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일도 일이다

임경선 작가가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

by 손현

한국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지난 40여년 동안 꾸준히 줄고 있다. 물론 통계에 함정이 많지만, OECD 평균에 근접할 정도로 줄어든 건 사실이다. 반면 일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은 늘어난 시대다. 어떻게 하면 오래 일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그 일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일찍이 자신의 길을 개척해야 하는 사업가나 자영업자, 경력 단절을 걱정하는 유자녀 근로자, 자발적으로 유연한 근로를 선택한 사람 중에는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일을 회고하며 글 쓰는 경우도 늘었다.

<OECD 연간 근로시간의 국가 간 비교분석과 시사점> 중 발췌 (김민섭 KDI 연구위원)

우리는 왜 일할까. 일이 뭐길래. 내가 하는 일이 나의 정체성을 가장 쉽게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일은 자기표현이자 자아실현의 중요한 수단이다. 그 일이 누구나 하(는 것처럼 보이)는 글쓰기라면?


임경선 작가가 ‘글쓰기’를 다룬 신간을 냈다. 제목은 <글을 쓰며서 생각한 것들>. 글쓰기에 관한 책은 이미 넘친다. 그 책을 임경선 작가가 썼다면 주목할 만하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글쓰기만으로 밥벌이를 유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자신의 출판사(토스트)를 운영하며 20년 넘게 저술업을 지속하고 있다.

표지에 들어가는 그림은 대개 작가가 직접 원작자에게 연락하여 허락을 구하고 사용권을 구입한다고 한다. 이번 커버는 Sanae Sugimoto의 작업.

한 가지 재미난 사실. 그는 작가 이전에 12년간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2007년에는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란 책도 썼다. 그 책은 2015년 <월요일의 그녀에게>란 제목의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이후 장편 소설을 집필하며 매해 소설과 산문을 번갈아가며 출판하고 있다.


지난 책이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태도를 다뤘다면, 이번 책은 업을 정면으로 다룬다. 본문은 글쓰기의 본질, 글쓰기의 고민, 글쓰기의 경험, 작가로 사는 인생, 이렇게 네 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평소 사탕 발린 소리를 극도로 싫어하는 저자답게 글에는 청양 고추가 곳곳에 묻어 있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으려는 이들에게 분명 필요한 쓴소리인데, 은은하게 단호하고 맵다. 부질없는 ‘좋아요’로 가득 찬 세상에서 나를 나무라거나 혼내는 이가 귀하고 도움이 된다는 걸 알기에 열심히 밑줄을 쳐가며 읽었다.


그중 아래 구절을 공유하고 싶다.


“글에 가장 깊은 진심을 담으면 쓰는 사람은 쓰면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소중하고 중요한 어떤 것을 자유롭게 쓰고 있다면 글쓰기 작업에 반드시 수반되는 물리적 가혹함을 견뎌 낼 수 있다. 간절히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가장 정직하게 써 나갈 때 나는 보다 진정한 나 자신이 되어 간다. 쓰는 글이 소설이라면 내가 이해하고 사랑하는 하나의 세계가 구현되어진다.”

— 임경선,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 p.17-18


작가의 전작 <평범한 결혼생활>을 읽으면서 ‘자유’라는 가치를 그 누구보다 중시한다는 걸 느꼈는데, 그가 오래도록 글을 써온 이유를 엿볼 수 있었다. 이는 내가 그 누구에게도 부탁받지 않고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쓸 때 느끼는 감정과도 같다.

2016년 1월 15일, 서촌의 북살롱 텍스트북에서 열린 저자 북토크 및 조촐한 뒤풀이. 3월에 첫 책 출간을 앞둔 유튜버 부부 '재지마인드'로 참석했다.

며칠 전 열린 북토크 중 작가에게 “이제 글 쓴 지도 20년이 넘었는데, 스스로 이 업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젓고 이렇게 답했다.


“굳이 재능이 있다면 어떤 미세한 지점을 관찰, 포착하고 그 안의 아름다움이나 속뜻을 들여다보는 것을 ‘조금’ 잘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것을 세세하게, 내가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애써요.”


세세한 관찰력은 글뿐 아니라 독자를 만나는 방식에도 적용된다. 작가가 내밀한 글을 쓰는 동안 이미 기쁨을 맛보았다고 해도, 독자가 아예 없으면 곤란하다. 대기업 마케팅 팀장으로 일했던 경험이 있는 그에겐 독자를 대하는 센스가 있다. 종로구청 공원녹지과의 허락을 얻어 경희궁에서 가을 독서회를 여는가 하면, <다하지 못한 말> 소설의 배경인 덕수궁 미술관에서 깜짝 북토크를 열기도 했다. 다른 책 소개를 보니 작가의 장점으로 “동시대 여성들과 심리적 연대를 단단하게 구축”해온 걸 꼽았던데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업세이(業+에세이)’란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2018년으로 기억한다. 장인성 저자(당시 우아한형제들 CBO, 현 스테이폴리오 대표)가 북스톤에서 <마케터의 일>을 출간했고, 인과 관계는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많은 직장인 작가들이 브런치에서 일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버스 기사, 편의점 주인, 청소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고, 웅진지식하우스에서는 ‘All the Beauty in the World’란 제목의 책을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로 번역해 출간했다.


돌이켜보면 20만 부가 넘게 팔린 <태도에 관하여>나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등 작가의 책들도 이런 흐름 위에 있다. 업세이에도 원조가 있다면 임경선 작가가 아닐까.


자신의 업을 글로 쓰려는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걸로 보인다.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이나 가보지 않은 길이 궁금한 이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그 길 너머에 있는 세계는 양질의 콘텐츠로 대신 접할 수 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시즌2의 우승자도 책을 냈다. (여담이지만, 작가는 이 책 때문에 자신의 신작이 에세이 1위에서 2위로 밀려났다고 웃으며 말했다.) 제목은 <요리를 한다는 것>. 목차도 간결했다. 음식이라는 것, 요리를 한다는 것, 식당을 한다는 것, 요리사로 산다는 것.


앞으로도 대중은 다양한 직업 이야기에 호응을 보낼 것이다. 삶이 위 목차처럼 단순하면 좋겠지만 어디서 무슨 일을 하건, 쉬운 건 하나도 없고 각자의 기쁨과 슬픔이 공존한다. 글 쓰는 일이라고 하여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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