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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23. 2023

알콜중독, 회사를 끊는 게 답일까

알콜중독 치료를 위한 퇴사


알콜중독 상담을 받고 약을 받아왔다. 날트렉손, 아캄프로세이트, 자낙스 등이다. 날트렉손과 아캄프로세이트는 술에 대한 갈망을 줄여주는 약이고 자낙스는 불안증을 해소해 주는 약이라고 한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서 불안한 건 아니기 때문에 자낙스는 큰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날트렉손과 아캄프로세이트는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아침에 아캄프로세이트를 먹고 저녁에는 날트렉손을 먹으라고 지시해 주셨다. 만약 술을 마셔야 하는 날이 있다면, 술 마시기 전에 날트렉손을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또한 날트렉손의 경우 간에 부담이 많이 가니 웬만하면 술을 마시지 말라는 조언도 하셨다. 



일주일간 약을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두 번째 상담이 시작되기 전 일주일간 나는 약을 한 알도 먹을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빠질 수 없는 술자리가 매일 있었기 때문이다. 술자리를 갖기 전 날트렉손을 먹어보려 했지만 간에 부담이 간다는 말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아캄프로세이트도 같은 이유로 먹기 힘들었다. 


하필 정신과 상담을 받은 날부터 잡혀있었던 술자리가 전부 어려운 자리였다. 나만 가는 술자리였더라면 적당히 술을 조절했을 것이다. 회사 부장, 국장과 가는 술자리에서는 도저히 "술을 못 마시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선배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또다시 무리하게 술을 마셨고, 상담만 받았을 뿐 크게 진전된 내용 없는 일주일을 보냈다. 


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황 자체를 변화시켜야 할 필요를 느꼈다. 알콜중독 치료를 받고 있지만 나는 가족력도 없었고, 자의만으로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었다. 제대로 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어쩌면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기대, 일에 대한 욕심, 어쩌면 이 직무를 내려놓아야 알콜중독의 굴레가 끊어지는 게 아닐까. 



왜 계속 회사 다니는 거야?


고민이 많던 어느 날 평소 아주 친하게 지내던 홍보팀 직원 A가 술에 취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마 A도 평소라면 내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A는 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경력도 취향도 비슷해 주말에도 만날 정도로 친하게 지내곤 했다. A는 나를 기자가 아닌 인간으로서 아끼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고 했다. 


"아무리 일이 중요하다고 해도 제일 중요한 건 네 건강인 거 알지? 회사가 무리하게 일 시킨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갈아가며 일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처음 봤을 때는 그래도 생기가 있었는데 요새 너무 힘들어 보여. 홍보 입장에서야 당연히 업계에 남으라고 권하고 싶지만, 친구 입장에서 그 회사는 당장 그만둬야 할 것 같아."


내 상황을 돌아봤다. 회사를 그만두는 게 맞을까, 계속 다니는 게 맞을까. 어느덧 기업이었더라면 대리 혹은 과장이 됐을 연차까지 올라왔다. 일을 그만두고 기업 홍보팀으로 자리를 옮긴 동료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남아있는 동료들도 '기렉시트'를 외치고 있다. 


사실 나는 일을 그만둘 생각은 그전까지 하지 못했다. 어쩌면 술 빼놓고는 이 직업과 업계가 마음에 들었을지 모르겠다. 취재도 즐겁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즐겁고, 기사 쓰는 것도 적성에 맞았다. 무엇보다 생계가 걸려있다 보니 지금 당장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하지만 알콜중독은 건강 악화를 가져왔고, 아무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는 게 옳을 수 있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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