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전여전, '여전모전'
어제는 내가, 오늘은 어머니가 휴대전화를 놓고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수고를 한다. 차량 트렁크에 오른손 찧어 꿰매고 소독하러 2주간 병원 다닌 어머니는 이제 치료가 끝났다. 온전히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손톱은 멍들어 새까맣게 변했고, 1mm 정도 손톱이 자란 듯 보인다.
이모의 죽음 이후 마음고생으로 모낭충으로 빨갛게 뒤덮였던 어머니 얼굴은 좋아졌다가도 면역이 떨어지면 재발. 제대로 쉴 틈 없이 아르바이트하고, 집안일하느라 평생 고생이다. 어머니를 보면 한국 여성들의 애환이 느껴져서 결혼에 대한 마음이 적어지지만, 어디 인생이 그리 쉬운가.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과 희생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는 여름.
오늘 이야깃거리는 아침상이다.
붕대 푼 어머니는 자유로운 손가락으로 주부 본능이 살아난다. "어머니, 보조를 좀 믿으세요! 마음에 안 드셔도 그냥 시키세요."
아무 소용없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서 앉지 않으신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 그 속도에 지친 딸은 투정이 새어 나온다. 구시렁대기 시작한다.
"그것도 중독이에요, 일 중독이요. 아직은 물일 하기에 안 좋아요."
철부지 불효녀는 어머니께 할 소리 다 한 후, 죄송한 마음으로 식탁을 차린다.
예전과 달리 마트에서 한두 가지 반찬 사 오는 어머니. 마늘종 고추장 무침과 멸치 볶음을 사 와 통에 옮기고, 살뜨물 붓고 된장 (큰) 두 스푼 넣고, 청양 고추와 양파, 애호박 듬성듬성 썰어 넣는다. 이제 보조는 보디가드처럼 곁에서 뒷짐 지고 지켜볼 뿐, 모든 요리는 어머니 차지다.
손은 크셔서 2인 밥상 차림에 계란 프라이는 3인분. 위생상 개인 접시에 다 옮겨 담아야 하나, 하던 대로 반찬통 그대로 올리고 먹는다. 대신 찌개는 개인 국그릇에 옮겨 담는다.
어제 어머니 지인이 사준 오징어를 재료 삼아 요리한 오징어 볶음도 다시 데운다. 오늘, 무슨 날일까? 아침부터 거한 밥상이다. 어제 도착한 해운대 소품샵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한 수저 받침대도 일부러 상에 올린다.
더운 여름 어머니 따라 고생한 내게 주는 선물이다. 자주 쓰지는 않겠지만, 기분 내기는 딱이다. 예전에 사놓은 수저 받침대가 어머니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숨겨져 있다. 같이 산 종지는 아껴뒀다 특별한 순간, 사용할 생각이다.
이것으로 아침 식사는 끝이구나 했더니, 그게 아니다. 어제 동생과 사 온 계란 한 판 중에서 여러 개를 꺼내 큰 냄비에 삶기 시작하는 그녀. 도대체 부엌일은 언제 끝날까? 아무리 생각해도, 체험해 봐도 이건 아니다 싶다. 가정적이고 이해심 많은 어머니를 만나 감사한 딸이지만, 이렇게 살라고 하면 도저히 자신 없다. 가사에 관심 없는 나는 이런 상상도 했다.
"김밥 만들어주는 자판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종류별로 버튼 누르면 원하는 대로 김밥 만들어주는 기계, 누가 안 만드나?"
쌀 씻어 안치고 밥솥에 넣어 적당한 물 부어 취사 버튼 누르기. 밥이 다 되어도 끝난 게 아니다. 주걱으로 저어야 한다. 반찬 준비하고 상 차리고 치우고 쓸고 닦고 빨래하고 걷고 개고 등. 이래서 가사 노동이구나, 이혼(?)할 때 수고 인정해서 재산 분할 시 반영을 하는 게 마땅하구나 싶다. 꼭 페미니즘이 아니어도-요즘 남성 전업 주부도 계시지만-여성의 24시는 거룩한 일상 이상이다.
동글동글 삶은 계란이 쌓인 모습이 귀엽고 예뻐서 찰칵! 어머니 수고와 손길이 스며든 것은 찰칵! 찰칵찰칵! 마구 찍는다.
사진 보여드리니, "예쁘다." 하신다. 마음에 든다는 말이다. 입에 들어가는 것, 손으로 수고해야 얻는구나, 새삼 깨닫는다.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차리라고 하면 어지러운데, 벌써 점심시간. 아이고, 사람 사는 게 별 게 아니라 먹고 치우고 정리하는 게 다인 것 같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하루가 되고, 하루에 진심을 다하면 한 달이 된다. 한 달이 모여 한 해가 된다. 한 해가 모여 인생이 된다.
그냥은 없다. 만약은 없다. 해야 한다. 오늘 점심은 조카들에게 빼앗길까 어머니가 깊이 숨겨둔 해물맛 쌀국수로 기분 좀 내야지. 먹는 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