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출장러의 다이어리

5년산 Paris, 일상의 맛

by Anna Anne

파리에서 밀라노로 이직을 한 2015년, 나는 파리와는 더 이상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어쩌다 파리를 떠나서도 프랑스계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나는 파리-밀라노 단기/장기 출장을 벌써 5년째 하는 중이다. 일반적으로 규모가 큰 금융 컨설팅 프로젝트는 파리나 런던에서 주로 이뤄지는데, 파리에서 유학생활에 직장생활까지 해서인지 나는 수시로 파리 관련 프로젝트를 담당한다.

전문 사진작가로 인하는 프랑스 친구의 사진 (@loiclagardephoto)


낭만이 넘치는 사랑의 도시 파리라지만, 유학생으로 처음 보낸 2년은 차라리 우울의 도시에 더 가까웠다. 툭하면 내 서류를 잃어버려서 나를 고생시키는 공무원들도 싫고, 불어를 못하면 불친절한 대부분의 파리 사람도 싫고, 구하는 아파트마다 기본은 오십년은 되는 주거환경도 싫고... 답답한 것 투성이에 미칠 지경이었다.


내가 샀던 Lenôtre 딸기 케이크...!

게다가 당시 환율은 1유로에 1480원이었던 극한의 상황!! 학생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생활비를 아끼고 궁상 파리지엔느로 사는 것 밖에 없었다. '떡볶이에 라면을 넣을까 말까, 5개 라면 한팩에서 라면 반개는 얼마쯤하지?!' 하는 고민을 하는게 일상이 되었다.


하루는 신세를 많이진 절친한 친구에게 며칠 뒤 생일 선물로 받고 싶은게 있냐고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이 이름 만들어도 고급진 Lenôtre 빠띠세리의 딸기 케이크였다. 처음 가본 럭셔리 부띠끄 매장에서, 십만원도 넘는 케이크를 결제하고 콩닥콩닥 가슴이 얼마나 뛰던지.. 생일 파티에서 같이 먹은 그 달콤해 보이던 케이크의 맛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궁상 캐릭터를 조금씩 벗은 건 투자은행에서 인턴이 되고, 정직원이 된 후였다. 금전적으로는 나아졌을지 몰라도, 외국인으로서 파리에서 살면서 또 다른 종류의 차별을 직장에서 경험했고, 세입자의 경우 렌트비의 3배 이상 되는 소득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여전히 집 구하기도 너무 힘들었고, 학생 비자에서 노동 비자로 변경하는 과정은 지옥의 롤러코스터였다. 나보다 인생 경험이 많은 이탈리아 동료에게 파리에서 살기 너무 팍팍하다며 고민을 털어놓은 날, 그는 "나는 25년을 파리에서 살았지만, 아직도 파리를 완전히 모르는 것 같아. 파리는 도도하고 우아한 미녀 같달까? 독특한 개성이 있는 도시라 이성적으로 이해하려 들면 매일 짜증만 날걸?"라고 말하면서 빅토르 위고가 한 말을 재치있게 인용했다.


"Qui contemple les profondeurs de Paris est saisi de vertige. Rien n'est plus fantastique. Rien n'est plus tragique. Rien n'est plus sublime."

- Victor Hugo

(파리의 깊이를 이해하려는 자는 현기증에 사로잡힌다. 파리보다 더 환상적인것은 없다. 이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없다. 이보다 숭고한 것은 없다. 빅토르 위고 인용)


도대체 빅토르 위고는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했을까, 처음에 들었을 때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나마 내게 위안이 된 것은 5년이 지나면 진정한 파리에 매력이 보일거라는 동료의 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싫다"고 불평하거나, 한국에서의 생활과 파리 생활을 계속 비교를 하는 것이 얼마나 감정 소모가 큰지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어차피 여기서 살아야 된다면 여기서 하자는 대로 하자, 남들도 나를 힘들게 하는데 나까지 나 자신을 힘들게 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담당 공무원이 출생증명서를 다시 내라고 하면, '내 생일이 몇년 지난다고 바뀌는 것도 아닌데 왜 또 내라는 거야?!'라고 화를 내는 대신간단히 서류를 다시 보냈다. 내 편견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주어진 상황, 주변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내 인생의 풍경도 바뀌기 시작했다.


2015년 파리를 떠나 이직을 한 후에도 매년 6개월 이상을 파리 거주하다보니, 어느덧 파리와의 관계도 5년이 넘어가게 되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는 동안, 파리나 프랑스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누그러지고 프랑스인이나 프랑스적인 삶 (la vie à la française)의 좋은 점도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든 내가 찾아가면 집밥을 차려주는 프랑스인 친구들도 생겼고, 아주 가끔은 파리가 그립기까지 했다.


2019년에 6개월간 장기 출장으로 파리 5구에 살면서 팡테옹 근처를 산책하던 5월의 어느 날, rue mouffetard카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가볍게 들이쉬는 순간, 그래도 파리만 한 곳이 없다는 설레이는 느낌이 생각지도 못하게 밀려왔다. 애증의 대상이던 파리에서 이런 순간이 올지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는데...!


파리에서 보낸 소중한 시간들이 포도알처럼 쌓여서 5년산 와인으로 숙성이 되어가는 순간에 느끼는, 몽실몽실, 부드러운, 따뜻한 맛을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5년 뒤에는 또 어떤 맛으로 파리를 떠올릴 지 궁금해진다.

그림1.png

*보통 주현절에 가족과 나눠먹는 Galette des Rois. 회의 전날 파리에 도착해서, 친구집에서 11명이 참석한 주현절 파티가 열렸다. 홈메이드 갈레뜨를 두 종류나 맛보고 Cidre를 마시며 2020년 서로 안부를 물었다. 에펠탑이 보이는 친구 집에서 노을을 보는 것은 매일 봐도 멍하니 넋놓고 앉아 또 보고 싶을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