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시절에 먹었던 감자채 볶음이 생각나요
요즘 우리 가족의 저녁 풍경은 밥을 먹으면서 ‘스페인 하숙’을 보는 것이다. 스페인 하숙에서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나도 수박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스페인 하숙을 보는데 하숙분들의 반찬으로 감자채 볶음이 나왔다.
감자채 볶음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평소에 탄수화물이 주를 이루는 반찬을 싫어했다. 그래서 엄마는 감자채 볶음 같은 반찬은 아주 가끔 반찬가게에서 소량으로 사 오곤 했다. 어찌 됐든 감자채는 내가 먹는 상에서 메인이 된 적은 없었다. 유학시절 전까지는,
내 첫 유학은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유학 생활이 긴 해도 엄마가 꽤나 잘 챙겨줘서 반찬이 상해서 버린 적은 있어도 부족해서 배를 곯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요르단에서의 유학 생활은 정말 비참했다. 특히나 생활에 적응하기 전까지는 어디에서 식재료를 사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한국에서 가져온 캔 반찬들로 하루하루 끼니를 때웠다. 그 캔 반찬들마저 떨어져 갈 무렵같이 살던 언니는 어디선가 감자와 양파를 사 와서 요리를 해주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아랍어로 감자는 بطاطا(바따-따), 양파는 بصل(바슬)이라고 한다.
[만약 요르단에 가서 감자채 볶음 재료를 사고싶다면 식료품점에 가서 이렇게 말하면 된다
: بدي بطاطا وبصل
(비띠 바따따와 바슬 ; 감자랑 양파 주세요)]
아랍의 감자는 한국의 감자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 그러나 양파는 좀 특별하다. 다른 아랍지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요르단 양파는 여름에는 성인 남성의 주먹만큼 커졌다가 겨울이 되면 아기 주먹보다 작아진다. 그래서 처음 우리가 유학 갔던 여름에는 양파를 한 3개만 사 와도 오래오래 먹을 정도로 양파가 컸는데 겨울에는 양파를 사면서도 이걸 사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언니는 우리 주먹 2개를 합친 것 같은 양파와 감자로 한국에서 먹는 것 같은 감자채 볶음을 해줬다. 평소에는 별로 먹지도 않던 반찬인데 그날은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 감자채 볶음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반찬처럼 와구와구 먹었다. 그렇게 험난한 유학 생활을 뒤로하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감자채 볶음은 나에게 요르단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준다. 말도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 내 입에 맞는 반찬 하나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아마 스페인 하숙에 머물렀던 한국인들도 평소에 즐겨먹지 않던 반찬들을 그곳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처럼 먹었을 것이다. 기나긴 순례길 끝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고국의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갑자기 요르단에서 먹었던 감자채 볶음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