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크기를 결정하는 건, 내 안의 욕망을 마주하는 일

모건하우절 '돈의 방정식'

by 생각하는 수첩

'경제적 자유'라는 단어가 시대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속에 숫자로 된 목표를 세워두고, 그 고지만 점령하면 완벽한 해방이 찾아올 것이라 믿으며 쉼 없이 달린다. 더 많은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투자 수익률을 좇으며 계좌의 앞자리가 바뀌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모건 하우절의 《돈의 방정식》은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불편한 진실을 짚어낸다. 부를 결정짓는 진짜 변수는 통장 잔고라는 '가진 것'이 아니라, 끝없이 팽창하는 '원하는 것', 즉 우리의 '욕망'이라는 사실이다.

욕망의 런닝머신 위에서 내려오기

수입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소비의 기준도 올라간다. 어제는 사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늘은 당연한 필수품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타인의 삶을 전시하며, "너도 이 정도는 누려야지", "이런 차를 타고, 이런 곳에 살아야 성공한 거야"라며 속삭인다.

만약 내 안의 욕망이 통제되지 않고 자본주의의 속도에 맞춰 팽창한다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들여도 우리는 결코 부유해질 수 없다. 늘어난 부만큼 결핍도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독립과 자율성이 결여된 채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을 쫓기 위해 돈을 쓴다면, 그것은 화려해 보이는 또 다른 형태의 빈곤일 뿐이다.

내면을 향한 관조와 객관화

결국 진정한 의미의 경제적 자유는 엑셀 시트 위의 숫자를 맞추는 재무적 스킬이 아니라, 고도의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작업에서 출발한다. 바로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에 대한 관조와 객관화'다.

지금 당장 내가 간절히 원한다고 믿는 것들을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소비는 온전히 나의 기쁨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회적 열망의 투영인가?' '이 물건이 내 삶에 본질적인 가치를 더해주는가, 아니면 단지 순간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진통제인가?'

나의 욕망을 제3자의 시선으로 덤덤히 관조하다 보면, 껍데기뿐인 가짜 욕망들은 서서히 떨어져 나가고 내가 진짜로 삶에서 지켜내고 싶은 핵심 가치들만 남게 된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상(像) 명확히 하기

우리가 돈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어야 하는 것은 타인의 부러움이 섞인 시선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온전한 삶의 주도권이다. 원하지 않는 상황이나 무례한 요구 앞에서 당당하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율성이다.

경제적 자유로 가는 길은 지극히 개인적이어야 한다. 남들이 정해놓은 '성공한 삶의 템플릿'을 지우고,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내 삶의 뚜렷한 상(像)을 그려내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욕망의 실체를 마주하고, 나에게 무의미한 것들을 과감히 덜어낼 수 있는 용기. 어쩌면 경제적 자유란 내 계좌가 뚱뚱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내 마음속 욕망의 군더더기를 깎아내며 삶의 본질에 다가가는 수행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정의 내리고 싶다. "경제적 자유란 내 흥미와 태도, 주변 환경과 재무상태, 바라는 목표와 꿈이 실시간으로 어우러진 종합 예술" 무엇 하나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경제적 자유라는게 탁! 하고 어느 시점에 주어지는 선물같은게 아니라는 뜻이다. 굳이 따지자면 자신감, 자존감, 흥미를 지향하는 열린 태도 등과 함께 지속 가능한 파이프라인이 있는 상태라고 할까?

다음 글은 내가 추구하는 '경제적 자유의 상태'에 대해 준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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