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이라는 별명은 그동안 꼬맹이로만 불렸던 내게 생긴 또 다른 이름이었다. 왜소한 체구에 안경 쓴 모습, “안녕 친구들~”을 외쳐야 할 것만 같은 특정 캐릭터의 인간 모습이었다. 펭귄, 정확히는 꼬마 펭귄이라는 또 다른 이름은 지나가는 봄처럼 아주 잠깐 사용되었었지만, 아직도 버리지 않고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이것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자연스럽게 “내 별명은 펭귄이야”라며 다시금 꺼내 들곤 한다.
그만큼 펭귄이라는 별명은 왠지 모르게 어깨를 으쓱거리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같은 반에 황제펭귄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고 그와 친하게 지내서 때문이었는지, 혹은 그저 꼬맹이를 대신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단어를 찾았기 때문이었을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어떤 이유에서든 참 마음에 드는 표현이다.
그렇다고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펭귄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며, 또 이것이 단순히 외형적인 모습에서 시작되었기에 미워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꼬마 펭귄’에 대해 싫어한 적 없다.
〈미운 오리 새끼〉에 오리가 있다면, 이 세계에 사는 펭귄은 성인임에도 120cm로 작은 키를 가졌다. 심지어 두상은 일반인과 비교하면 매우 큰 편에 속해, 어쩌면 펭귄 무리 중에서도 다른 모습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화 속 오리의 반짝임처럼, 자신 있게 말한다. 나는 그 누구보다 평범하고 빛나는 생명체라고.
내게 버릇 아닌 버릇이 있다면, 그건 바로 스스로에 대해 정의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시작은 과거 어딘가 모르게 내 자신이 애매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에서부터였다. 감사하게도 나는 장애인 중에서 비교적 긍정적인 편에 속한 사람이었는데, 외형적으로 봤을 때 다른 이들과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신체 구조나 기능엔 전혀 무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일상을 살아감에 있어 약간의 한계만 있을 뿐,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웃어넘길 수 있는 그 ‘작은 틈’ 때문에 괴로워하며 살아간 적도 있었는데, 한때 내가 가진 장애는 특별함이자 ‘못남’이었으며, 특혜였으나 ‘저주’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람들 눈에 띄었으며 내가 하는 작은 행동들은 일반인들이 봤을 때 기적이거나 하찮은 것이었다.
지금은 이 생각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떠올리지도 않지만, 그땐 나 자신이 너무나 불행하다고 생각했었기에 내 말과 행동을 ‘기적’이라며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응원이 좋았다. 누군가가 그때의 내게 “넌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라고 묻는다면 분명 내가 가진 약점을 보완하기 위함도 있지만, 마치 기적을 바라보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과 칭찬을 듣기 위함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그때의 나는 메마른 내면을 채워줄 다른 무언가를 갈망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내면이 아닌 외적인 곳으로 시선을 돌렸으며, 극복이라고 불리는 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웃기게도 그와 동시에 내 마음속엔 “장애인이 아닌 일반인으로 바라봐주세요”와 같은 심리도 대등하게 존재했었으며, 이 때문에 지하철 요금 할인이나 버스에서의 장애인 우선 배려 안내 등을 보거나 경험할 때면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럴 때마다 “분명 내가 가진 억울함이나 분노 등을 생각하면 혜택을 받는 것은 당연한데 왜 자꾸 억울한 감정도 동시에 드는 걸까?” 싶었으며, 분명 잘못한 건 없음에도 어딘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다른 장애인들에 비해 너무나 멀쩡해 보였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펭귄은 성체가 되어서도 펭귄인데, 그땐 백조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펭귄의 DNA를 가진 백조가. 결국 스스로에게 이 같은 회의감이 든 순간부터, 나는 계속해서 이와 관련된 질문 계속 던졌다. 그 횟수는 점점 늘어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수레바퀴는 시간이 지나 조금은 덜 유치하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멈출 수 있었다. 언젠가 나는 다시 스스로에게 “나는 장애인인가, 일반인인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해주길 원하는 걸까?” 등의 질문을 하게 되었고, 끝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펭귄입니다"