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22 종교현상학 - 김재영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2)
신앙은 왜 답답하게 느껴지고 때론 폭력적일까? 현대 사회에서 종교는 때때로 본연의 치유와 통합의 기능을 잃고, 오히려 분열과 배타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문자주의(literalism)'라는 치명적인 함정 때문이다. 폴 틸리히의 통찰을 통해 문자주의의 위험성을 파헤치고, 어떻게 하면 살아있는 신앙을 통해 진정한 영적 깊이를 얻을 수 있는지 탐구했다.
틸리히는 문자주의가 신을 '우주 안의 하나의 객체(object)'처럼 취급한다고 단호히 비판한다. 문자주의는 신이 특정 장소에 거하고, 사건의 원인이 되며, 그 사건에 의해 영향을 받는 존재라고 가정한다. 이는 신을 '존재 자체(Ground of Being)'로서의 궁극적인 실재가 아닌, 유한하고 조건 지어진 존재로 격하시킨다. 신의 위엄과 초월성을 박탈하는 것이다. 신이 시간과 공간에 갇힌 유한한 존재라면, 그는 더 이상 궁극적인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틸리히는 문자주의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는 '자연적 문자주의(Natural literalism)'다. 이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비판 없이 순수하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마치 아이가 부모의 말을 전적으로 믿듯이, 의심 이전의 순진한 신앙 상태인 셈이다. 틸리히는 이러한 상태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람이 의심하게 될 때까지는 신앙을 흔들어선 안 된다"고 말하며,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신앙을 깨는 것이 폭력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둘째는 '반응적 문자주의(Reactive literalism)', 즉 우리가 흔히 '근본주의(Fundamentalism)'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는 불안이나 의심이 생겼을 때, 이를 스스로 성찰하기보다 외부 권위(성경, 교리, 지도자)로 억누르려 하는 태도다. 근본주의는 비판적 사고를 거부하고, 자신의 신념에 대한 비판을 사악하고 참을 수 없는 공격으로 여긴다. 반면, 상대방의 입장을 비판하는 것은 그들을 진리로 돌아오게 하려는 '선의의 시도'로 착각한다. 이는 진정한 신앙이라기보다는 불안을 막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에 가깝다. '우리'는 옳고 '그들'은 틀렸다는 식의 나르시시즘적 집단주의와 배타성을 낳으며, 종교주의, 지역주의, 학력주의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일반적인 편향(General bias)'을 형성하고 경계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진정한 신앙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틸리히에게 그 핵심 기준은 간단하다. "그것이 진정으로 궁극적인 것을 가리키고 있는가?" 즉, 그 신앙이 자기 만족이나 권력 추구, 소속감에 머무르지 않고 '진짜 존재의 근원'을 향해 열려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신앙과 우상숭배를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이다.
문자주의는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병리 현상을 야기한다. 실존적 질문을 차단하여 불안을 회피하게 하고, '우리만 옳다'는 배타적인 집단주의를 심화시킨다. 또한 종교적 상징들이 가진 깊은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을 잃게 만들어서, 영적 깊이를 상실하게 하며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불필요한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느끼고, 스스로를 지나치게 감시하게 되면서 종교 때문에 마음의 상처(트라우마)를 유발하기도 한다.
틸리히는 문자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신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차원에서 신앙을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는 질문하는 신앙, 상징을 살아있는 언어로 받아들이는 신앙, 그리고 자기 존재 전체를 담아 궁극적인 것을 향하는 신앙이다. 이러한 살아있는 신앙이야말로 존재의 근원과 만나는 길이며,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건강한 삶을 위한 토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