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과 성숙의 어디쯤...
"쌈밥 먹어라."
한 마디를 하시고 시래기를 만드느라 바쁜 어머니.
오늘 아침은 쌈밥이다. 싸 먹는 행위조차 귀찮아하는 식구를 위해 아예 싸놓으셨다.
흔히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말을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다려 본 사람은 얼마나 애타고 힘들고 속상한지 알 거다. 그런데 미학이라니. 역설도 진리도 다 아니다. 그냥 듣기 좋은 소리. 교장 선생님의 훈화처럼 한 귀로 들어와 흩날리는 소리. 아무 데나 미학이라는 말로 포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질과 성격이 다른 사람이 의사소통 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오해하거나 자기 입장이 우선이라 싸울 때가 있다. 뇌과학자는 몸이 다친 것처럼 관계에서 오는 아픔도 뇌는 똑같이 느낀다고 한다. 그럴 때 자신을 탓하지 말고 따뜻하게 대해줘야 한다고. 지금 나는 그런 상태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봐온 지인과 말다툼을 했다. 서로의 입장보다 자신의 입장을 앞세워서 오해가 생겼다. 세월이 무색하게도 서로가 이토록 서로를 모를 수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서글펐다. 상대는 SNS까지 다 끊었다. 예전과 달리 먼저 손 내밀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지쳐서. 체념과 성숙의 어디쯤일 것이다. 구태여 일부러 이어가려 하지 않고 상대의 마음이 온전히 가라앉고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 마음. 그 중간이지 않을까?
마음이 아프면 책을 더 산다. 독립서점에만 파는 친필사인본부터 그림책과 일러스트 분야에 관심이 간다. 그림은 첫사랑이니까. 마음이 가장 힘들 때 제일 좋아했던 것들로 채우며 다독이는 본능적 움직이리라. 최근에 읽은 어느 시인의 글이 큰 위로가 되어 여기에도 소개한다.
"그러나 내가 이곳을 방문한 목적은 오직 보들레르에게 있다. 그를 만나면, 만나서 부탁하면, 응모하는 족족 낙방을 거듭하는 나의 시가 구제될 것 같았다."
- 안희연, <<줍는 순간>>, 난다, 2025
'생의 풋기를 간직한 당신에게, 안희연'이라고 적힌 친필사인본을 부적같이 바라보면. "응모하는 족족 낙방을 거듭"했던 시인의 과거가 위로가 되는 것은 왜일까? 사실 책에 관심이 많은 만큼 세계 책방에도 관심이 많다. 시간과 물질이 허락하는 한, 찾아가서 마음에 드는 책을 사고 보물처럼 간직하고 싶다. 그러나 그럴 처지가 못된다. 게다가 여기는 시내버스 노조 파업으로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한다. 아직도 협상이 타결되지 않아 언제 올지 모르는 무료 관광버스를 운 좋으면 타고 귀가한다.
30분 이내 거리는 걸어 다니고, 그 이상은 어쩔 수 없이 지각하지 않기 위해 택시를 타야 한다. 맞벌이 부모님을 두었거나 개인 사정으로 버스를 타고 학원에 와야 하는 아이들은 어찌할지. 우선 내일 일까지는 모르겠다.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연약한 인생이므로. 지금 위안이 되는 것은 나보다 앞서 낙방의 시간을 거쳐간 이들이다. 얼마 전 집으로 상장이 도착했다. 제39회 고향의 봄 전국 백일장에서 일반부 산문 장려로 입상해서 받은 상장. 상금이나 상품은 없다. 아쉽기는 한데 이 또한 작은 위로이다.
이러고 보면 기다림은 미학일지도 모른다. 기다리지 않고 되는 일이 어디 있으랴. 아기가 태어나는 데도 모체에서 여러 달을 기다려야 한다. 입에 쌈밥이 들어오기까지 누군가 준비하고 머루잎에 쌈을 싸서 차곡차곡 챙겨둔 과정이 있었다. 백일장에서 날아온 상장 또한 그동안 책을 읽고 쓰고 책을 내고, 지인들과 독서 모임을 하며 피드백하고 스승에게 배우고 고민하고 애쓴 모든 시간이 녹아있다. 여기 있기까지 금세 된 것은 없다. 인간관계 또한 시간을 들이고 천천히 녹아드는 과정이 필요한데, 급한 성격에 일을 그르친 적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이번에도 기다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다림은 미학이다.
오늘은 사전 투표를 하고 운동 삼아 걸어서 과외를 가고 틈틈이 읽던 책을 마저 읽어야겠다. 기다림의 미학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