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다 페나까지(29.8km)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다시 출발 묵시아를 향하여 ---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연박의 즐거움을 떨치고 다시 새벽 순례길을 나선다.
묵시아와 피스테라 순례길은 지금까지와 다르다. 프랑스길과 달리 배낭을 옮겨주는 동키서비스도, 알베르게도 그다지 많지 않아 정해진 마을에서 멈추어야 한다. 그래서 하루에 걸어야 할 길이 멀고 식당을 기대하지 말고 먹을 것도 제대로 챙겨야 한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 정면 언덕길을 계속 내려가면 피스테라, 묵시아 가는 길이 나온다.
대성당 광장에서 내려오는 길에 순례자 사무실에 뛰어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순례자 사무실에서는 매일 선착순으로 순례완주자 10명에게 최고급 파라도르 호텔 점심 식사권을 주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그래서 밤새 걸어오거나 근처에서 자고 새벽에 완주 증명서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나도 완주증을 받고서야 알아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어떤 때는 10명 중 한국인이 6명인 적도 있다고 한다. 지금은 몇 명의 순례자가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하여 가보았더니 벌써 가방이 10개쯤 줄을 서고 있었다.
피스테라, 묵시아까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표지석을 지난다. 피스테라, 묵시아 루트는 유일하게 산티아고에서 출발하는 카미노이다.
'산티아고에서 피스테라 89km, 묵시아 86km'
나는 묵시아를 거쳐 피스테라까지 110km 정도 걸은 후, 26일 토요일 오전 버스를 타고 다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돌아올 것이다.
제주 숲과 마을 길, 목장 길을 꼭 닮은 돌담길을 걷는다. 이 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프랑스 길과 달리 별로 없다. 모두들 산티아고에서 걷기를 마치고 묵시아, 피스텔라까지 9시간 버스투어를 한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는 곳을 지난다. 나무껍질이 벗겨져 길에 가득하다. 나무 향기와 흙냄새가 너무 좋다. 키가 아주 큰 유칼립투스 나무가 자라는 것을 유심히 보면 아이들이 체격이 커지는 것과 비슷하다.
비가 많이 오는 갈리시아 지방답게 나무와 돌에 연둣빛 이끼가 대단하고 여기저기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전원주택단지를 지나 울창한 숲 언덕을 올라가자 저 멀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과 주황색 지붕의 집들이 많이 보인다. 성당을 중심으로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물소리가 굉장히 크게 나서 가까이 큰 강이 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림같이 아름다운 '폰테마세이라' 다리를 만났다.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이 다리를 통해 강을 건너는데, 추격하는 적들 앞에서 이 다리가 끊어져 운구가 순조롭게 이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이 다리는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로 선정됐고, 인증 마크를 입구에 붙여 놓았다.
이윽고 네그레이라 마을로 진입하였다. 큰 마트도 있고 생각보다 큰 규모의 마을이다.
네그레이라의 코톤 대저택 아래를 통과하는 아치문아래 산 마우로 성당은 코톤 대저택과 붙어 있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세요 찍는 곳이 없다. 지나는 사람도 없고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았다.
그래서 증거로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언덕을 오르고 산길에 밤과 도토리가 융단처럼 깔려있다. 결국 땅에 굴러다니는 토실토실한 밤들을 지나칠 수 없어서 주워서 비닐봉지에 담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묵시아 피스테라까지 걷고 다시 되돌아 걸어오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모두 밝은 얼굴로 부엔카미노를 외친다.
'저런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걸으며 제일 많이 걸은 날이 26km인데 오늘은 공식 기록 29.8km를 걸었다. 그것도 언덕과 산등성이 길을.
진흙 언덕길을 오를 때 숨을 몰아쉬며 산티아고에서 멈출 걸 괜히 욕심을 내었나 생각했다가 묵시아 바다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