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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잎 Dec 01. 2018

동네 카페에는 무기력한 얼굴의 바리스타가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리동네 카페가 있다. 청록색의 카페다. 그곳에는 늘 무기력한 표정의 바리스타가 있다. 폰을 보면서 앉아있다. 


내 하루가 너무 힘들었을 때 나는 내게 보상을 줘야한다. 맛있는 걸 나한테 먹이자. 그래야 이 힘듬이 풀릴 것 같다. 


그럼 청록색 카페로 향한다. 아무거나 골라도 맛있다. 실망한 적이 없는 곳이다. 무기력한 바리스타는 폰을 보다가 무심하게 일어서서 나를 맞는다. 



나는 라떼나 핫초코 아메리카노 그린티라떼 가운데 하나를 시킨다. 그리고 스콘과 생크림을 시켜 먹는다. 


아름다운 음악은 흐르고 있고 온통 청록색인 카페에 앉아 있다. 이곳에는 세상의 모든 편안함이 다 들어있는 듯하다. 그리고 내 앞으로 오는 맛있는 음료까지. 


아름다운 순간이다. 내 힘든 하루는 나에게서 떠나갔다. 나는 이곳에 앉아있는 것이다. 센치해진다. 펜을 꺼내서 일기를 쓴다. 


글로 적어내려가는 나의 감정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거의 완벽한 순간일까. 



무기력한 바리스타에게 이 기분을 알리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다. 다가가서 나의 일기장을 보여주면서 '아저씨. 아저씨의 카페가 제게는 이정도의 의미입니다. 모르실까봐 알려드립니다.' 말을 건네는 상상을 해본다. 


나의 아름다운 고양이가 있는 내 방도 청록색의 카페못지 않다. 그러나 내 방에서는 내게 요구하는 목소리가 너무 높다. 


빨래 좀 널어줘. 빨래 좀 개줘. 화분에 물 좀 줘. 바닥 좀 닦아줘. 지저분한 것 좀 치워줘. 

옷장 정리 좀 하자. 서랍 좀 들여봐 줘. 


자꾸 내게 뭘 요구하니까 내가 방에 들어가있기가 어렵다. 후.. 고양이가 내가 없는 사이에 우렁각시로 변하면 얼마나 좋을까. 살림을 좀 가르쳐 볼까. "고양이야 이거 잡을 수 있어?" 라고 말하지만 고양이는 손가락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내 방이 요구하는 목소리를 외면한다. 사랑하는 고양이를 냅두고도 종종 청록색의 카페에 앉아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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