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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서 Aug 07. 2024

사랑에 묻고 사랑이 답하다 - 셋

학교는 가야 하지 않을까?  꼭 가야 하나요?

학교 다니기가 어려운 거야? 학교 공부가 어려워? 친구가 없어서 그래? 외로워서 그런 거야?

갑자기 학교 등교 거부를 선언한 초등학생인 사랑이에게 원인 분석을 위한 질문을 수도 없이 했다.

아빠는 나 사랑해? 이유가 뭐야? 왜 사랑해?

사랑이는 아빠 심장 같아서 아빠 목숨보다 소중하지 그냥 사랑하지 이유 없어.

솔직한 마음으로 대하면 설득이 되겠지 생각을 하면서 대답을 했는데..

그렇지? 나도 그냥 학교 가는 게 싫어

맙소사!

마음이 그냥 그렇다는데 도저히 설득할 자신이 없어졌다

아무래도 잠깐 이야기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이 일로 온 가족이 비상 상황이 되어 버렸는데 해결사는 결국 나인가 - 하는 이상한 자부심이

발동했다고 해야 하나. 좋아 이번 일을 멋지게 해결해 봐야지~ 생각 끝에

학교는 사회에서 관계를 맺는 연습장 같은 곳이야. 그래서 학교를 통해서 일정 수준의 지식과

인간관계를 배우는 곳이지.

난 그게 너무 힘들어.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해야 하잖아.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는데?

생각해 보니 내 생각인지 아니면 그렇게 사회적 교육을 받아서 그렇게 대답했는지 이제는

나 자신이 혼란스러워졌는데 막상 딱히 설득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아빠도 내가 학교를 가야 한다는 목적이잖아.

나도 내 마음을 모르는데 알고 싶어. 근데 학교 가는 게 정말 싫다고

그러게 결국 난 사랑이 마음을 알아주는 척했을 뿐. 실제로 왜 그런지 마음을 알지도 못했다

본인도 몰라서 힘들어하는데 나는 어디서 가져온 지도 의문투성의 교육적 자세로 말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학교 가는 게 그렇게 힘들었는데 참고 다닐 때는 관심도 없더니

이제 내가 등교 거부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니깐 이제야 관심을 가져주는 건데

울부짖는 듯 토해내면서 말하는데 너무 놀랬다고 해야 할까.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전혀 몰랐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래, 묵묵히 학교 다니고 조용히 지내서 잘 지내는 줄만 알았던 거다.

사실은 엄마, 아빠 생각해서 참고 버티고 버티고 있었던 것인데.. 어린아이가 그렇게

혼자서 견디고 있었던 것을 전혀 짐작도 못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언니, 오빠랑 나이차이가 있어서 대학생이 되면서 본인과 노는 시간이 갑자기

사라졌을 거고 일하는 엄마와 치료 때문에 떨어져 있는 아빠.

결국 사랑은 혼자가 좋았던 게 아니라.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생일 선물 뭐 갖고 싶냐는 질문에 가족들이랑 함께 게임하는 거라고 했던 아이다.

그냥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좋았던 것이다.

결국 난 공감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정해진 답으로 이끌어가려고만 했던 것이다.

사랑이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말 그냥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랐는데 아무도 그런 마음의 대화보다 해결책만을 찾고

설득하려고만 했던 것이다.

아빠, 나도 내 마음을 몰라고 알고 싶은 거고 학교가 그냥 지금 싫은데

아 싫구나. 많이 싫었는데도 참고 있었구나. 이런 마음이 필요했어

그저 아기인 줄만 알았던 사랑이가 성장통을 겪고 있는데 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하고

알아주지 못해서 참 미안했다.

과연 내가 안다고 아는 게 얼마나 정확하고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할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확신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생각해 보면 지난 시간 동안 인간관계에서 씁쓸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망각은 신의 선물인지

또다시 잊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살아오기는 했지만 자녀와 관계는 전혀 다른 장르였다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언제부턴가 마치 다 아는 것처럼 굴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해결책이 필요한 게 아니라 공감해 주는 걸 바란 것뿐인데.

마치 질문을 문제로 생각하고 온갖 해답을 찾아서 맞추려고만 했던 것이다.

사랑이와 나에게 필요한 건 해답이 아니라 공감이고 그 질문에 함께 생각하는 대화였던 것이다.

그래 이제야 우리는 대화라는 것을 시작했다.

대화의 시작은 그렇게 상대에 대한 궁금증을 경청하면서 시작되는 것인가 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망설이는데 사랑이는 힘들게 말을 꺼내도 기존의 잣대로 자꾸 분석하려는 시도는

끝없이 솟아오른다. 

아무리 설명하면 뭐 해. 결국 원하는 게 뭔데?

뭔데요. 

감정에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지켜보자면 깍듯하게 존댓말로
말하던 사랑이가 언제부턴가 거칠어진 말들을 쏟아내었던 건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작고 작던 내 친구는 어디로 가고 이토록 아파하는 청소년이 남아 있는 걸까?
생각이 잘 흐르지 못하는 것은 몸이 아파서 그런 건지 답을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한 것인지
무기력함이 온몸을 휘어 감는 것 같았다. 
학교는 안 가도 되기는 하는데 정말 그렇게 아이에게 믿음을 주었을까.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 아니 마음속 진심을 말하지 않는 사랑이가 정제하며 말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이 사랑이가 원하는 것과 같은 것인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아서 망설여졌다.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어. 참아야 했고 어른인 척해야 좋아해서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고

그런데 그러면 또 너무 어린아이 같지 않다고 뭐라고 해서 도대체 어떻게 하라고...

생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는데 다들 날 걱정한다면서 그렇게 말하면서 

날 어린아이도 어른도 아닌 존재로 만들어 버렸잖아.

그렇구나. 생각해 보니 학교에 왜 다녔는지 그 이유를 나도 모르고 살아왔다. 

그래서 20대에 오히려 방향을 잡지 못하고 그저 일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그런 무미건조한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좀 더 귀를 기울여서 들어줘야 했는데 말이다. 

지금이라도 늦은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사실 두려워서 사랑이에게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뭐라고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학교 문제에 관해서는 일단 나중에 다시

이야기로 하고 통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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