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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니Tini Sep 27. 2023

우린 우연히 만나 3

어학연수와 유럽여행 중 만난 친구들 이야기

" You speak english pretty well."


 뉴욕에 살아야 될 운명 인가 봐하고 느꼈던 날. 한국에서 온 어학연수생이 NYC 한복판에서 데이비드 슈위머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몇 차례 되물었던 날.


 데이비드 슈위머가 낯선분들을 위해 이름을 다시 한번 소개해 드려야겠다.


 그날 나는 프랑스 친구와 함께 뉴욕 한복판에서 프렌즈의 로스 겔러를 만났다.



 성공적인 어학연수를 위해 출국 전 나름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었다.


 영어 전화, 회화학원, 문법 공부, 프렌즈 쉐도잉 등등.


 이제 와서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안 한 것보다야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학연수를 생각 중인 분이 있다면 뭐든 준비하고 가시기를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린다.


 그중 프렌즈 쉐도잉을 가장 좋아해 가끔은 문법 공부를 의도적으로 까먹기도 하였다. 쉐도잉은 말 그대로 그림자처럼 주인공들의 대사를 따라 말하는 것인데 실전 회화감각을 기르기 위해 좋은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아는 동생 언니의 후기로 프렌즈를 접하게 되었다. 방에 틀어박혀 프렌즈의 10개 시즌 전부를 시청하고 나니 영어가 자연스레 나왔다는 전설의 후기.


  반신반의하며 틀어 둔 1화를 5분도 참지 못하고 꺼버렸는데 그 이유는 청중들의 박수소리와 리액션 때문이었다.


 새로운 포맷에 약간 당황했지만 꾹 참고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1회, 2회를 지나고 나니 마지막 회 차를 울면서 앞두고 있는 여성이 되어버렸다.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6명 인물들의 삶은 유쾌했고 복잡했고 감동적이어서 그래서 나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아버지를 떠나 독립을 해낸 레이첼, 진지한 연인관계를 어려워하던 첸들러, 포기하지 않고 꿈을 좇는 조이, 결혼이 어려운 로스, 늘 모든 완벽하고 싶은 모니카, 다름을 주저하지 않던 피비.


 10개의 시즌을 지나는 동안 그들은 나였고 나였으면 했고 아니었으면도 했다.


 뉴욕으로 넘어가 처음 반배정되자마자 친해지고 싶은친구를 발견했다. 혹시 이것도 재능이라고 할 수 있나 싶은데 보통 어떤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렇게 되는 편이다.


 고맙게도 나와 기꺼이 친구가 돼주는 사람들.


 모로코 태생에 프랑스에서 살다가 벨기에의 대학을 나온 L은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 뉴욕으로 넘어왔다. 사진작가 겸 모델도 하는 그녀의 스타일은 독보적이어서 매번 그녀를 보면 피비가 생각났다.


 그녀와 처음 놀기로 한 날, 그녀는 내게 뉴욕 지하철 공짜로 타는 법, 빈티지샵에서 멋진 옷을 찾는 법 등을 알려주었다.


 "티니, Now or never이야."

 " Are you ROSS from Friends?"


 나의 피비 소개로 다른 친구의 집들이에 가는 날, 길거리에서 운명처럼 데이비드 슈위머를 마주쳤다. 그를 보자마자 단숨에 명백하게 그 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때 마침 HBO에서 나온 프렌즈 스페셜 방송을 시청한 이후라 그를 알아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누군가와 대화 중이던 그를 방해하고 싶진 않았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기회가 있겠냐면서 피비가 팔을 툭툭 치며 부추겼다.


 "아니, 진짜? 근데 나 진짜 못 걸겠어. 진짜로."


 흥분과 긴장으로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어쩌지를 반복하는 나를 보다 못한 그녀가 나서줬다.


 아, 내 용감한 피비여.


 "Oh, Yes, I'm"


 그의 다분히 호의적인 반응에 냅다 사진 찍어도 되냐는 물음이 반사적으로 튀어나가 버렸다. 지금 돌이켜봐도 너무나 갑작스럽고 성급하지 않았나 싶다.


 "Sorry, I didn't make picture anymore. Well, Where are you guys from?"


 거절에 속상할 틈도 없이 그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한국에서 왔고 영어를 이유로 어학연수 중이며 프렌즈로 회화 공부를 했다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국 가수들이 프렌즈로 영어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알고 있다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영어를 꽤 잘한다고 칭찬해 주었다.


 나도 안다. 꽤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 것을.


 "I do know what is first line of friends!"


 왜 그에게 내 쉐도잉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프렌즈 시즌 1의 1화 대사의 주인공은 모니카였고 아마도 레스토랑 직원이랑 무슨 사이냐고 캐묻는 친구들에게 아무 사이라고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


"There is nothing to tell. Just some guy I work with."


 로스와 흥분된 만남은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는 추억으로 남았다. 사진이 없어 못 믿는 분이 있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다만 그날 일이라면 아직도 손과 발이 덜덜 떨리는 한 여성이 있을 뿐


그 날 피비 친구네서의 야경


  호주에서 온 모델 A와 프랑스에서 온 피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에 살던 이들로 꾸려진 집들이. 와인을 한잔 기울이다 옥상에서 다 같이 사진 한 장을 찍고 이른 추위에 덜덜 거리던 날.


 여기서 이렇게 살면 어떤 기분일까를 수 없이 생각했던 날이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동네에서 말도 안 되는 월세를 부담하기 위해 부단히 일하고 퇴근 후 룸메들과 지인의 지인들이 껴서 파티를 즐기고 별별 이상한 사람 다 있는 메트로를 타고 다시 일하러 가는 삶.


집들이h

 비건인 A가 만들어 준 단호박 파스타와 10명이 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파티를 즐긴 이 날은 영락없이 프렌즈 같은 하루였다.


 처음 보는 나를 아무렇지 않게 친근하게 대해 줄 수 있었던 친구들과 새벽 메트로는 위험하다며 소파 한편을내어 준 댄서 A에게는 여전히 한가득의 고마움이 남아있다.


 "There is nothing to tell. Just a day I love"


 어쩌면 우리의 모든 인연은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내 삶에 맞닿은 당신이 기적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것을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피비

 오늘따라 피비가 더 보고 싶은 새벽이다. 피비는 현재 뉴욕의 한 프랑스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뉴욕에서 살 거라던 꿈을 이뤄낸 그녀는 늘 용기가 없어 미뤄 둔 내 꿈을 깨워주는 좋은 친구이다.


"Tini, 이건 너의 인생이야.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돼. 뭐든 다 할 수 있어."


  뭐든 다 할 수 있는 나는 우리가 또 만날 수 있음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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