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18 샤머니즘과 생활종교(1)
우리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비교한다. 오늘 점심에 먹은 음식이 어제보다 맛있었는지, 내가 속한 회사가 다른 회사와 어떻게 다른지, 혹은 한국 사회가 일본이나 미국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는 단순한 습관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의 사고방식과 사회 이해를 형성하는 근본적인 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류학자 마릴린 스트라선(Marilyn Strathern)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비교란 도대체 무엇인가?”
많은 학자들은 비교를 일종의 도구로 본다. 즉, 연구자가 A와 B라는 대상을 나란히 두고, 그 차이와 공통점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하지만 스트라선은 달리 말한다. 비교는 단순히 연구자의 기법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이미 비교의 과정이다라는 것이다. 사람과 문화 자체가 끊임없이 자기 안에서 차이를 만들어내고, 스스로를 확장하거나 축소하면서 비교를 수행한다. 연구자가 하는 일은 이 움직임을 따라가고 기록하는 일에 가깝다.
비교의 전통적인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지도 모델
지도를 펼치면 어디에서 보든 동일한 기준이 존재한다. 서울이든 파리든, 지도 위의 좌표에 맞춰 위치를 표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옛날의 비교는 어떤 보편적 기준을 전제하고, 그 틀 안에서 문화나 제도를 서로 맞춰보는 식이었다.
나무 모델
나무의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가 갈라지듯, 인류의 문화도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해 역사적 분화 과정을 거친다고 보는 관점이다. 예를 들어 “종교는 원시적 형태에서 시작해 점점 고등 종교로 발전한다”는 식의 사고가 여기에 속한다.
이 두 모델은 유용했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고정된 기준을 전제하기 때문에 현장의 다양성과 변주가 잘려 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스트라선은 다른 비유를 제시한다.
사이보그(Cyborg): 인간, 기계, 동물이 섞여 만들어진 존재. 사이보그는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요소들이 억지로라도 연결되면서 생긴다. 비교도 마찬가지다. 기존 틀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들을 연결하면서 새로운 의미가 생긴다.
프랙탈(Fractal): 부분이 전체를 닮았지만 완전히 같지 않고, 끝없이 증식하는 패턴. 비교 역시 단순히 “평면에 나열된 차이”를 적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계속 변주와 반복이 발생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즉, 비교는 더 이상 정해진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 아니라, 차이를 끝없이 드러내고 새롭게 이어붙이는 과정이다.
보통 우리는 비교할 때 “한국과 일본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식으로 사물들 사이의 차이에 주목한다. 하지만 스트라선은 “차이는 사물 안에도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한국 무속을 보자. 겉으로 보면 하나의 전통 같지만, 지역마다 북의 쓰임이 다르고, 같은 굿이라도 참여자마다 해석이 다르다. 즉, 무속이라는 하나의 범주 안에서도 수많은 차이와 반복이 동시에 일어난다. 이런 맥락에서 스트라선은 공통성을 본질로 보지 않는다. 공통성은 마치 “주제곡의 멜로디”와 같아서, 사회마다 다른 방식으로 연주되고 변주되는 패턴일 뿐이다.
파푸아뉴기니 고지대 여러 사회에서 대나무 플루트가 사용된다. 처음에 연구자들은 “플루트 = 남성 권력의 상징”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이야기는 훨씬 복잡했다.
어떤 사회에서는 플루트가 성인식에서 중심적인 도구였다.
또 다른 사회에서는 부수적인 역할만 맡았다.
심지어 어떤 사회에서는 플루트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즉, “플루트=남성 권력”이라는 본질적 정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성성’이라는 주제가 각 사회의 맥락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반복·재구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트라선이 말하는 포스트복수적(postplural) 비교다. 비교란 본질을 찾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드러나는 차이와 반복을 추적하는 일이다.
이 관점은 현대 사회를 읽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정체성: 사람은 하나의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직장에서는 회사원, 집에서는 부모, 온라인에서는 크리에이터가 된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스스로를 확장하기도 하고 축소하기도 하며, 계속해서 비교적 존재로 살아간다.
정치: 집단 간 비교만 강조하면 대립이 심해진다. 하지만 집단 내부의 차이를 살피면, 왜 같은 구호 아래서도 세대·지역·경험에 따라 입장이 어긋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기술: 인공지능을 두고 흔히 “인간 대 기계”로 비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데이터 라벨링, 알고리즘, 사용자, 법적 규범이 얽힌 사이보그적 시스템(인간과 기계가 섞여 탄생한 잡종적 관계망)이다. 윤리와 책임의 문제도 시스템 내부에서 끊임없이 새로 발생한다.
스트라선의 작업을 바탕으로, 우리가 따라야 할 몇 가지 지침을 정리해볼 수 있다.
현지 개념과 연구자의 개념을 구분하라. 예를 들어 현지인이 “플루트는 남자의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것을 그대로 학문적 결론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여러 스케일에서 관찰하라. 하나의 현상도 개인, 공동체, 국가 차원에서 다르게 보인다.
공통성은 본질이 아니라 문제틀로 보라. 즉, “남성성”이라는 테마는 여러 맥락에서 반복되지만, 언제나 다른 방식으로 배열된다.
묶이지 않는 지점도 중요하게 기록하라. 어떤 차이는 결코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다.
결론을 잠정적으로 남겨두라. 비교의 결과는 확정된 진리가 아니라, 현장에서 발견한 가설적 패턴일 뿐이다.
우리는 변화가 빠른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빠른 만큼 단순한 비교, 즉 “누가 더 낫다/못하다”라는 판단이 유혹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런 단순함은 현실의 복잡성을 지워버린다.
스트라선이 말하듯, 비교는 본질을 찾는 절차가 아니라, 사물 속에서 이미 작동하는 차이와 변형을 드러내는 기술이다. 연구자는 외부에서 답을 덧씌우는 감독자가 아니라, 현장의 자료를 조합하고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는 조각가에 가깝다.
좋은 비교는 낯선 연결을 발견하게 하고, 예상치 못한 차이를 드러낸다. 그때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복잡한 현실 속에서도 덜 거칠게 개입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더 많은 결론이 아니라, 더 좋은 비교다.
마릴린 스트라선(Marilyn Strathern)의 사유와 인류학적 방법론 정리
영국의 인류학자, 멜라네시아(특히 파푸아뉴기니) 친족 연구로 유명.
『The Gender of the Gift』(1988), 『Partial Connections』(2004) 등에서 관계, 비교, 재현 문제를 새롭게 탐구.
페미니즘 이론, 과학기술학(STS), 인류학을 가로지르며 독창적인 사유를 전개.
관계는 외부에 객관적으로 주어진 사실이 아니라, 분석 과정에서 구성되는 것.
따라서 인류학자는 “관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드러내야 함.
전통적 비교: 사물들 사이에서 차이를 찾고, 추상적 스케일로 일반화.
스트라선의 비교: 차이는 사물들 내부에서 이미 드러나며, 비교는 사물이 스스로를 스케일링하는 자기-비교 과정.
좋은 비교란 익숙한 연결을 일부러 끊고, 의외의 새로운 유비를 만들어내는 것.
전통적 추상은 사물과 스케일을 분리(예: 개 ↔ 사족성).
스트라선은 스케일이 외부 잣대가 아니라 사물 자체에서 갈라져 나오는 변형이라고 봄.
비교는 더 높은 일반화를 위한 감산이 아니라, 사물이 스스로를 갈라내는 과정을 드러내는 실험.
1980년대 “재현의 위기”를 이어받아, 연구자 자기 성찰을 더 밀어붙임.
급하게 결론 내리지 않고, 불완결성과 멈춤 속에서 새로운 비교와 연결을 발견.
민족지적 순간이 시간이 흐르며 다시 연결되는 가능성을 중시 → 초-시간적 비교(trans-temporal comparison).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의 **관점주의(perspectivism)**와 깊은 대화.
존재론 문제를 직접 다루지만, 자신을 완전히 존재론적 전환의 진영에 두진 않음.
이유: 그녀의 작업은 늘 불완결성, 주저, 민족지적 미학을 강조하기 때문.
인류학자는 설계자(이론을 덧씌우는 사람)가 아니라, 현장에서 자료를 모아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브리콜뢰르(재활용 장인), 개념적 조각가.
이론은 외부에서 끌어다 쓰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나온 개념-사물과 함께 작업하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