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명상 이전의 내가 아니다

리더들을 위한 명상 소사이어티 '센터원' - 고요의 바다 2기(5회기3)

by 김희우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매일 쏟아지는 할 일과 정보의 파도 속에서 잠시 잊힌 듯 보이지만, 인간 내면에 자리한 이 질문은 사소한 일상 너머를 끊임없이 향해 간다. 마치 우리를 인도하는 미지의 이정표처럼,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갈망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렬해지며, 결국 ‘지금, 여기’에 깨어 있는 의식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깊은 호흡과 이완을 통해 체험되는 니드라(Nidra) 상태는, 의식이 투명한 빛처럼 명료하게 깨어 있으면서도 완전히 이완된 고요 속에 머무는 특별한 경험을 말한다. 더 들어가면 투리야(Turiya) 혹은 삼매(Samādhi)로 불리는 지점에 닿게 되는데, 이 단계에서는 ‘경계’ 자체가 해체되고, 나와 우주가 둘이 아님을 선명히 깨닫게 된다. 힌두의 가르침인 “Aham Brahmasmi(나는 브라흐만* 그 자체다)”가 말하듯, 모든 것은 하나의 실재로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위험한 함정이 따른다. ‘삼매’라는 언어에 집착하거나, 타인의 신비로운 체험을 부러워하며 환영을 좇다 보면 오히려 길을 잃을 수 있다. 순수했던 호기심이 어느새 집착으로 변질되고, 환상의 세계에서 머무르기 쉬우니 주의가 필요하다.

* 브라흐만(Brahman) : 힌두교에서 우주의 근본적 실재나 원리를 뜻하는 말


오늘날 우리는 과학의 발전 덕에 인간 내면의 작동 원리를 한층 세밀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지식조차 절대적인 진리로 여기며 그 자체에만 사로잡힌다면, 결국 남들이 만들어 놓은 좁은 인식의 틀에 갇혀 더 큰 자유로 뻗어나갈 수 없다. 선대가 물려준 지식과 전승은 의식 성장을 위한 든든한 토대지만, 특정한 ‘정답’이나 개념에만 매달리면 더 넓은 가능성을 놓치고 진정한 깨어남의 문을 열지 못한다. 결국 깨달음의 열쇠는 열린 마음과 맹렬한 호기심, 그리고 ‘있는 그대로’를 보는 통찰에 있다.



센터원 ‘고요의 바다’에서 배우는, 붓다가 직접 실천한 아나빠나사티(호흡 알아차림)는 이런 과정의 근간을 이룬다. 몸과 마음을 이완하면서 고요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동안, 미묘한 생각과 감정이 또렷이 떠오르는 걸 관찰하는 ‘의식의 의식(메타인지)’가 깨어나기 시작한다. 이때 축적된 지식은 더 폭넓은 이해를 위한 관문이 되고, 내면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통찰과 체험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더욱 깊은 '앎'으로 이어진다. 빠알리어로 야타부타(yathābhūta), 곧 ‘있는 그대로 보기’의 연습이 무르익으면 어떤 환상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특정 개념이나 이름표에 얽매일 필요 없이 본래의 고요와 자각을 선명히 체험하게 된다.



스파이럴 다이내믹스(Spiral Dynamics) 이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한 번 높아진 의식은 다시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세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그 속에서 누군가는 혼돈을 경험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한없이 자유로워진다. 이 차이를 가르는 핵심은 지식이나 신념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있는 ‘의식의 성숙도’를 갖추었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나는 그저 이완된 몸과 마음으로 모든 변화를 고요히 알아차릴 뿐이다. 그 과정에서 집착하거나 환상에 머무르지 않고, 이 모든 경험이 하나의 흐름임을 인정하는 순간, 더 이상 과거의 ‘나’에 얽매이지 않고 무한한 가능성의 지평으로 확장됨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경계가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본래의 고요와 자각을 누리며 참된 자유를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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