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대신 닭

꿩이 아니면 좀 어때요, 우리에겐 따끈한 닭국이 있는데

by 티모시

우리는 늘 ‘꿩’을 쫓으며 삽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화려한 직함, 남 부럽지 않은 재산, 그리고 누구보다 빛나는 성취라는 이름의 꿩 말이죠. 하지만 정작 우리 손에 잡히는 건 털이 삐죽삐죽 돋아난 평범한 ‘닭’ 한 마리일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쉽게 좌절하곤 합니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소박할까", "왜 나는 꿩을 잡지 못했을까" 하고 말이죠.


그런데 문득, 우리가 그토록 평범하게 여기는 이 ‘닭’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위로가 들려옵니다.


삼계탕


귀했던 꿩, 곁에 있던 닭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고기의 주인공은 닭이 아니라 꿩이었습니다. 명성왕후의 주치의였던 언더우드 여사가 왕실로부터 받은 선물 꾸러미 속에도, 한강 변을 여행하던 비숍 여사가 마주한 시장통에도 닭보다는 꿩이 귀한 대접을 받으며 놓여 있었습니다. 당시 닭은 그저 아침을 알리고 달걀이나 내어주는, 식탁의 주연이라기엔 어딘가 부족한 조연에 불과했습니다.


변화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하고 척박한 시절이 찾아왔습니다. 총독부는 산란을 위해 닭 사육을 권장했고, 농가마다 달걀을 얻기 위해 닭을 키우기 시작했죠. 그러다 보니 달걀을 낳지 못하는 수탉들이 ‘잉여’로 남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쓸모없는 과잉이라 생각했겠지만, 우리 선조들은 그 잉여의 닭을 솥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연계탕(軟鷄湯)’입니다. 특별할 것 없는 닭에 찹쌀 몇 숟가락, 그리고 인삼 한 뿌리를 더해 푹 고아낸 이 음식은 1926년 무렵 서울 전동의 대구탕 집에서 팔리기 시작하며 경성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꿩을 구할 수 없던 시대적 결핍이, 오히려 삼계탕이라는 국민 보양식을 탄생시킨 셈입니다.


인생도 때로는 ‘잉여’에서 명물이 나옵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연계탕의 인기 비결은 의외로 담백합니다. "맛이야 무슨 특별한 것이 없지만은, 먹기에 편리한 까닭에 누구나 환영한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대단히 화려하고 특별한 맛은 없어도, 그저 내 곁에 있어 먹기 편하고 속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들. 그것이 진짜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 됩니다. 꿩을 잡으려 산을 헤매다 지쳐 쓰러지는 것보다, 마당에 흔한 닭 한 마리로 식구들과 둘러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을 나누는 것이 더 큰 행복일지도 모릅니다.


1960년대 명동 한복판에서 전기구이 통닭을 굽던 연기 속에, 오늘날 퇴근길 치킨 봉투를 들고 가는 우리 아버지들의 뒷모습 속에 꿩 대신 닭을 선택한 이들의 '현명한 만족'이 녹아 있습니다. 꿩이 아니라고 해서 그 식탁이 초라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소박한 닭 한 마리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설 힘이 되는 ‘영양(營養)’이 되었습니다.


조금 힘을 빼도 괜찮은 이유

인생이 너무 힘들 필요는 없습니다. 꿩이 없으면 닭을 삶으면 되고, 인삼이 없으면 마늘이라도 듬뿍 넣으면 그만입니다. 1925년의 어느 기사처럼, 우리가 한 해에 천만 마리의 닭을 소비하며 그 단백질로 고단한 근현대사를 버텨왔듯, 우리 각자의 삶도 주어진 것들을 맛있게 요리해내는 과정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혹시 지금 꿩을 잡지 못해 빈손으로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계신가요?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당신의 마당에는 이미 당신을 기다리는 닭이 있고, 당신에게는 그것을 맛있는 삼계탕으로 만들어낼 따뜻한 마음의 불씨가 있습니다.


최고가 아니면 좀 어떻습니까. 우리 인생, 꿩 대신 닭이라도 충분히 달콤하고 든든하니까요. 오늘 하루는 "이만하면 됐다"는 마음으로, 내 곁의 소박한 행복들을 푹 고아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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