서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전에는 '담배 피우는 사람 진짜 싫어!'였다면 '뭐, 그럴 수도 있지.' 정도. 하지만 여전히 그들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담배 피우는 이유'가 내게는 도대체가 납득이 안 가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왜 담배를 피우게 되었냐고 물으면, 열에 일곱은 담배를 처음 피웠던 때 겪은 힘든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들의 경험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해결책이 왜 담배일 수밖에 없었을까를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다. 나는 담배로 스트레스를 해소해 본 적이 없으니까. '세상에 다른 해소 방법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굳이?'


이해할 수 없으니 의도치 않게 선을 긋게 되었고, 그들은 내가 모르는 뭔가를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모르는 뭔가를 항상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밖에 없었고, 가까운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단편적인 사실 하나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려 든다는 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담배는 기호식품일 뿐이잖아~"라고 말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의 성격이나 숨겨진 사연(힘든 일이 있었을 거라든가)을 추측하려 드는 게 위선적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궁금해서 피우는 담배


열에 일곱이 힘든 경험을 얘기했다면 셋의 답은 '궁금해서'였다. 궁금해서 피운 담배는 어떤 담배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 없다. 힘들어서 피웠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그때 어떤 감정이었을까, 어떤 기분이었길래 담배를 사게 되었을까 등등을 생각해봤지만 궁금했다고 하면 그냥 '니코틴이 주는 쾌락이 궁금해서'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꼭 니코틴의 효력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궁금해서 피우게 된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내가 그 경우이니까.


궁금해서 담배를 피웠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들이 담배를 피우는 이유를 '상상'할 수밖에 없는 게 아쉬웠다. 그걸 굳이 직접 피워가면서 이해를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답하겠다. 내 짧은 경험으로는 굳이 그렇게 해야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을 나와 다른 세상 사람 취급하는 게 싫었고 담배가 어떻게 그들의 고충을 달래는 도구가 되는 건지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흡연자가 되어가는 과정


담배를 살 때는 일탈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못' 사던 물건을 내 손으로 사니 신기하기도 해서 기분이 좋았다. 담배를 피우는 순간은 그다지. 피우는 방법을 몰라서 태워먹기도 하고, 캡슐을 안 터뜨리기도 하고, 재를 너무 세게 털어서 담배를 끊어먹기도(ㅋㅋㅋ) 했다. 피우면 기분이 좋아진다던데 그런 기분도 전혀 못 느끼고 손에 밴 냄새와 입 안의 찝찝함 때문에 짜증만 났다.


기분이 좋아진다는 '니코틴 효과'를 처음 느낀 건 술을 마실 때 피운 담배에서였다.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을 때는 술 마시다 말고 흡연자들끼리 우르르 자리를 비우는 게 그렇게 얄미웠는데,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니 왜들 그러는지는 알겠더라. 술을 마신 상태에서 담배를 피우면 머리가 핑-도는 느낌의 니코틴 효과를 강하게 느낄 수 있고, 한 번 나갔다 오면 기분이 리프레쉬되기도 하고. 어쨌든, 니코틴 효과란 술을 마셨을 때 어질어질한 기분이 일시적으로 들었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유대감도 담배를 피우는 많은 이유들 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군대를 다녀와서부터 담배를 피우던 친구들의 "선임이 피우면 어쩔 수 없이 따라 피우게 돼~"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피우기 싫다고 하면 안 피울 수도 있다던데, 다 핑계잖아.' 하면서. 물론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해서 리스크가 있는 건 아니지만, 피웠을 때 형성되는 유대감을 놓치는 게 꽤 아쉬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담배 피워? 했을 때 YES라고 답하면 서로를 이어주는 선이 하나 더 생기는 느낌이랄까. 이건 금연을 하는 사람에게도 해당하는 것 같다. 굳이 지금 피우고 있지 않더라도, '나는 담배 피우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가치관만으로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듯.


그런 유대감과 니코틴 효과 때문에 술 마실 때만 담배를 피웠다가, 곧 그만뒀다. 담배를 피우는 이유 몇 가지를 알게 되었으니, 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담배를 들게 된 건 남은 걸 버리긴 아까우니(...) 혼자 있을 때 피워보자, 해서 피우게 된 때였다. 이때 각성효과를 알게 됐다. 담배를 피우고 나면 잠깐 동안 집중력이 확 올라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간간히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제 꼭 두 달 정도 된 것 같다.


'담배 좋으니까 피워봐라'는 뜻은 아니다.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주의 깊게 행동하지 않으면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거나, 건강에 안좋은 영향을 끼친다거나 하는 단점들도 엄청 많다. 하지만 단점을 얘기하는 사람들이나 자료는 훨씬 더 많이, 쉽게 접할 수 있으니 굳이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담배 피울 때 필요한 것들 - 장소, 음악, 매너


요즘은 혼자 있을 때만 담배를 피운다. 원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피웠는데, 술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 데다 혼자 피우는 게 더 좋아서. 담배가 좋은 이유에는 물론 니코틴도 있지만 (나는)피우는 그 시간이 좋은 게 크다. 그 시간이 왜 좋은지,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드는지 공유한다.


장소

새벽 6시 즈음


길을 가다가 골목에 숨어있는 흡연자들을 보고 화들짝 놀란 적이 몇 번 있다. 담배를 피우기 전에는 그들이 흡연하는 사실을 부끄러워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 사람들도 있겠으나) 직접 피워보니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게 눈 앞에 어른거리는 게 별로였다. 사람들 뿐만 아니라 움직이는 모든 것들.



커다란 조형물이나 멀리 있어서 바람에 흔들리는 게 보이지 않는 자연물 같은 걸 올려다보면서 담배를 피우면 생각이 정리된다. 일이나 인간관계 등으로 머리가 복잡할 때, 내 의지가 아니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장면을 보며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잡생각들을 쳐내고 중심을 잡게 된다고 해야 하나? 담배를 오래 피우는 사람들은 이런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아닐까.


조용한 동네에서 달을 보면서(화질..ㅠㅠㅠㅠ)



음악

Cheeze - 퇴근 시간


움직이는 게 없는 장소에는 소리도 없다. 가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앉아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멍 때리는 게 진짜 최고다. EDM이나 락을 좋아하는데, 담배를 피울 때는 잔잔한 음악을 선호한다. 나는 담배 고정 곡(?)이 따로 있다.


치즈의 퇴근 시간. 저녁에 우연히 담배를 피우면서 들었는데 외부랑 차단해주는 느낌이 들면서 차분해지기도 하고. 내 시간을 만들기에 좋았다.


매너


담배를 피우면서 들고 다니는 게 많아졌다. 흡연자 입장에서 글을 쓰기는 했지만, 비흡연자에게 흡연이란 꺼려지는 행위인 건 변함이 없다. 그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준비물 다섯 가지가 있다.


칫솔은 편의점에서 1+1행사하는 제품, 치약은 ALAND에서 샀다.


첫 번째는 양치 도구. 교정 때 수시로 양치하는 습관이 들어서 항상 들고 다녔는데, 따로 안 들고 다니는 분들도 있더라. 흡연을 한다면 들고 다닐 것을 추천한다. 담배를 자주 피우지도 않고(2~3일에 하나? 많아봤자 하루에 하나...) 내가 맡아도 냄새가 안 나는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까, 피울 때마다 양치를 한다.


향수. 공병이 꿀!


두 번째는 향수. 향수도 원래 뿌리고 다니는 건데 흡연하는 친구 중에는 담배 냄새 때문에 들고 다니기도 한다더라. 향수는 대용량을 사서 공병에 옮겨 다닌다. 공병은 주로 로드샵에서 구매하는데 더페이스샵 제품이 제일 좋았다. 가늘어서 들고 다니기에 적당하고 분사력도 괜찮고. 껍데기(?)를 분리할 수 있어서 쉽게 용량을 확인할 수도 있다.




세 번째는 비누. 비누는 원래 안 가지고 다니는데 담배를 피우면서 들고 다니게 됐다. 화장실에 비누가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어서 그냥 들고 다니는 게 마음 편하다. 조그마한 샤워젤 같은 것도 있던데 너무 금방 쓰는 기분이라 고체 비누를 사용한다. (사진은 무인양품.가로 세로 한 번씩 잘라서 네 등분해서 넣어다닌다.) 담배를 피우고 나면 손을 3~4번 정도 뽀득뽀득 씻는다. 안 그러면 냄새가 남아서 자리에 돌아와서도 집중이 안 되어서.


 

휴대용 재떨이


네 번째는 휴대용 재떨이. 별 거 아니지만 흡연자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인 것 같다. 흡연자 입장에서는 바닥에 널브러진 담배꽁초들이 아무렇지 않게 보일 수도 있지만, 비흡연자라면 꽁초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하고 그게 곧 흡연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기도 한다.


위 사진은 무인양품의 휴대용 재떨이다. 다른 곳에서도 파는지는 모르겠지만 워낙 무인양품을 좋아해서 그냥 샀다. 길이는 천 원짜리 지폐를 반 접은 정도고, 크기는 담배를 한 줄 피우고 담뱃갑의 남은 공간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작다. 인터넷에서는 안 파는 것 같고, 매장에서 구입해야 한다. (가격은 6,800원이었던가?)


재를 털고 꽁초를 모아뒀다가 분리해서 쓰레기통이 보이면 비워주면 된다. 웬만하면 비울 수 있을 때 비워주고, 재떨이가 있는 곳에서 피우게 된다면 굳이 쓰지 않을 것을 추천한다. 많이 모이면 냄새나니까.


담배 케이스


마지막으로 담배 케이스. 사실 이건 누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예뻐서(...) 소개한다. 대림 미술관에서 Color your life전 굿즈로 산 건데, 지금도 인터넷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본 용도는 담배 케이스는 아니고, 카드 케이스다. 지갑 대용으로 쓰다가 담배도 들어가길래 쓰는 중. 한 번에 5개 정도밖에 안 들어가서 자주 피우는 분들께는 비추천. (그래도 예쁘긴 예쁘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


내가 이렇게 담배에 대해 주절주절 자세히 늘어놓는 글을 쓰는 이유는 담배를 장려하기 위함도, 흡연자를 이해해달라(따가운 시선을 거둬달라)는 설득을 위함도 아니다. 담배 자체를 극도로 혐오하고 흡연자들을 주위에 두고 싶지 않다! 는 분들은 이 글의 타깃 독자가 아니다.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ㅡ나도 담배 포비아였으니까ㅡ 그분들께는 내 글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말.


<내 부끄러운 라이프 스타일>은 특이한 사람(본인이 겪어본 적 없는 유형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고는 싶은데 정보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을 위한 글이다. 다들 '굳이 내 얘기를 이렇게 늘어놓을 필요가 있나'하는 생각인 건지 부끄러워서인지 아무도 내게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해준 적이 없어서,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던 입장에서 너무 답답했다.(그래서 나부터 쓰는 걸로...) 앞으로의 글들 역시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주제들 많이 가지고 올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thinkaboutlove/85


*김태희 사진의 캡션에 대해 많이 의문(담배 피우는 게 카리스마 있어 보이는가?)을 남겨주셔서 여기에 답을 남깁니다. 본문에서도 말했듯이 담배 하나만으로 어떤 이미지를 씌우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글의 주요 골자이기도 하고요. 그런 문맥에서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 된다'를 '카리스마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의미로 생각하실 수도 있다는 걸 간과했습니다. 제 표현이 명확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보다는 담배를 들었을 때는 '카리스마 있는 사람'으로 연기를 한다는 뜻에서 쓴 말입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꼭 카리스마 있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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