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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러 생각

식민지 근성이란

by 윤여경

'일제 식민지'라는 말때문에 그런지 사람들은 한국이 1910~1945년만 식민지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땅은 사실 식민지가 아니었던 적이 별로 없다. 조선시대는 종주국을 바꿔타며 내내 식민지였고, 고려는 무신정권까지를 제외하고 내내 몽골의 식민지였다. 삼국시대는 나름의 독립국이었지만, 통일신라는 사실상 당나라 식민지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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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이 땅의 역사는 삼국시대와 고려초기를 제외하고 식민지가 아니었던 적이 별로 없다. 지금은? 당근 미국의 식민지 아닌가? 꼭 지배를 받아야 식민지가 아니다. 그건 과거의 방식이다. 영국이 인도를 포기한 것은 간디의 외침 때문만이 아니라 직접지배보다는 간접지배가 비용이 훨씬 덜하다는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이런 방식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한국은 일본에 이어 사실상 미국의 식민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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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프리랜서보다 대기업에 취업하는걸 선호하는 느낌이랄까. 취업하면 특정 시간과 공간적 제약을 받고 이익을 얻듯이, 식민지가 되면 특정 영역은 제약을 받고 이익을 얻는다. 식민지국가가 잘되어야 종주국도 우쭐해진다. 그래야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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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민지 그 자체보다 식민지 근성과 태도가 문제라고 본다. 사실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식민지 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각자가 생각하는 식민지 근성이 다르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하는 식민지 근성은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면서 평범한 악을 목격했다. "아이히만은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구나..."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식민지 근성이다. 아이히만은 '나치'라는 식민지에 아예 종속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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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족주의'도 식민지 근성의 일종이라고 본다. 생각의 모든 초점을 '민족'에 맞추는 것은 '민족 식민지'이다. 각자마다 민족의 범위가 다르다. 혈족부터 거대한 문명까지... 사람들이 민족을 어디까지 여기는지 살펴보면 아주 다채로울 것이다. 이 허황된 개념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태도야 말로 식민지 근성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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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식민지 근성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할까? 평범한 악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할까? 어렵지 않다. 이 답은 아렌트의 지적에 이미 나와 있다. 생각을 하면 된다. 그럼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자신이 쓰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면 된다. 사람은 말로서 생각하고 말로서 소통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말이 어떤 뜻인지 또 자신이 어떤 뜻으로 말하고 있는지를 또렷하게 알려고 노력하면 자연스럽게 식민지 근성에서 벗어나기 마련이다. 만약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식민지 근성 감옥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라 본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면 반드시 누군가의 말과 글에 종속되어 버리기 마련이니까. 이 종속이야말로 당장 몸이 구속되는 것보다 더한 종속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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