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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 Feb 26. 2019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폴 발레리에게 물어본다

젊은 날(또는 어린 날)에 가지고 다니던 수첩마다 적어놓았던 글귀가 있었다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폴 발레리라는 사람이 그렇게 말했었다고 어디선가 들은... 꼭 생각해서 계획해서 상황에 끌려다니지 말아야지 다짐했었다. 그의 말은 정말 맞았다. 적어도 수첩에 적어놓은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마흔이 된 지금은 폴 발레리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런데요 폴 발레리, 사는 대로 생각하면 안 되는 건가요?”

20-30대에는 내가 나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내 통제하에 삶을 계획하는 것이 진취적이고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빠른 속도로 이루어낼 수 있다. 몸도 책임도 덜 무거우니. 예상 시나리오도 그에 대한 성패에 대한 그림도 단순하다. 넘어지면 일어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넘어질 때 입은 상처도 금세 아문다. 그때는 그 상처마저도 삶의 밑거름이 된다.


그런데 마흔부터는 성급한 행동을 옮기기에는 고려할 짐들이 많다. 나의 책임, 나의 행동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줄줄이 리스트. 그러다 보니 적극적은 행동과 실천보다는 신중함이 필요하고 그 와중에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가 무수히 펼쳐질 수 있다. 이때 넘어지면 일어나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상처도 오래간다. 그래서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동안 원치 않는 상황에 휩쓸리기도 내 생각이 그 안에서 희석되거나 매몰되기도 한다. 딱 폴 발레리가 말한 후자의 케이스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마흔부터는 적극적인 나의 통제권으로 상황을 휘집고 생각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화살, 지나가는 바람에 낮게 몸을 숙이고 급한 상황에 종료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때가 종종 온다. 내기 몸을 적극적으로 일으켜 날아오는 화살에 장렬히 전사하는 것보다 더욱더 적극적으로 바닥에 몸을 대어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날들이 더 많다. 그러니 사는 대로 생각해도 괜찮다.


폴 발레리... 당신의 한 마디에 나의 20-30대는 참 좋았소. 그러나 마흔에는 당신의 말의 후자에 들어가리오. 당신은 옳았다오 마흔이 되기 전까지는. 하지만 마흔부터는 사는 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더라도 비겁하지 않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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