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 활동, 법을 넘어서는가?
덕질과 저작권

어느 덕후의 저작권 탐구 생활

by Time Right

중년의 덕질이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우선 덕질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덕질은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출처: 네이버 사전)”이다. 나는 4년 전부터 중년의 일상과 덕질에 대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블로그를 통해 중년의 덕질이 나 혼자만의 외로운 취미가 아닌, 생각보다 많은 중년들이 직장, 가정, 삶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저작권법에 대한 무지로 저질렀던 실수들

나는 주로 스트레이 키즈(이하 스키즈)라는 아이돌을 덕질하고 있다. 나의 최애는 스키즈의 리더 방찬이다. 많은 K-POP 남자 아이돌이 그러하듯 스키즈 또한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으며, 인터뷰나 기사도 외국 매체가 더 심도 있게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주옥같은 내용들을 중년 스테이(스키즈 팬덤명)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나는 기사를 번역하고, 동영상 인터뷰에 자막을 입혀 포스팅했다. 나는 중년 스테이들 사이에서 외국의 정보를 알려주는 '통'이 되었고, 큰 문제없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의 관심이 어느 한 일본 록밴드에게로 확장되었다. 럭라이프라는 이 밴드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한국어 자료가 너무 없어서 '그럼 내가 일본어 공부할 겸 자료를 정리해 봐야지' 생각했다. 그들을 한국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던 나는 소속사에 혹시 대표적인 기사 몇 개를 알려줄 수 있는지, 블로그에 번역해서 한국 팬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런데 각 기사는 매체에서 저작권을 갖고 있어서 본인들이 알려줄 수 없다는 회신이 왔다. 처음에 이메일을 받고, '알려주기 싫으면 말지, 내 블로그를 무시하는 건가' 하는 별별 생각을 다 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저작권법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가?'


무식하면 용감하고, 그 용감에 대한 부끄러움은 나의 몫

우리나라는 아이돌 관련 콘텐츠의 경우, 비방 목적이 아닌 홍보 목적이라면 사진, 기사, 영상에 대한 저작권에 비교적 관대한 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길에 차 하나 안 다녀도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는 나에게, 내가 법을 어기고 그것도 자랑스럽게 블로그에 올리고 있었다는 것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내가 하고 있던 모든 것이 저작권법을 침해하고 있었다.


우선, 일본 노래의 가사를 통째로 블로그에 올리는 것부터 저작권 침해라고 한다. 그대로 게시하면 ‘복제·공중송신’ 행위가 되어 저작권자의 복제권·공중송신권(대한민국 저작권법 제18조, 제20조, 일본 저작권법 제23조)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그럼 번역은 어떨까? ‘번역’은 원작을 기초로 한 2차적 저작물이므로, 번역·공개에는 저작권자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이 필요하고(한국 저작권법 제5조 제1항 제2항, 일본 저작권법 제27조), 허락 없이 전체 번역본을 올리면 원작자 권리를 침해한다. 기사 역시 이와 같다.


나는 지금까지 너무나도 당당하게 법을 어기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당당하게, 심지어 자랑스럽게 포스팅을 해온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줄어든 조회수, 떠나는 구독자

나는 내가 올렸던 스키즈와 럭라이프 관련 번역 내용을 모두 내렸다. 그리고 법에 위반되지 않는 짧은 직접 인용만 하고, 나의 감상문 위주로 글을 썼다. 사진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내리고, 그림 또는 텍스트로 대체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의 구독자들이 떠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통번역 된 노래와 기사들에 익숙해져 있고,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유난을 떠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경우는 저작권법이 굉장히 보수적이지만, 우리나라는 홍보의 목적이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니 구독자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번역을 조금 해도 되지 않을까? 아니면 외국 자료가 저작권법에 문제가 되면 한국 자료에 영어 자막을 넣어서 올려도 되지 않을까? 최애를 자랑하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큰 나는 아슬아슬한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을 지키기로 했다. 왜냐하면 팬으로서의 나의 정체성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념 있는 팬 활동이 내가 사랑하는 아티스트에 대한 가장 큰 홍보라고 생각한다.


덕질에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시대

하지만 외로운 싸움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활동을 했던 다른 사람들에게 '우르르' 가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기까지 하다. 그러다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블로거/유튜버들은 본인들이 법을 어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높은 확률로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X나 인스타그램의 사진은 재배포 또는 인용이 가능하다거나, 기사는 링크 공유까지만 가능하다는 등. 우리 모두가 건전한 덕질을 하기 위해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교육은 누가 시키는 것이 좋을까? 특히 케이팝의 경우는 해외 팬덤이 한국 팬덤보다 큰 경우도 많은데, 그들을 어떻게 모두 교육시킬 수 있을까? 이런 이유 때문에 정부나 어떤 회사가 특별히 나서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기획 중이다. 건전한 덕질을 위해 저작권법에 대해서 알리는 방법을. 부디 더 많은 사람들이 건전하게, 그리고 법 위반 없이 덕질을 할 수 있는 팬 생활을 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