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05 샤머니즘과 생활종교(3)
K-Pop, K-Food, K-Beauty로 대표되는 현상들을 보며,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불변의 본질, 즉 '코리아니스(Koreanness)'가 있을 것이라 가정한다. 이러한 가정은 20세기 초 민족주의의 산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더 깊은 철학적 질문이 숨어 있다. 이 모든 'K' 현상들을 묶어주는 고정된 실체가 정말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는 그저 유동적인 현상들의 흐름 속에서 어떤 패턴을 발견하고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한가?
이 질문은 존재론적 실제론(Realism)과 유명론(Nominalism) 사이의 오랜 논쟁을 현대적 맥락으로 소환한다. 전통적 실제론은 의자를 예로들어- 개별적인 의자들의 본질로서, 변하지 않는 '의자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적임'이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고, K-Pop이나 K-Food는 그 본질의 다양한 발현이라고 보는 것이 실제론적 관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한국 문화는 끊임없이 외부의 영향을 흡수하고, 해체하며, 재조합되는 역동적인 과정 속에 있다. 한류의 성공 역시 한국의 전통적 요소와 미국, 일본 등의 대중문화 등 수많은 외부적 요소들이 새롭게 엮인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한국적임'의 본질은 재료 그 자체가 아니라, 이 재료들을 엮어내는 '조합의 방식', 즉 네트워킹 모드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관점은 정적인 실제론을 넘어선다. 과거의 철학적 논쟁에서 유명론자들은 '보편자'는 실재하지 않으며, 단지 우리가 현상들을 분류하기 위해 편의상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역동적 유명론(Dynamic Nominalism)'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한국적임'이라는 것이 고정된 실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이름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구성되어 온 존재이다. '한국적임'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수많은 요소들이 끊임없이 재조합되고 변형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 특정한 관계망의 모드를 의미한다. 즉, K는 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망 속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특정한 다이내믹스를 지칭하는 이름에 가깝다.
이러한 시각은 종교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도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종교를 단순히 '신'이나 '구원'과 같은 특정 개념으로 정의하려 하면, 우리는 그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수많은 현상들을 종교가 아니라고 배제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야구나 미식축구 팬덤이 보여주는 헌신과 열정, 특정한 의례, 공동체의 결속력은 종교적 현상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사회는 이들을 '종교'와 '비종교'로 엄격하게 구분한다. 왜일까?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어떤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 내용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인식되고, 조직화되며, 유통되는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도시를 설계한 사람의 시선으로만 도시를 이해할 수 없고, 도시를 걷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움직임 속에서 도시의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 종교 또한 마찬가지로,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는 하나의 현상이다. 이와 같은 관점은 '종교'라는 서구의 개념이 한국 사회에 유입되면서 어떻게 권력적 의미를 획득했는지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러한 학문적 설명은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많은 사람들은 아이돌 문화를 '종교적'이라고는 할 수 있어도 '종교'라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이것은 종교적인데 왜 인정하지 않는가?"라고 묻고 끝내는 것은 충분치 않다. 우리는 더 나아가 "왜 인정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파고들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역동적 유명론의 관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교'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종교적'이라는 것은 특정 현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해석의 과정이다. 어떤 현상이 종교적이라고 분류되는 순간, 그것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특정 위치와 역할을 부여받는다. 이 과정에서 '종교'라는 이름은 때로는 권위를, 때로는 구속을 가져온다. 반대로, 아이돌 문화와 같은 현상은 '종교'라는 이름이 주는 기존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확장하고 유통될 수 있다. 사람들은 '종교'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과 역사적 의미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그 이름표를 붙일지 말지 신중하게 결정한다.
결국, 우리가 '한국적임' 혹은 '종교'라고 부르는 것은 불변의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요소들이 상호작용하고 관계를 맺으며 역동적으로 구성되는 실재(Presence)이다. K-Pop은 '한국적임'의 본질을 담고 있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그 성공의 과정 자체가 '한국적임'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K인가?'를 묻기보다, 'K는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이러한 질문은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 우리는 종종 '본질'을 탐구하려 하지만, 진정한 통찰은 그 본질이 어떻게 형성되고 해체되는지를 이해하는 데서 온다. 세상의 모든 현상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관계망 속에서 빚어지는 유동적인 존재들이다. 우리는 이 유동적인 흐름 속에서 어떤 이름으로 그 현상들을 규정할지, 그리고 그 이름이 어떤 새로운 의미를 창조할지 결정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한국적임'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행위 자체가 이미 새로운 '한국적임'을 창조하는 과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