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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Nov 01. 2019

친구 따라 취향 따라 여행하는 은지

진짜-서울 인터뷰 03


about


진짜-서울은 사람들의 서울을 모으고 기록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젝트입니다. 웹사이트에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바운더리 맵'은 각자의 서울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7개의 마커로 시각화된 나만의 지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보고계신 브런치에 발행되는 '인터뷰 시리즈'는 바운더리 맵을 만들어 본 분들을 대상으로 지도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던 각자의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https://jinjja-seoul.com/







은지의 바운더리 맵  

진짜-서울 웹사이트에서 지도를 움직이며 관찰해보세요. 
https://jinjja-seoul.com/boundary/person/283






지금은 취향을 존중하는 시대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가도, 원두를 선택할 수 있고, 색과 크기 등을 골라 내가 원하는 티셔츠를 만들 수도 있다. 단순히 31가지 중 한 가지를 골라야 했던 아이스크림에서 이제는 직접 원하는 것을 제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진짜-서울은 서울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을 찾는 것과 같다. 서울의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지, 서울의 복잡함을 좋아하는지 등 각기 다른 사람들의 서울 취향을 탐방하는 것이다. 이번에 인터뷰 한 원은지는 친구와 함께, 문화와 함께 서울을 여행하는 이다. 그의 서울에 대한 취향, 도시에 대한 취향은 남들보다 더 확고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취향은 나이와 감정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 서울에 산 지 얼마나 되었나요?


저는 강남구 개포동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서울에 살았어요. 서울 사람이에요. 엄마도 서울 사람이시고, 아빠가 원주에서 태어나고 자라셨지만 제가 원주에서 살아보거나 한 적은 없어요.



‘진짜-서울’ 프로젝트를 해본 소감은 어떤가요?


일단 지도로 표현되어 있어 좋았어요. 그리고 정확히 어느 동네라기 보다는 일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어서 고민 없이 직관적으로 찍을 수 있었어요. 포인트들은 제가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에요. 정확한 시점이라고 하면 10대 때부터 일 것 같아요. 동네들을 시간 순서대로 기억해서 찍었어요. 몇 년씩 다니던 곳이다 보니깐, 시간 순서대로 찍었어요.



가장 먼저 연희동을 선택했는데, 연희동에서 태어난 건가요?


연희동은 제가 지금 사는 곳이자 20대 시절의 추억이 가장 많은 동네 중 하나예요. 그 당시에 친구들이 연희동에 많이 살았어요. 저는 그때 남태령에서 살고 있었는데도 거의 매일 친구들이 있는 연희동에 가서 시간을 보냈어요. 보통의 20대답지 않게 저와 친구들은 사람이 별로 없는 조용한 곳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지금의 연희동은 카페도 많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동네가 되었지만, 십 년 전쯤만 해도 카페도 많이 없고 조용한 동네였어요. 한적하고 깨끗한 단독주택가이다 보니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연희동에서 살고 싶다”고 농담도 자주 했었죠. 20대 시절 가장 고민이 많았던 때 제가 위로를 받았던 동네라 향수가 많이 어려 있는 것 같아요.



그런 향수 때문에 연희동으로 이사를 오게 된 건가요?


지금은 결혼해서 4세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데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기 전까지 우리 가족의 삶의 터전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집을 사겠다는 마음보다, 10년 이상 우리 가족이 살 수 있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전에 살던 동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오래 살아볼 마음으로 연희동에 이사하게 되었어요. 물론 계속해서 오르는 서울의 집값을 생각한다면, 또다시 이사를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하지만, 그런 상황이 와도 우리가 좋아하는 취향과 맞는 집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연희동에 이사와 생활하면서 남편도 저도 만족감이 높은 편이라 앞으로도 크게 연희동 반경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바쁜 생활 속에 남편과 저의 취향을 잘 견인해주고 있는 동네인 것 같아서요.



연희동이 취향에 잘 맞는 동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렇다면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나요?


여러가지 취향이 있을 테지만 저와 남편은 커피 마니아예요. 커피 취향이 엄밀하고 확고한 편은 아니지만 거의 카페인 중독인 것 같아요. 연희동엔 작은 카페들이 많고, 무엇보다 저렴하고 맛있는 커피가 아주 많아요.





앞서 이상적인 주택가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요. 마음속 이상적인 주택가는 어떤 모습인가요?


일단 깨끗하다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거기에 아파트가 많지 않아 시야가 불편하지 않아야 하고요. 연희동은 강남 같은 매끈함은 아니지만, 뭔가 마음이 편안해요. 그게 아무래도 저층이어서 그런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게다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든 계층이 모여 살아서 사람 사는 동네 같아요.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깐 정신도 산만하지 않고요. 그리고 젊은이들이 요구하는 부분들이 잘 충족되어 있어요. 작은 카페들이 곳곳에 있고, 사는 사람들 전부는 아니겠지만, 미술이나, 영화 등 예술 계통의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연희동만의 분위기가 잘 형성된 것 같아요. 여전히 비슷한 기조가 흐르고 있지만, 동네가 많이 유명해져서 동네가 좀 시끄러운 것 같아요.



20대 때,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가 아니라, 택시를 타도 왕복 2시간은 걸리는 연희동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는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동네가 가진 느낌 때문일까요?


그때는 제가 나고 자란 바운더리에서는 제 고민의 해결점을 찾지 못했던 것 같아요. 대학가고서야 경험한 다른 동네들과 그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친구들과는 아무래도 제 선택과 의지가 더 많이 작용한 관계여서인지 교집합이 많다고 느꼈고, 고민의 결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친구들이 연희동에 모여 살고 있어서 그렇게 열심히 갔던 것 같아요. 거기에 더해서 커피를 좋아하고 카페를 좋아해서였던 것 같아요. 카페가 가진 분위기가 좋아서 자주 가기도 했지만, 어릴 때부터 가족과 함께 서울에 살아서 독립할 기회가 없었는데, 그런 저에게 카페는 혼자만의 독립된 시간을 갖는 장소였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카페는 저에게 움직이는 집 같은 곳이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연희동을 포함한 인근 홍대권까지 고려하면 좋은 카페들이 많이 있었고, 그곳에서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같이 있을 수 있었던 거죠. 연희동에서 놀기 이전부터 합정과 상수 주변에도 자주 드나들었어요.



합정과 상수는 어떤 장소로 기억하고 있나요?


20대 때는 합정과 상수일대에서 친구들과 공연도 만들고, 개인적으로는 이런저런 글을 쓰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술 마시는 걸 좋아했고 친구들과 막연하고 불안한 감정들을 공유하고 나누려 애썼던 시기 같아요. 불안정했고 그런 종류의 콘텐츠에 특히나 더 빠져 있었죠. 이런저런 기분들에 더 깊이 빠져 지낼 수 있는 시나 영화 같은 것에 빠져있었어요. 어떤 의미에서 상당히 자신을 소모하며 지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젊음이 버거웠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면서도 그 나이 홍대를 헤매는 젊은 영혼답게 지적 허영이나 동기는 아주 강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 친척언니와 상수에 있는 모 카페에 함께 있는데, 언니가 저를 대하면서 좀 심란해 했던 기억이 있어요. ‘제발 내 동생이 홍대와 동기화된 것 같은 히피처럼 늙지 않아야 할 텐데’라고 걱정했었죠.


처음 자주 갔던 곳은 합정이었어요. 근데 합정이 점점 홍대처럼 번화하자 자연스럽게 상수로 거점을 옮겨 놀았던 것 같아요. 제가 한참 홍대가서 놀던 때는 이리카페 같은 초창기 카페들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상수로 이전했던 시기와 맞물려요. 이리카페를 자주 갔었기 때문에 카페의 이사와 더불어 저도 상수에 발걸음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연희동은 마음 편한 친구들이 한 동네에 모여 있는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면, 상수는 어리석고 불안정한 한시절을 오롯이 담고 있는 곳이라서, 뭐랄까. 이제 와선 크게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동네예요.





용산은 앞서 이야기한 연희, 합정, 상수와 전혀 다른 느낌의 동네인 것 같아요. 전자상가에 대한 이미지, 복작복작한 이미지인 것 같은데, 용산은 어떻게 가게 되었나요?


저는 용산구에 위치한 여대를 다녔는데,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 적이 없었죠. 학교 근처에 철학을 공부하는 모임이 있었어요. 거기서 세미나도 듣고 강의도 듣고 공부를 많이 했어요. 학교와 세미나 장소를 한동네에 두고 오가던 터라 용산이라는 동네가 어쨌거나 제게는 한축을 담당하는 동네로 자연스럽게 남아있는 것 같아요.



20대 때 많은 서울에 대한 기억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어릴 때 서울에 대한 기억은 어떤 게 있나요?


양재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나왔어요. 그때는 생활의 바운더리가 크지 않았어요. 그래서 갈 수 있는 곳이 강남역이었어요. 강남역에 씨티극장이 있어서 걸어갔다 걸어오곤 했어요. 대로를 걷다 보면 강남역이라는 휘황찬란한 곳이 나오는데, 양재와 상반되는 경험을 즐겼던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성인이 된 이후에 남태령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어요. 단독주택에서 살아서 서울 속에서 전원생활을 할 수 있었죠. 그때 큰 개도 키웠어요. 결혼하지 전까지 그곳에 살았고, 집에서 보낸 시간이 많진 않지만, 거점이 되는 곳이었어요. 저한테는 완전 ‘집’ 같은 느낌이었어요.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강남이었던 것에 반해 동경하거나 좋아하는 것은 강북인 것 같아요. 어떤가요?


네. 강남보단 강북과 정서에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결혼하고서 남편과 우스갯소리로 ‘‘사대문 안에 살고 싶다”는 농담을 자주 했어요. 구체적으로는 성곡미술관 근처나 통의동 같은 곳에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연희동은 그런 취향을 충족시켜주는 위치의 동네인 것 같아요. 가능하면 이 동네에 오래 살고 싶고,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는 데 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기도 하고요. 지금 사는 아파트는 대단지가 아니고 오래된 편이에요. 살면서 정을 붙이고 있는 건진 몰라도 신축보단 오래된 아파트에 더 정감이 가요. 오래된 아파트는 새아파트에 비해 조경에 내어준 공간의 비율이 높은 것 같고, 어쩐지 나무도 훨씬 울창한 것 같아요. 시간의 더께가 쌓이면서 더 따뜻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서울을 바라보는 관점이 동네의 분위기나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서울을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서울은 어떤 이미지인가요?


서울을 생각하면 일단 내 집 한 칸이 없다는 느낌이 들어요. 예전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아이를 키워서 그런지 평생 살아온 서울에 아직 터전이 없다는 것이 불안한 것 같아요.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최신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해외를 많이 다녀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이젠 서울에 없는 것이 없다는 결론을 많이 내리곤 해요. 원하는 대부분의 물건을 구할 수 있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살수도 있죠. 그만큼 정보도 손쉽게 얻을 수 있고요. 아마도 트렌드를 발 빠르게 반영하는 도시여서인 것 같아요. 경제력도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무엇이든 비슷하게 혹은 새로이 대체해낼 능력이랄지 감수성도 생겨난 측면도 있는 것 같고요. 예를 들면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카페의 인테리어나 콘셉트들이 영미권이나 유럽의 무엇을 카피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는 서울에 있는 카페가 커피도 제일로 맛있고, 분위기도 제일 좋다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에디터 공을채  /  일러스트레이터 조아란





interviewee


원은지

원은지는 글 쓰는 걸 좋아하고 가끔 공연 기획 일을 했다. 문학과 영화에 빠져 혼돈의 20대를 보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공룡을 좋아하고 가끔 엄마를 이해해주는 4살 아이와 바쁘지만 살뜰히 챙겨주는 남편과 즐거운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요즘 최대 고민 혹은 소망은 앞으로 십 년 정도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시작하는 것이라고 한다.






진짜-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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