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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Mar 23. 2016

정치인 강매(强賣)

총선 코앞인데 후보도 확정 못해

정당만 보고 찍으라는 강요 행위

정당 정치는 오래 전에 기능 상실

국가 지배구조 재편할 필요 높아

 

잘 나가는 조직이라도 순식간에 몰락한다. 변화를 무시하거나 구심력이 떨어지면 속절없이 와해된다. 파국은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100년 전 영국의 자유당이 그랬다. 정말 어처구니 없이 무너지고말았다. 자유당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세 차례의총선에서 연거푸 승리했다. 자유당 인사들은 “우리는 총선에서 4연승을 거둘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 때가 정점이었다. 자유당은 1906년 총선에서 400석을 얻어 정권을 잡았다. 보수당은 157석을 확보하는데 그쳤고, 신생 노동당은 30석에 만족해야 했다. 1910년 1월 총선에서는 자유당은 275석으로 정권을 유지했고, 그 해 12월 선거에서도 272석으로 계속 집권하는데 성공했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자유당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1924년총선에서 자유당의 의석은 40석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보수당은 419석, 노동당은 151석을얻었다. 보수당-노동당의 양당 구도아래 자유당은 군소 정당으로전락했다. 자유당은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1988년간판을 내렸다. 


자유당은 변화, 진보, 개혁의 아이콘이었다. 선거권 확대,상원의 개혁 등을 통해 영국 역사에 찬란한 족적을 남겼다. 이미 100년 전에 최저임금제와 노령연금제를 도입했다. 


처음 출범할 때부터 그랬다. 자유당의 태동은 ‘곡물법(CornLaws) 폐지’에서 비롯됐다. 곡물법의 골자는수입 농산물에 대한 무거운 관세 부과다. 농산물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지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지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토리파(Tory)는 곡물법 유지를 주장했다.  


노동자와 상인들은 곡물법 폐지를 주장했다. 식료품은 노동자들의 생계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농산물 가격상승은 임금 인상으로 이어졌다. 지주는 물론 상인들을 대표하는 휘그파((Whig)는곡물법 폐지를 주도했다. 


마침내 1846년곡물법 폐지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됐다. 곡물법 폐지는 정계 개편으로 이어졌다. 폐지를 지지하는 휘그파와 토리파 일부는 자유당, 폐지에 반대하는상당수 토리파는 보수당을 결성했다. 


자유당은 이름에 걸맞게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추구했다.‘자유’를 지키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경직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경직성은 훗날 자유당 붕괴의 단초를 제공한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자유당은 여론의 압력에 밀려 보수당과 전시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개전 초기 영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수세에 몰렸다. 육군은 병력 부족에시달렸다. 보수당은 병력 확충을 위해 징병제 도입을 주장했다. 


자유당은 정체성 위기를 맞았다. 바로 ‘자유’ 때문이었다. 징병제는 자유를 훼손한다고 여겼다. 자유당의 애스퀴스 총리는 미온적인입장을 유지하다가 결국 징병제를 받아들였다. 일부 자유당 각료는 여기에 반발해 사퇴했다.   

 

정체성 위기에다 내홍까지 겹쳤다. 자유당의 애스퀴스와 로이드 조지는 총리 자리를 놓고 다퉜다. 로이드조지가 전시 연립내각을 이끌 총리로는 탁월한 역량을 입증했지만 당권은 애스퀴스가 장악했다. 두 사람은끝없이 반목했다. 


지도부의 분열은 변화 대응 능력을 떨어뜨렸다. 자유당은 번번이 이슈 주도권을 노동당에 내주고 말았다. 유권자들은자유당 대신 보수당이나 노동당을 선택했다. 


한국 정당의 모습에서 영국 자유당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권력자의 일방통행식 결정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확산되고 있다. 정당 지도부는 정책보다는 헤게모니 장악에 열을 올린다. 


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누가 출마할 지도 확정하지못한 곳이 수두룩하다. 누구를 후보로 결정하더라도 그저 정당만 보고 선택하라는 얘기다. 정치인 강매(强賣) 행위나 다름없다. 모를 심었으니까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식이다. 오만함에 적개심이 솟구칠 정도다.  


한국의 정당 정치는 심각한 기능 부전에 빠졌다.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도 모르는 후보를 민의의 대변인으로 뽑아야 한다. 정치인들이정책 개발을 위해 치열한 노력을 펼칠 이유가 없다. 무조건 절대 권력자를 추종하면 살 길이 열린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매력적인 생존 방법이다. 


회의가 깊어질수록 반발도 거세진다. 권력자가 밀어주는 후보들이 경선 여론조사에서 탈락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현재의정당 정치, 국가 지배구조에 대한 회의도 갈수록 깊어진다. 


참고문헌

1)   강원택 지음. 2013. 정당은 어떻게 몰락하나? 영국 자유당의 역사. 오름.

2)   앙드레 모루아 지음. 신용석 옮김. 2013. 영국사.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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