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한 달 용돈은 10만 원입니다.

나를 알아가기 위한 소소하지만 지혜로운 시스템

by 어흥라떼

매달 1일. 저희 부부는 한 달간 여윳돈을 저축해둔 통장에서 각각 10만 원을 입금받습니다. 이른바 '용돈'인 셈이지요.(마침 오늘 저는 용돈을 받습니다. 앗싸!) 남편이 용돈을 받은 지는 1년이 넘었고 저는 올해 1월부터 받기 시작했어요. 처음 용돈 시스템을 만들게 된 사연은 이러합니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했던 그 해에 남편은 커피 한 잔, 밥 한 끼도 사 먹지 않았어요. 분명 집에 있는 음식이 좀 부실했고 홀로 딸아이를 돌보면서 스트레스가 쌓일 법도 한데 바깥 커피 한잔조차도 사 먹은 흔적이 없더라고요. 제가 육아휴직을 했을 때와는 다른 소비패턴이 신기해서 한 날은 남편에게 물었어요.


"커피나 점심밥 같은 거 한 번씩 사 먹고 싶지 않아? 생활비 카드 써~ 한 번씩 스트레스받으면 먹는걸로라도 풀어야지."


이어진 남편의 대답에 저는 적잖이 놀랐어요.


"내가 뭘 사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육아휴직이라 벌어오는 돈도 얼마 없는데...... 괜히 눈치가 보이네."


당황했어요. 그리고 이내 짠했습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육아휴직을 했는데 수입이 적어졌다고 집에 눈치가 보이다니. 그런 대화를 하고 나서 저희 부부는 진지하게 고민을 했고 후에 남편에게 매달 용돈 10만 원을 주기로 했어요. 경제상황이 넉넉지 않아 최대한의 절약을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큰 지출은 부담스러웠거든요. 다만 모든 생활비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본인 뜻대로 먹고 마시고 놀 수 있는 비용으로 책정했어요.


남편의 용돈 예찬론은 얼마 뒤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주변인들이 들으면 놀랄만한, 어쩌면 참 적은 돈 10만 원이에요. 그런데 남편은 육아하며 가끔은 커피를 사먹고 점심을 포장해와서 아이랑 나눠먹기도 하더하구요. 복직을 하고 나서는 그 돈 10만 원을 아껴서 퇴근길에 잠이온다며 편의점 커피도 사 먹고 아침을 먹지 못한 날은 출근길에 맥머핀 등 간단한 요깃거리도 사 먹었어요.


언젠가부터 남편은 그 용돈 10만원이 참 좋았나 봅니다. 그러더니 작년부터는 저에게도 용돈을 받으라고 합니다. 전 한사코 거절했죠.


"나는 용돈 필요 없어~ 육아휴직해도 나는 생활비로 사 먹는 게 눈치가 보이지 않거든. 호호호"


사실 10만 원으로 내 생활비를 규정받는다는 게 일종의 구속으로 느껴져서 싫더라고요. 때로는 매달 생활비 중 날 위한 소비로 10만 원보다 더 쓰진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고요. 하지만 몇 번의 권유가 이어졌고 결국 올해 1월부터는 저도 용돈을 받게 됐습니다. 직접 받아보니 어떠냐고요? 대.만.족.입니다. 이렇게 추천 글을 쓸 정도로요.


처음 용돈을 받았을 때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나는 3년째 내리 육아휴직 중이지만 생활비로 커피 사 먹고 포장음식 사서 점심밥 먹는 게 집에 눈치가 안 보이는데 굳이 이걸 왜 받아야 하는 거지? 아 귀찮다.' 이런 생각뿐이었어요. 남편에게도 솔직히 이야기했었고요.


그런데 사람 맘이 참 간사한 게 그 10만 원이 제 통장에 입금된 순간부터 '이걸 어디다 쓰지' 하는 고민이 자연스럽고도 진지하게 시작되더라고요. 결코 30대 중후 반인 제가 쓰기에 많은 금액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적어서 오히려 더 진지해져요. 학창 시절 부모님께 받았던 용돈 이후로 10년도 더 넘게 만에 받는 용돈이다 보니 이게 뭐라고 괜히 설레기도 하더라고요.


작년에 제가 우울의 늪에 빠져있다는 걸 뼈저리게 자각한 이후로 저는 그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게 잘 어울리는지, 무엇을 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올라가는지 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마침 용돈을 받고 나니 그동안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지만 생활비로 하기에는 비용이 부담되었던 '퍼스널 컬러 테스트'가 떠오르더라고요. 용돈을 받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바로 예약을 했고 결국 다녀왔습니다.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퍼스널 컬러 테스트를 통해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게 좋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경험을 주저하지 않고 실행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용돈 덕분이더라고요. 용돈에 대한 만족도는 갑자기 급상승합니다.(이렇게 단순한 나란 사람.......) 이후에는 커피도 사 먹고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으면 그 금액도 다 용돈으로 지출했어요. 그리고 그 사이 저희 부부는 조금은 놀랄만한 시스템도 만들었습니다. 바로 옷, 신발 등을 살 때는 금액의 절반은 용돈에서 지출하는 것을 규칙으로 정했거든요. 사치품 비용의 절반을 내 용돈에서 지출하게 되니 아무래도 신중하게 되고 꼭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난여름 2박 3일간 서울여행을 갔던 비용도 전액 제 용돈에서 지출했습니다. 남편의 여행도 마찬가지였고요. 얼마 전에는 또 용돈으로 날 위한 소비를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처음으로 브로우바를 다녀왔어요. 매번 눈썹 라인을 잘 만들지 못해서 아쉬움이 컸는데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눈썹 왁싱을 해주는 샵이 있다고 해서 궁금증이 생겨 또 용기를 내어 다녀왔지요.


다음에는 여유가 될 때 원데이 메이크업 수업을 한 번 받아보고 싶어요. 그리고 겨울에 혼자든 친구와 함께든 최소 1박 2일 여행도 가고 싶어요. 아주 작고 소중한 용돈 10만 원으로 무엇을 하면 제가 행복할 수 있을까를 정말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제가 참 신기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상을 살아가는 게 참 재밌고 즐거워요. 매달 1일이 설레는 이유는 바로 이거였습니다. 용돈 10만 원으로도 내 삶이 조금은 더 즐거워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10개월이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용돈을 받으시나요? 그 용돈으로 무엇에 지출을 하시나요? 다른 이들의 삶도 참 궁금합니다.


오늘의 용돈 잔액. 널 의미있게 써주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