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신은 없다. 신의 진짜 얼굴

250429 심층심리학 - 김재영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2)

by 김희우

인간이 ‘신’이라 부르는 상징은 단순히 자애롭고 고결한 이미지만을 품고 있지 않다. 성서에 등장하는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신의 모습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신’의 정의를 무너뜨리며 더 근본적인 무언가를 드러낸다. 바로 인간 심연에 잠재한 거대한 아키타입(archetype)―이것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창조이든 파괴이든 모든 본능적 에너지를 종합해내는 근원적 이미지다.

아키타입(원형) : 인간의 집단 무의식 속에서 공통되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이미지



이 원형적 이미지는 개인의 무의식을 넘어서는, 인류가 오랜 세월을 거쳐 공유해온 ‘집단적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다. 한 개인이 지니는 감정과 생각의 수면 아래, 누구도 스스로 발명해내지 않았음에도 이미 존재하는 근본적 형상들이 잠들어 있다는 말이다. 이 형상은 때로 폭발적 본능 에너지를 결합하여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그 진폭만큼 인간은 새로운 의식의 지평을 열어가는데, 이는 마치 용암이 분출하며 지형을 재구성하는 광경과도 같다.



이런 원형 이미지와 결합한 본능적 에너지는 단순 동물적 욕구로 머무르지 않는다. 종교와 예술, 의례와 기도의 틀 안에서 ‘영적 에너지’로 승화하는 것이다. 성서나 경전, 의례 등은 모두 이 원형적 이미지가 구체화된 상징적 산물이며, 집단적 체험이 응축된 ‘문화적 상징’이기도 하다. 후대의 사람들은 경전의 이야기를 읽거나 예배와 미사에 참여함으로써, 과거에 형성된 원형적 이미지와 접속한다. 그렇게 다시 자기 안에 잠재된 본능 에너지가 깨어나고, 더 고양된 차원의 사상과 가치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 ‘전환’ 자체가 융이 말하는 ‘종교적 경험’의 핵심이다. 종교는 단순히 외부에 자리한 초월적 존재를 숭배하는 활동이라기보다, 우리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심연을 의식적으로 맞닥뜨려 그 파괴적·창조적 힘을 재구성해내는 과정이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원형적 이미지와 만나는 의례적 형식 안에서 사람들은 매일의 일상과 떨어져 있던 자신의 본능적 에너지를 재발견하고, 그것을 한층 높은 층위의 의미나 목표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이 본능 에너지를 지나치게 억압하거나, 반대로 무제한으로 방치하는 것은 위험하다. 문명과 본능의 완벽한 줄타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극단으로 치우친 억압이 신경증적 문제를 낳거나, 무분별한 해방이 혼돈과 파괴만을 가져오는 것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의식이 본능을 일방적으로 거부하면 인간성의 뿌리가 마르게 되고, 본능이 의식을 전복하면 야수적 파괴 충동이 밖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원형적 심연을 ‘제대로’ 만난다는 것은 이 미묘한 균형 지점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행위다.



이처럼 본능(질료)과 원형(형상)이 결합해 새로운 사상과 가치를 낳는 것은 매우 창조적인 사건이다. 인간이 섹슈얼리티나 공포, 죽음, 혹은 절대적인 신앙심 등 강렬한 감정을 경험할 때, 그 깊은 곳에서 원형적 이미지가 깨어나 새로운 통찰을 생산해낸다. 우리는 그것을 시·소설·성화·기도문·예배의 의식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고, 다시금 전승하며, 재발견한다. 이 ‘순환 고리’가 바로 인간 문화의 영적 성장 동력이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이 심연의 흐름을 무조건 거부하거나 지식의 언어만으로 포장해버리는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본능적 에너지와, 인류가 전승해온 원형적 이미지를 통섭적으로 이해하는 시선이 절실하다. 이것은 정신분석치료나 신학, 예술 창작의 장에서만 필요한 고차원적 작업이 아니다. 바쁜 도시 한가운데서도, 혹은 첨단 과학이 이끄는 미래에서도, 인간의 존재가 지닌 가장 깊은 샘을 인정하고 적절히 길어 올리는 지혜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결국 신에 대한 이미지는 인간 마음의 심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금술적 장치다. 그 속에서 우리는 폭발하는 본능을 파괴적 힘이 아닌 더 큰 의미로 변환시키며,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것이 바로 현시대에 줄 수 있는 통찰이다. 본능을 제대로 다스릴 때, 그리고 원형을 껴안고 능동적으로 소화해낼 때, 인간은 생명을 창조하는 신적 상상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종교도, 예술도, 사상도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움이 곧 우리가 부단히 추구해야 할 ‘인간다운 미래’의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힌두교의 시간, 죽음, 파괴의 여신 <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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