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0] 외국어라는 해자, AI로 메울 수 있을까

오픈클로(openclaw)를 영어튜터로 고용했다.

by 서지삼


해자(垓子)라는 말이 있다. 성 바깥을 두른 깊은 도랑. 적이 쉽게 넘지 못하게 만든 방어선.


우리 시대에도 해자가 있다. 외국어, 컴퓨터 언어, 전문 언어. 이 셋을 넘지 못하면 정보에 접근할 수 없고, 도구를 쓸 수 없고, 전문가의 벽 앞에서 멈춘다. 수십 년간 이 해자는 견고했다.


그런데 지금, 그 해자가 메워지고 있다.


AI가 코드를 짠다. 논문을 요약한다. 통역을 한다. 어제까지 전문가의 영역이었던 것들이 오늘은 스마트폰 안에 들어왔다. 컴퓨터 언어의 해자는 이미 거의 무너졌고, 전문 언어도 빠르게 얕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외국어는?


번역의 해자는 이미 무너졌다. 누구나 번역 AI를 돌리면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온다. 누구나 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다만 개인의 언어 능력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해외 출장에서 갑자기 질문받는 순간, 외국인 동료와 점심 먹으며 농담을 주고받는 순간. 번역 AI를 꺼낼 수 없는 자리에서 필요한 건 내 두뇌를 통과한 언어다. AI가 번역의 해자를 메웠다고 해서 개인의 언어 능력이 쓸모없어진 게 아니다. 오히려 AI로 안 되는 영역이 더 선명해졌다.


그리고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그 능력을 기르는 데 가장 좋은 도구가 바로 AI다. 언어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뭘 모르는지를 아는 것인데, AI는 내 글을 수백 번 읽고 반복되는 실수 패턴을 잡아낸다. 그리고 나한테만 맞는 피드백을 준다. 인간 튜터가 물리적으로 따라갈 수 없는 초개인화 튜터링. AI가 해자를 메운 시대에, 해자를 건너는 다리도 AI인 셈이다.


솔직히 궁금했다. 이게 정말로 되는 건가.

궁금하기만 했으면 끝났을 것이다. 영어점수가 필요해지지 않았더라면. 개인적인 이유로 3월까지 반드시 넘어야 하는 점수가 있다.


학원? 퇴근하면 8시다. 인강? 아이가 셋이다. 집에서 30분 조용히 앉아 있는 게 불가능하다. 학원도, 인강도, 다 남의 이야기다. 그래서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AI.


AI를 나만의 어시스턴트로 세팅할 수 있는 오픈클로(OpenClaw)라는 서비스가 있다. 텔레그램으로 연결되니 따로 앱을 깔 필요도 없다. 여기에 IELTS 전용 영어 코치를 만들어 붙였다. 매일 아침 문제를 내고, 밤에는 점검하고, 틈틈이 영작을 시킨다. 채점도 하고, 첨삭도 하고, 내가 포기하려 하면 “시험비 30만 원인데, 오늘 안 하면 하루치 2만 원 날리는 겁니다”라고 자극도 한다.


이 시리즈는 그 과정의 기록이다. 외국어라는 해자를 AI라는 도구로 메울 수 있는가. 그 첫 번째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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