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로 대표되는 한국 20세기 추상회화 작가 김창열에 대한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 중이다. 추상회화는 보통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와 색면, 질감으로 표현되는데 독특하게도 김창열은 무엇을 그렸는지 금방 알 수 있는 물방울로 추상회화를 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예술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김창열의 물방울 작품은 한두 번쯤 듣거나 보았을 것이다. 나는 김창열의 물방울을 볼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물방울은 추상인가 구상인가? 분명 김창열은 물방울이라는 구상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사람들은 왜 그를 한국의 대표적인 추상화가라 말하는 것일까? 평소 이런 질문을 가슴에 품고 있었기에 이번 전시를 감상하는 포인트도 '왜 물방울인가?'에 있었다.
추상은 크게 2가지 방식으로 구분된다. 입체파에서 네덜란드 데 스테일로 연결되는 추상적 형태는 시각적 형태를 단순화시킨 추상이다. 몬드리안(Pieter Mondriaan)의 그림은 온통 네모인데, 그 네모는 몬드리안이 다양한 형태들을 모두 네모로 환원했기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와 독일로 이어지는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추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을 표현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렸으니 당연히 구상적 형태를 가질 수 없다. 일종의 어떤 느낌, 소리나 촉감 등을 시각적 형태로 재현하면서 추상적 형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미술사학자이자 평론가였던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inger)도 추상을 2가지로 해석했는데, 몬드리안 방식의 시각적 단순화는 '차가운 추상', 칸딘스키 방식의 공감각적 재현은 '뜨거운 추상'이라고 말했다. 그럼 김창열의 추상은 과연 둘 중 어느 쪽을 향할까?
나의 여러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가야만 했다. 추상 작품은 본래 관람자가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쉽지 않다. 추상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관람자는 항상 작가의 의도를 찾게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김창열 전시는 관람자에게 마음껏 해석을 맡기는 방식이 아닌, 김창열이 왜 물방울을 그리게 되었는지 작가의 의도를 살필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전시는 크게 3가지 파트로 구분해 김창열을 소개한다.
첫 번째 파트의 주제는 '상흔'이다. 김창열은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15세에 홀로 월남했다. 해방 무렵 월남과 이어지는 정치적 파동, 그리고 끔찍한 한국전쟁을 겪었던 김창열은 미술가로서의 길을 모색해 서울대 미술대학에 진학하지만 전쟁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경찰이 되어 제주도에서 1년 반을 근무했다. 하지만 미술가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한국의 전위집단인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을 주도하고 기존의 표현방식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미술, 즉 앵포르멜 실험을 시도한다. 붓이나 페인트브러시의 거친 느낌을 그대로 살린 선으로 표현된 그의 작품은 그가 얼마나 거친 상황을 겪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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