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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림 Oct 26. 2021

100분 토론의 추억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국민학교 때 서울시에서 주최한  웅변대회에서 큰 상을 받았었다. 학교에서는 아침 조회시간에 나를 아주 훌륭한 학생이라면서 교장 선생님께서 칭찬을 해주시고 교장상까지 주셨다. 이때부터였을까? 학교 선생님들이 나를 너무 위해주셔서 부담스러운 시절이 시작되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그 관심은 이어졌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자 그렇게 잘해주던 선생님들은 나를 외면하기도 하고 또 한 체육선생님은 내가 달리기를 너무 못한다면서 구둣발로 밟았기도 했는데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은 너무 컸다.


지금도 있는지는 노르겠는데 우리 어릴적에는 상급 학교로 진학하기 위해선 반드시 치뤄야하는 '체력장' 이라는 게 있었다. 그리고 난 턱걸이를 한 개도 못하는 아이였다. 심지어 어린 시절 철봉만 보면 두려움에 쌓였던 아이였는데 어느 날엔가 체력장을 하면서 턱걸이를 하고 있는데 한 개도 하지를 못하니 정말 쪽 팔려서 눈도 못 뜨고 있는 상황에 처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엉덩이를 밀어주면서 "올라가! 올라가!" 하는 말을 하시는 분이 계셨고 나는 철봉에 턱이 다 올라가지도 못했는데 카운터를 해주셨다.


하나… 둘… 셋…


나는 그분 덕분에 내 인생 처음으로 다섯 개의 턱걸이를 기록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나의 영웅이었다. 거기다 다른 친구들은 힘든 일을 시키고 나는 따로 불러 농구도 함께 해주셨다. 하지만 그랬던 분이 갑작스럽게 나를 구둣발로 밟으네 정말 내 인생 최초로 배신감을 느꼈던 사건이었다.


언젠가 우연히 보게 된 MBC 100분 토론. 중간부터 봐서 누가 패널로 나오는지는 몰랐는데 주제는 '체벌금지' 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한 진영에서는 체벌은 사랑의 매라고 주장하는 선생님들이 나오셨고 또... 근데, 어랏...


그 패널로 나온 선생님이 바로 내가 달리기 못한다고 구둣발로 밟았던 선생님이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로 황당해서 정신줄을 놓고 있던 그 순간 손석희 앵커는 상대 쪽 패널도 소개를 했다. 그리고 내 귓속에서 이런 음악이 흘러나왔다.


빠바바 빠바바 밤~~~ (feat. 그대에게 전주 부분)


우와! 해철이 . 당시 체벌금지 카페를 운영하고 있던 가수 신해철 씨가 100분 토론에 패널로 나왔는데 세상에 해철이 형은 온몸에 조직의 보스처럼 스티커 타투를 하고 나타나서는 아주 그 선생님을 무차별하게 말로 폭행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내 나이 18세, 그때 처음 만났던 신해철이 MBC 100분 토론에 나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린 나의 상처를 봉합시켜주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정말,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라는 대중가요의 가사가 떠올랐다.


https://youtu.be/HGGzzW5H9MA

100분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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