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의 균형과 순환
나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다정은 결국 무엇이었는가. 나는 다정을 자연처럼 설명하려 했다. 온도에 반응하고, 순환 속에서 얼굴을 바꾸는 존재로.차가운 시대에는 다정이 희망이 되었다.
따뜻한 시대에는 다정이 전략이 되었다. 그리고 전략이 과해지면 누군가는 다시 차가워져야 했다. 그 차가움은 다정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정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여기서 하나를 고백해야 한다. 나는 다정을 사랑한다. 그래서 다정을 의심한다. 쉽게 소비되는 다정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표면적 온기가 구조를 덮을 때
어딘가 서늘해진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안다.
차가움만으로는 아무것도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차가운 영웅은 문을 열 수 있지만 집을 짓지는 못한다.
문을 열어젖힌 뒤에는 다시 따뜻한 손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햇님과 바람을 모두 필요로 한다. 문제는 순서 그리고 균형이다. 다정함의 역사는완벽한 시대를 향해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것은 흔들리며 움직인다. 과잉과 결핍 사이를 오가며 조정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순환을 인식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다정을 말하고 있는가.
그 다정은 누구를 살리고 있는가.
혹시 누군가의 질문을 잠재우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반대로, 혹시 우리의 차가움이 또 다른 폭력이 되지는 않는가. 나는 내가 말하는 다정함의 역사가 누군가를 차갑게 만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또 누군가를 냉소적으로 만들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바라는 것은 다정을 사용할 때 조금 더 의식하기를. 온기는 방향을 가져야 한다. 공감은 구조를 동반해야 한다. 부드러움은 기준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럴 때 다정은 기분이 아니라 힘이 된다.
나는 다정이 결국 돌아온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다정은 한 번 의심을 통과한 다정이길 바란다. 차가움을 지나, 표면을 벗기고, 구조를 바라본 뒤에도 여전히 선택되는 다정. 그 다정은 누군가의 외투를 억지로 벗기지 않는다. 그저 곁에서 온도를 조절한다. 필요할 때는 햇님처럼, 필요할 때는 바람처럼. 우리는 완벽한 시대에 살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더 의식적인 다정을 선택할 수 있다. 세상이 차갑다고 해서, 혹은 나의 이야기가 끝났다고해서 다정의 역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당신의 차례다.
당신은 어떤 다정을 선택할 것인가.
기분을 지키는 다정인가, 미래를 여는 다정인가.
나는 여전히 믿는다. 다정은 약하지 않다. 다정은 단지, 온도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온도를 읽는 순간, 우리는 역사 속의 소비자가 아니라 다정함의 다음 장을 쓰는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