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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Sep 30. 2019

낡고 허름한 서울을 기억하는 보현

진짜-서울 인터뷰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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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서울은 사람들의 서울을 모으고 기록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젝트입니다. 웹사이트에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바운더리 맵'은 각자의 서울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7개의 마커로 시각화된 나만의 지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보고계신 브런치에 발행되는 '진짜-서울 인터뷰 시리즈'는 바운더리 맵을 만들어 본 분들을 대상으로 지도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던 각자의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https://jinjja-seoul.com/






보현의 바운더리 맵  

진짜-서울 웹사이트에서 지도를 움직이며 관찰해보세요. 
https://jinjja-seoul.com/boundary/person/221






경기도민 가운데 20%, 약 257만 명은 서울로 통근 및 통학한다고 한다. 이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광역버스나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왕복 3시간에서 4시간이 소요되어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경기도로 직장을 옮기거나, 서울로 이사하는 일은 뚝딱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만난 김보현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서울과 수원을 오간다. 그녀는 “경기도 도민이지만, 정체성은 서울시민 같은 그런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김보현과의 인터뷰는 기승전종로였다. 그녀에게서 종로에 대해 애잔함과 아련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인터뷰하는 내내 마치 60~70년대 종로의 어느 시끌벅적한 카페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서울을 언제부터 드나들기 시작했나요?


어렸을 때, 친척들이 서울에 있어서 자주 오가곤 했지만, 자발적으로 서울에 어떤 일을 하러 온 것은 20살 때부터였어요. 학원 때문에, 다른 일 때문에 등등 늘 서울에서 생활했어요. 지금은 종로를 자주 안 가지만, 20대의 강렬한 기억이 있는 곳이 종로예요. 가장 처음의 경험, 서울에 대한 첫 경험과 같은 느낌이에요.



주로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했나요?


지금은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20살 때는 늘 전철을 이용했어요. 그때 전철을 탔던 것은 서울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제가 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핸드폰이 스마트폰이 아니었기 때문에, 핸드폰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어요. 책을 많이 읽었는데, 전철이 책을 읽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었어요. 그래서 그 시간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정체성도 고민하고, 앞으로 커리어를 어떻게 쌓을지도 고민하던 20대에 책을 읽으며 많이 해소했어요. 하지만 버스에서는 그게 안돼요. 마치 제2의 침대처럼 버스에서는 바로 기절해 버려요.



이번 인터뷰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어느 뉴스 기사에서 봤는데, 경기도민은 인생의 몇 시간 혹은 몇 년을 버스 안에서 보낸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경기도민의 모든 생활 광역권은 다 서울에 있어요. 근데 우리가 소비하는 서울은 몇 곳으로 한정되어 있잖아요.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서울을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어요.



앞에서 서울에 대한 첫 경험이 종로라고 했는데, 종로는 어떤 곳인가요?


그림을 그리라고 해도 그릴 수 있어요. 종로타워 맞은편 지금은 SC제일은행 건물 옆에 아주 오래된 60년대 빌딩이 있었어요. 7~8층짜리 건물이었는데, 엘리베이터도 없고, 아주 좁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어요. 그 건물에 있는 학원에 다녔기 때문에 종로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한번은 SC제일은행 밑에 아주 비싼 커피집이 생겼어요. 제 인생에서 최초의 비싼 커피숍이죠. 일리커피라고.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때 7,000원을 내면 커피와 빵을 먹을 수 있었어요. 가끔 기분 내고 싶을 때 그곳을 가곤 했어요. 그리고 그 안에 소비층이 바뀌는 것을 봤죠. 처음 갔을 때는 흔히 화이트칼라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많이 왔어요. 근데 최근 3~4년 전에 가보니 종로 3가에 주로 보이시는 할아버지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부동산 얘기를 하더라고요.


대학교에 다니다가 오랜만에 종로에 갔더니, 아예 모르는 빌딩들이 세워져 있었어요. 저에게 서울 이미지는 좁은 계단을 올라가고 곳곳에서 아저씨들이 담배를 피우고, 작고 맛있는 집들이 많은 지금의 을지로의 골목 같은 느낌이 강했는데, 어느 순간 으리으리하게 되어서 종로를 안 가게 되었어요.



보통 서울을 세련된 공간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울에 대한 이미지가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서울의 이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요?


세련되지 않은 공간이 저에게 서울이에요. 아마도 처음 종로에서의 기억이 지금까지 강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서울은 경복궁이나 고궁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지금의 어디라고 해야 하나, 지금의 을지로 같은 느낌이에요. 오래되고 60~70년대 건물이 있는 느낌이 강해요. 60~70년대 살았던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활발히 활동했던 20대 때 60~70년대의 느낌이 있는 공간을 자꾸 다니게 되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요즘도 가끔 종로를 버스 타고 지나가게 되는데, 지금의 종로타워 뒤쪽에 다 쓰러져가는 라면집을 떠올리곤 해요. 그래서 가끔 꼰대처럼 새로 생긴 건물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 이러고 다녀요.




낡고 허름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도시의 취향이 생긴 것 같아요. 계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저에게 어른의 느낌은 선뜻 젊은 아가씨가 들어가기 어려운 곳에 가서 순댓국을 먹는 그런 사람이에요. 그래서 20대 때 그런 곳만 쫓아다녔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되고 싶은 느낌에 허름한 곳에서 막걸리를 먹거나 그랬어요. 누군가에게 커리어 우먼의 이미지가 세련된 느낌이라면, 저에게 커리어가 쌓인 어른은 소주도 진로만 먹는, 말도 안 되는 구시대 것과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 경험과 계기를 염두에 둔다면, 한성대입구나 대학로 쪽은 좀 다른 느낌인 것 같아요. 낡고 오래된 집들이 있지만, 멀끔한 느낌이 드는데요. 보현씨에게 한성대입구는 어떤 기억이 있는 곳인가요?


한성대입구는 전시를 보러 자주 갔어요. 데이트도 많이 했고요. 저에게 부자 동네의 느낌은 강남이 아니라 성북동인 것 같아요.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진 집들이 즐비하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빈부격차가 심한 동네인 것 같아요. 한쪽은 부자들이 사는데, 다른 한편에는 판자촌의 아이들이 있고요.


그리고 근처에 있는 대학로는 건축학교 프로그램을 했던 강렬한 경험 때문에 생각이 났어요. 저는 당시에 아르코 미술관에서 통합 예술 교육을 진행하는 ‘건축학교’에 코디네이터를 담당했어요. 제가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두 번째 회사예요. 너무 더웠고,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에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죠.



전시를 보러 간다고 하면, 삼청동이나 청담동 같은 곳이 생각나는데, 한성대 입구 쪽에도 전시장이 많은가요?


성북동 곳곳에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모여 있어서 자주 갔어요. 또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예술가를 만나야 한다는 약간 강박 같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성소수자들의 이슈가 자연스러운 이태원을 가게 되었어요. 이태원은 저에게 그런 강박을 해소해준 공간이에요. 이제까지 춤추고 노는 클럽은 몇 번 안 가봤지만, 트렌스젠더 클럽은 자주 갔어요. 그러면서 이태원이 편해졌어요. 사람들이 어느 동네 가서 밤새도록 술 먹고 나면 그 공간이 편해지듯이 밤늦게까지 이태원에서 놀다 보니 점점 더 편해졌어요. 비슷한 이유에서 합정도 자주 갔어요.



합정도 전시를 보러 가게 된 건가요?


네, 합정에서 프로젝트나 전시가 많아서 거기를 의무적으로 갔어야 했어요. 저에게 홍대나 합정은 일 때문에 의무적으로 가야 했던 곳이라 긍정적인 곳은 아니에요. 그래서 아직도 홍대나 합정, 강남 같은 곳은 좀 낯설어요. 의무적으로 자주 갔지만 그 동네 자체가 심적으로 굉장히 먼 느낌이에요. 저에게 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은 종로와 대학로이고, 가장 먼 곳은 청담동이에요.



일로 먼 느낌이 드는 건 강남, 홍대, 합정이라고 얘기하고, 합정이랑 홍대는 포인트를 찍었는데, 강남이나 청담은 찍지 않았네요.


이상하게도 강남은 아예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앞서 말한 대로 저에게 서울은 오래된 건물이 가진 느낌이 강해요. 근데 제가 다녔던 청담동은 주로 갤러리 사이사이가 시멘트의 높은 벽으로 되어 있어서 서울 같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성북동의 높은 벽과 청담동의 높은 벽이 저에겐 좀 다르게 다가와요. 그리고 강남은 제가 생각하는 서울의 모습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일곱 개의 포인트가 직업이랑 연결된 것 같아요. 서울을 기억하는 방법 중 직업과 일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도 저 같은 결과가 나올 거로 생각하진 않아요. 아마도 저라는 사람 자체가 일에서 정체성을 찾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삶의 목표가 일이 되는 스타일이에요. 장소를 기억하는 것도, 사람을 기억하는 것도 다 일에서 출발하는 것이죠.



전시나 공간을 많이 다니면서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럼요. 근데 내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전시를 보러 다니면서 생긴 것은 아니에요. 제 공간을 갖고 싶은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나만의 것을 만들지 못하는 한계에서 오는 욕망 때문이고요. 다른 하나는 가족이나 누군가에게 독립하고 싶어요. 만약에 그런 공간을 갖는다면, 성북동에 만들고 싶어요. 동네가 주는 고즈넉한 느낌이 좋은 것 같아요. 게다가 아직 과거의 흔적이 조용하게 남아 있는 곳이라 생각해요.







지금도 여전히 서울에서 일하기 위해 하루에 3시간을 사용하고 있는데, 집에서 좀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해봐야지 하는 생각은 없었나요?


없었던 것 같아요. 무조건 서울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대를 책으로 배웠어요. 그러면서 서울에는 독립영화관도 있고, 작은 아틀리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일종의 격파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격파한다는 것이 저보다 높은 것, 장인급을 격파라는 것인데요. 장인급이 뭉쳐 있는 것이 서울이기 때문에 나는 그 안에 반드시 속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있나요?


종로죠. 지금 일하는 통의동과 종로가 그리 멀지 않은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느낌이 아주 달라요. 제가 좋아하는 과거의 건물들이 많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종로는 괜히 애잔한 느낌이 있어요.



에디터 공을채  /  일러스트레이터 조아란






interviewee


김보현 
김보현은 ‘건축학교’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경계, 접경 지역에 대한 연구 및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회사의 일에만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틈틈이 개인 프로젝트를 통해 숨겨진 욕망을 드러낸다. 그녀의 이야기 속엔 ‘왜, 어떻게, 무엇을’ 등의 질문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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