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vs Arrival

by 장완주


영화 <어라이벌(한국 개봉 제목 : 컨택트, 2016)>을 먼저 보았다. 원작 소설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아주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고, 또 한참을 벼르다가 며칠 전에야 소설을 읽었다. 원제는 The story of your life. 원작자 테드 창은 대만계 미국인이고, 아이비리그의 하나인 브라운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젊은 SF 작가다.


우선 영화의 스토리를 요약해보자. 디테일한 스포일러이니 조심...

출처 : 나무위키

주인공 루이스는 대학에서 언어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전에 미 육군이 이라크를 상대하는 군사작전에 도움을 준 적이 있었던 인연으로 외계 비행물체의 출현에 대응하는 군 사령부의 협조 요청을 받게 된다. 전 세계 열두 곳에 정착한 비행체는 18시간 간격으로 인간의 출입이 허용되며 각 장소에 마련된 기지에는 언어학자와 과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꾸려졌다. 그들은 외계인이 지구에 온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투명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외계인인 헵타포드와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각 기지들이 위성으로 정보를 교환하며 협업하는 가운데, 대중은 패닉에 빠져 폭력적인 대응을 하기도 하고, 일부 유튜버들은 그들을 더 선동하기도 한다.


진척이 없던 연구에 루이스가 돌파구를 마련하고, 외계인과 필담(?)을 나눌 수 있게 되면서 소통되는 어휘와 함께 오해도 쌓이게 된다. 언어는 총체적인 문화를 드러내는 다의적인 도구가 아닌가. 외계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을 묻는 질문에 '무기를 주기 위해서'라고 답변하자 열두 기지 중 하나인 중국의 군 최고 지휘자 섕 장군은 이를 일종의 선전포고라고 생각하고 다른 기지들과의 정보공유를 차단한 채 군사작전에 돌입한다. 긴장이 고조된다.


한편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연구하면서 기이한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꿈이 자신의 미래에 대한 기억임을 알게 된다. 루이스는 이번 연구를 함께 한 물리학자 동료와 결혼하여 딸을 낳게 되며 아이는 성인이 되기 전에 희귀 질환으로 죽을 것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아이를 낳는 선택을 한 루이스를 이해하지 못한 남편은 딸이 어릴 때 이들을 떠날 것이었고. 그러니 루이스는 지금 미래에 자신과 결혼하고 아이와 자신을 홀로 남겨둔 채 떠날 남자와 함께 일하고 있는 중이다.


작품의 기본 전제가 되는 것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이다. 그리고 비선형적인 헵타포드의 언어는 루이스의 사고를 비선형적으로 바꾸어 미래와 현재가 혼재되며, 미래가 현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루이스는 미래의 섕 장군으로부터 그의 결정을 돌이킬 수 있는 단서, 장군의 아내가 남긴 유언을 듣고 그의 전화번호를 받는다.


섕 장군은 루이스의 전화를 받고 모든 군사작전을 즉각 철회한다. 상황이 해결된 후 외계인은 임무를 완수하고 열두 기지 모두로부터 사라진다. 헵타포드가 주겠다는 '무기'는 선물, 바로 미래를 볼 수 있는 언어였고, 헵타포드의 언어를 가진 루이스가 그 무기이자 선물의 힘을 실연했으므로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미래를 아는 루이스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이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이자 '모든 이야기의 시작'인 루이스의 마지막 대사는 이렇다. "이 여정과 그 끝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그걸 받아들이고, 매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Despite knowing the journey and where it leads, I embrace it.
And I welcome every moment of it.


이번에는 원작 소설의 줄거리다. 다 쓰면 중복이 많으니 스토리 상 다른 점만 짚어보자.

출처 : 교보문고

* 헵타포드가 글을 '그려서'만 소통하는 영화와 달리 원작 소설에서는 음성 언어도 병행하여 사용하지만 지구인들은 글을 이해하는 것이 더 용이하다. 책에서는 외계인의 언어가 갖는 비선형적 특성을 과학적으로 자세히 묘사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각 기지 간의 협력이 있을 뿐, 위기가 조성되거나 하진 않는다. 영화 속에서는 군 내부에서 외계인을 도발하려다가 외계인 하나가 죽게 되는데 그런 극적 설정도 없다. 그리고 헵타포드가 지구에 온 이유와 떠난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 루이스와 남편, 딸의 관계 설정이 다르다. 영화에서는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에 둘의 로맨스가 시작되지만, 책에서는 연구 중에 이미 연애가 시작되며 후에 도시에서 살다가 부부는 이혼하고 각자 재혼해서 산다. 영화 속 루이스는 숲 속 집에서 혼자 딸을 키운다. 사랑스러운 모습만 부각되고 어른이 되기 전에 병으로 죽는 영화 속의 딸 한나와 달리 원작 속의 이름 없는 '너'는 그냥 평범하고 반항적인 사춘기를 거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스물다섯 살에 사고로 죽는다.


영화의 포커스가 '알면서도 선택할 거야?'에 집중되어 있다면 원작은 '알면서도 똑같이 행할 수 있을까?'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서 미래를 알면 그대로 행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작은 <세월의 책>이라는 우화를 소개하는데, 어떤 여자가 자신의 일생을 연대기 순으로 자세히 적어놓은 책을 읽는다는 가정이다.


그녀가 책에서 읽은 정보를 바탕으로 경주마인 '될 대로 되라'에('돼라'가 맞다. 그러나 '되라'로 쓰여 있다.) 100달러를 걸고 스무 배에 달하는 배당금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정말 그렇게 할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청개구리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탓에 그녀는 경마에 돈을 걸지 않기로 결심한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세월의 책>은 틀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209p)


나는 이미 영화를 보았었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와 예지력 사이의 그 끝없는 술래잡기를 이 책이 어떻게 결론 낼지 정말 궁금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결론이 가벼웠다. 책 속의 루이스는 이 부분에 대해 과학이론을 토대로 여러가지 추론을 하다가 '연극의 상연'으로 결론을 내린다. 결론을 알지만 순순히 맡은 바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뭐지? 니체야? 그리고 '일찍 죽을 운명'인 아이를 갖기 위해 남편과 침실로 들어가는 결말을 맺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영화와 원작은 큰 차이가 있다. 나는 영화에 점수를 다 몰아주기로. 다른 얘기를 먼저 하자면 영화의 각색이 매우 훌륭해서 원작이 갖지 않은 매력들을 더한 느낌이 들었다. 뼈대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리모델링한 집 같다. 원작에서 로맨스를 빼고 딸의 사인을 바꿈으로써 플롯이 한층 설득력이 더해졌고, 과학적 요소에 있어서는 원작의 과학적 대화보다 더 시각화가 강화된 방법으로 독자를 이해시키고 있다. 각색상을 여럿 받은 것에 확실히 이유가 있다. 테드 창이 소설가로서 가진 강점은 과학도라는 점이다.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일지라도 기본기가 탄탄하면 매우 훌륭한 지적 유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스토리텔링에서나 사유의 깊이에서 영화가 압승이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연극배우이기에 그대로 사는 것'과 '그 모든 것을 embrace 하고 welcome 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매우 큰 의미를 둔다. 헵타포드가 인간에게 미래를 보는 언어를 선물로 주었다면,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의지를 선물로 받았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미래를 보는 예언자 아가사는 살인을 저지르는 존(톰 크루즈)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에게 이렇게 외친다. "미래를 보았으니 당신은 선택할 수 있어!" 존이 어떤 선택을 할까? 하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메시지다. 영화 <어라이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루이스의 선택의 이유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You can choose.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존과 아가사, 출처 : 네이버 영화


제목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영화는 한국에서 개봉하면서 <컨택트>라는 이름을 썼다. 대체 왜지? 영어 제목을 영어 제목으로 바꿔서 한국에서 개봉하는 건 무슨 경우? 게다가 동명의 영화가 이미 있는데 말이다. 장르도 SF로 똑같고, 외계인과의 조우를 소재로 한 것도 똑같다. 이 장르의 클래식으로 손꼽히는 영화이며 심지어 원작의 작가가 무려 칼 세이건이다. 이건 뭐랄까... 약간 무례하다. 사람들이 헤깔리길 바라면서 일부러 거장의 노래와 같은 제목의 곡을 발매하는 애송이 같다. 기존의 영화가 <콘택트>로 표기된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외래어 표기법 상 '콘택트'가 맞다. 불순한 의도가 의심되는데 맞춤법 규정도 무시했다. 여러 가지로 못마땅한 제목! 하여 이 글에서는 그냥 영어 제목을 따서 <어라이벌(Arrival)>로 표기하였다.


책 제목도 마찬가지다. 원제 The story of your life는 중편소설의 제목이기도 하고 해당 소설이 실린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번역자가 소설의 제목은 <네 인생의 이야기>로, 소설집 제목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로 표기해놓았는데 둘 다 문제가 있다. '네 인생'은 네 개(4)의 인생인지 너의 인생인지 혼동의 여지가 있으며 '당신 인생'은 작품 중에서 소개하는 'you'가 루이스의 딸을 의미하고 루이스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므로 우리말의 '당신'으로 절대 번역되어서는 안 되는 대상이다. 딸한테 당신이라고 안 하니까. 혼동의 위험성과 대명사의 지칭 대상을 고려했을 때 가장 적절한 제목은 '너의 인생 이야기'였어야 했다.


전반적으로 번역 품질이 너무 아쉽다. 아마 전문 번역가는 아니신 듯하다. 초보 운전자의 차에 탄 채로 과속방지턱마다 머리를 천장에 부딪치는 느낌이다. 이런 글을 읽으면 오역도 있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생긴다. 전에 철학책을 네 권짜리 샀는데 1권을 읽다가 오역이 너무 많고 심해서 일부러 구글에서 원문을 일부 확인하고 출판사에 장문의 메일로 교정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완전히 거꾸로 번역한 문장도 있었다. 철학 책을 많이 번역하는 전문 출판사였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고쳤는지 아닌지 알 수 없고 그 책들은 그냥 읽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났다. 엄청 비싼 책인데! 그러나 번역이 허술하면 읽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테드 창의 다른 소설들은 다른 때에 다른 방식으로 읽기로 한다. 다행히도 이 소설 The story of your life는 훌륭한 감독을 만나 더 멋진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책을 읽고 나니 마치 책과 영화를 통해 소설 습작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배우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오히려 드니 빌뇌브 감독의 다른 작품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분, 눈여겨보아야 할 듯하다.


마지막으로 나의 결론은, "<콘택트>는 칼 세이건 것으로 보시고요, <어라이벌>은 책 말고 영화로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