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걸까?

by 밤하늘 읽는 시간

내가 알고 있는 ‘너’는 언제나 내 눈을 통과한 ‘너’다. 다시 말해, 나는 항상 내 감정, 생각, 경험을 통해 누군가를 바라본다. 결국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건 어쩌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가령 어떤 사람을 보고 “저 사람, 참 미워”라고 느낄 때,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이 실제로 미운 행동을 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말이 거칠다거나, 예의가 없다거나, 인색하다는 식의 이유를 댄다. 그리고 그 사람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내 미움도 사라지지 않을 거라 믿는다.


이 생각의 바탕에는 이런 믿음이 깔려 있다. ‘그 사람은 나와 상관없이 그냥 그런 사람이고, 나는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을 뿐이다.’ 마치 내 마음은 투명한 거울이고, 그 거울에 비친 모습이 전부 그 사람의 실체라고 여기는 거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한 번쯤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어디까지가 그 사람의 본모습이고, 어디서부터가 내 감정과 해석이 더해진 모습일까? 같은 행동을 봐도 어떤 사람은 불쾌해하고, 또 어떤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모두가 외면하는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로 남는다. 그렇게 보면 미움이란 건 절대적인 게 아니라, 결국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음을 거울에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그 거울이 언제나 있는 그대로를 비추는 맑고 고요한 물면일 거라고 믿는 건 어쩌면 착각일지 모른다. 오히려 우리의 마음은 꿈을 꾸는 사람과 닮았다. 꿈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기억, 억눌린 감정, 작은 단서들을 엮어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웃고, 울고, 화내기도 한다. 실제보다 더 크고 강한 감정으로.


그래서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는, 그 감정 자체보다 ‘왜 그런 감정이 일어났을까’를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하다. “저 사람은 나쁘다”가 아니라, “내가 지금 불편함을 느끼고 있구나”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보는 것. 그렇게 감정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감정에 덜 휘둘리고, 조금은 여유롭게 그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결국, ‘미운 사람’이라는 건 이 세상 어딘가에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만든 해석과 감정, 나의 시선이 만들어낸 이미지일 가능성이 더 크다. 기쁨도, 슬픔도, 서운함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감정이 내 마음의 색으로 물든 그림이라면, 가끔은 그 붓을 잠시 내려놓고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건, 정말 그 사람일까? 아니면 내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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